헌책방에 가장 많이 있는 책
헌책방에 가장 많이 있는 책은 두 갈래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새책방에서 아주 많이 팔려서 헌책방에도 쏟아지는 책이다. 다른 하나는 새책방에서 거의 안 팔리는 바람에 헌책방에만 쏟아지는 책이다.
새책방에서 아주 많이 팔려서 헌책방에도 쏟아지는 책 가운데에는 헌책방에서도 잘 팔리는 책이 있으나, 헌책방에서만큼은 도무지 안 팔리는 책이 있다. 새책방에서 거의 안 팔린 책 가운데에도 헌책방에서조차 도무지 안 팔리는 책이 있지만, 헌책방에서는 제법 잘 팔리는 책이 있다.
헌책방 팔림새로 본다면, 두 갈래로 책이 팔린다고 여길 수 있다. 하나는 곧바로 읽히는 책이 팔리고, 다른 하나는 두고두고 읽힐 책이 팔린다. 알차고 재미있어서 곧바로 읽히는 책이 있고, 알차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으나 그때그때 처세와 경영과 학습에 맞추어 읽히는 책이 있다.
책은 사랑받고 싶다. 책은 한 번만 읽힌 뒤 불쏘시개가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어느 책이든 사랑받고 싶다. 숲에서 아름드리로 자라다가 책으로 거듭난 나무는 두고두고 푸른 숨결을 나누어 주는 즐거운 이야기꾸러미가 되고 싶다.
오늘날 한국 헌책방에는 학습지가 가장 많이 있다. 아니, 새책방부터 학습지를 가장 많이 다룬다. 학습지를 일부러 안 다루는 헌책방이 있으니 ‘모든 헌책방에 학습지가 많다’고 할 수는 없다. 굳이 학습지를 안 다루려 하는 헌책방이 아니라면, 어느 헌책방이든 학습지가 차지하는 자리가 매우 넓을 수밖에 없다. 학습지 가짓수와 갈래도 많고 부피도 권수도 대단히 많기 때문이다.
이 많은 학습지는 누가 볼까? 아이들이 보고 어른들이 본다.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보고, 중·고등학교 교사와 학부모가 본다. 싱그러운 나이인 아이들은 학습지에 길들고, 싱그러운 아이들을 돌보는 어른들도 학습지에 젖어든다.
왜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책이 아닌 학습지를 읽힐까? 왜 우리 어른들은 스스로 책이 아닌 학습지만 자꾸 들여다보려 할까? 책이 아닌 학습지만 들여다보는 아이와 어른이 자꾸자꾸 늘면서 삶과 사랑과 사람을 보는 눈이 흐려지지 않나 싶다. 책하고 멀어진 채 학습지에 파묻혀 싱그러운 나날을 보내는 아이들이 늘면 늘수록 삶과 사랑과 사람이 아름다이 거듭나거나 슬기롭게 깨어나는 길하고도 멀어지지 않나 싶다. 헌책방에 가장 많이 꽂히면서 널리 사랑받을 책은 ‘학습지’가 아닌 ‘그냥 책’이어야 하리라 느낀다. 4348.9.14.달.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헌책방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