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배움자리 38. 서로 높이는 말



  일요일 낮에 두 아이하고 함께 면소지재 놀이터에 갔다. 마침 면소재지 초등학교 아이들이 제법 많이 놀이터에서 어우러져서 논다. 우리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하고 섞여서 뛰논다. 작은아이가 시소에서 한 번 자빠졌는데, 그래도 언니 누나 들이 돌봐 주어 곧 울음을 그치고 잘 논다. 열 살 즈음 되어 보이는 아이가 운동장을 뛰어놀다가 나한테 다가와서 작은아이가 시소에서 미끄러졌다는 말을 들려준다. 다 보아서 알지만 이렇게 알려주니 고맙다. 아이한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아이는 나한테 “아저씨, 왜 우리한테 ‘요’를 붙여요?” 하고 묻는다. 언제나 버릇처럼 누구한테나 높임말을 쓰면서 살다 보니 갓난쟁이한테도 다섯 살 어린이한테도 열 살 어린이나 열다섯 살 푸름이한테도 으레 높임말을 쓰는데, 갑작스레 이렇게 물으니 무어라고 대꾸해야 할는지 할 말을 못 찾아서 “높임말을 쓰고 싶은 사람은 누구한테나 높임말을 쓰면 됩니다.” 하고 말하고 말았다. 뭔가 더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 듯싶은데, 막상 그 아이한테 더 이야기를 해 주지 못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전거를 달리며 생각해 본다. 나는 왜 아이들한테도 높임말을 쓸까? 무엇보다 아이가 되든 어른이 되든 모두 똑같이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 이곳에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참된 나이’를 알 수 없기도 하지만, 나이가 많고 적고를 떠나 서로 따사롭게 높이면서 아끼고 싶다. 이제 나는 오랜 고향동무한테도 높임말을 섞어서 쓴다. 오랜 동무라 하더라도 높임말을 안 쓰면 내가 스스로 힘들고, 그렇다고 고향동무한테 말을 안 놓으면 동무들이 거북해 하니, 두 가지 말씨를 섞는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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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37. 호이호로롱새



  요 한 달쯤 앞서부터 우리 집 마당으로 아침과 낮마다 찾아와서 노래하는 새가 있다. 이 새는 후박나무에 앉아서 노래하는데, “호이 호이 호로롱” 하는 소리를 구성지게 낸다. 어떤 새일까 하고 이름이 궁금하다고 여기면서도 좀처럼 이름을 알아내지 못한다. 이러던 어느 날 문득 생각한다. 내가 아이하고 이름을 알맞게 지어서 가리켜도 되지 않을까? 굳이 도감이나 책에 나오는 ‘표준 이름’으로 알아야 할 까닭이 없다. 고장마다 숱한 고장말이 있어서, 풀이며 나무이며 벌레이며 짐승이며, 다 다른 이름으로 가리킨다. 그러니, 내가 내 삶자리를 보금자리로 가꾼다면,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새라든지 우리 집 둘레에서 마주하는 풀이랑 나무랑 벌레랑 짐승한테 ‘우리 집 말’로 이름을 붙일 수 있다. “호이 호이 호로롱” 하고 노래하는 새이니 ‘호이호로롱새’로 이름을 붙여 본다. 그리고, 이런 이름으로 가리키자고 생각한 날 아침에, 이 새가 ‘휘파람새’라고 하는 줄 알아낸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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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36. 밥 한 그릇



  밥 한 그릇을 밥상에 놓는다. 배가 고프니 먹는 밥이라고도 할 테지만, 몸을 살찌우는 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몸을 살찌우면 배고픔이 가시고, 배고픔이 가시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우리 넋은 몸이라고 하는 옷을 입어서 사람으로 산다. 그러니까, 몸이라고 하는 옷이 언제나 튼튼하게 움직이도록 밥을 먹어서 씩씩하게 뛰놀거나 일한다. 그리고, 마음이라고 하는 밭에 생각이라고 하는 씨앗을 심어서 꿈을 짓고 사랑을 노래한다. 아이도 어른도 모두 같다. 아이도 밥 한 그릇을 앞에 놓고 고운 꿈을 기쁘게 꾸면서 사랑을 노래할 때에 맛나게 먹는다. 어른도 아이하고 나란히 고운 꿈을 기쁘게 꾸면서 사랑을 노래할 때에 맛있게 먹는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그릇에는 온누리를 살찌우는 아름다운 바람 한 줄기가 깃든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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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35. 바람을 가르며



  우리 집 배움자리는 ‘바람터’이다. 언제나 바람을 생각하고, 바람을 읽으며, 바람을 누리고, 바람을 먹다가는, 바람을 노래하고, 바람을 꿈꿀 뿐 아니라, 바랑하고 사이좋게 노는 터이다.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길을 생각하면서 배운다. 바람을 가르며 새랑 풀벌레랑 나비랑 모두 동무가 되어 무지개를 걸어가는 길을 헤아리면서 익힌다. 우리는 바람이 되려고 바람길을 달린다. 우리는 서로서로 어깨동무하는 ‘바람이’로 살려고 이 보금자리를 마음껏 누린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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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34. 집밥



  날마다 집에서 밥을 먹는 우리 아이들은 밥상맡에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말잔치를 누릴 뿐 아니라, 쉴새없이 마루를 가로지르거나 그림책이라든지 만화책을 뒤적이면서 논다. 젓가락이나 오이를 쥐고 논다. 풀포기를 입에 물고 논다. 밥 한 술을 뜨면 곧바로 새로운 놀이가 샘솟는다. 배가 고프다고 노래를 한 아이들이 막상 밥상맡에서 온갖 놀이를 하느라 밥술 뜰 생각을 잊는다. 몸에 넣는 밥보다 몸으로 짓는 놀이가 훨씬 즐거웁기 때문에 이렇게 놀 만할까? 내 어릴 적을 돌이킨다. 학교에서 도시락을 먹을 적에 나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도 ‘노느라 바빴’다. 밥을 입에 넣을 틈조차 아깝다고 여겼다. 그러니까, 밥 한 술 입에 물고 뛰어놀아야 몸이 풀린다고 하는 셈이다. 집밥을 먹는 아이들은 그야말로 놀이요 놀이에 놀이로구나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오도록 놀고 거듭 논다. ㅅㄴㄹ


(최종규/숲노래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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