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배움자리 12. 학교나무 심자



  ‘우리 집 학교’를 이루는 올해에 무엇을 가장 먼저 해야 할까 하고 생각하니, 저절로 나온 ‘내 생각’은 ‘우리 학교 나무를 심자’이다. 그러면 어떤 나무를 심지? 여러 날과 여러 주에 걸쳐서 곰곰이 생각을 했으나 딱히 어떤 나무가 어울릴는지 수가 나오지 않았다. 이러구러 이월 끝머리가 되는데, 설을 앞두고 우리 마을에서는 마을 어귀에 있던 나무를 몇 그루 뽑고는 이 자리에 정자를 박았다. 군청에서 ‘완성형 나무 정자’를 짜맞추어서 마을 어귀에 박으면서, 이 자리에서 퍽 오래 자라면서 꽃을 베풀던 나무를 뽑았다. 뽑은 나무는 다른 곳에 옮겨심으려나 했더니 마을에서 아무도 안 옮겨심을 뿐 아니라 마을 어르신이 쓰레기를 태우는 자리에 그냥 버렸다. 깜짝 놀랐다. 제법 큰 나무였는데 그냥 버리다니. 이 나무를 다시 심으면 살아날 수 있을까? 그제 비가 와서 나무뿌리를 적셔 주었고, 어제는 우체국에 다녀오느라 바빴기에 오늘 아침에 수레를 끌고 나무를 실어서 우리 ‘도서관+학교’로 실어 간다. 어른 혼자 들 수는 있으나 짊어지고 나를 수는 없다. ‘도서관+학교’로 들어가는 문 앞쪽 빈터에 볕이 잘 드는 자리에 옮겨심기로 한다. 뿌리가 제법 넓게 퍼졌기에, 옮겨심을 구덩이를 파느라 한 시간 즈음 걸린다. 혼자서 삽으로 파니까. 나무를 천천히 들어서 자리를 잡고, 흙을 덮고 북돋운다. 다시 한 시간 즈음 들여 나무를 살핀다. 우리 학교 나무가 처음으로 선다. 이 나무가 이곳에서 새 숨결을 얻어서 씩씩하게 자라 아름답고 짙푸른 그늘과 꽃내음과 잎내음을 베풀어 주기를 빈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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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11. 하루를 나무와 함께



  봄이 찾아온다. 곧 봄이다. 아니, 벌써 봄이라고 할 만하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 봄을 생각하면 바로 이때부터 봄이다. 여덟 살 큰아이가 뒤꼍에 함께 올라가서 나무한테 인사하는 아침에 나한테 묻는다. “아버지, 봄은 언제 와?” “응, 벼리가 부르면 봄이 오지.” “불렀는데 안 와.” “자꾸 부르면 돼.” “자꾸 불러도 안 와.” 얘야, 네가 ‘안 온다’고 생각하니까 안 오지. 그래서 말을 돌리기로 한다. “자, 여기를 봐. 여기 쑥이 올라왔어. 아주 작고 예쁜 싹이지.” “나도 그거 봤어.” 그래, 이 아이들을 보았고, 우리 집 매화나무에 몽글몽글 부푸는 꽃몽오리를 네가 보면서 가만히 말을 걸고 웃음으로 인사를 했으면, 이제는 바야흐로 봄이란다. 봄에도 바람이 아직 쌀쌀할 수 있고, 봄이지만 해가 안 나오고 어둑어둑한 아침일 수 있어. 봄에도 비가 오고, 봄에도 흐린 날이 있지. 겨울에도 포근한 날이 있고, 겨울에도 맑은 날이 있어. 우리는 언제나 즐겁게 노래하면서 하루를 나무한테 인사하면서 기쁘게 열면 돼.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봄마음이 된단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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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10. 밥을 먹을 적에



  아이들은 밥을 먹을 적에 자꾸 딴짓을 하고 싶다. 가만히 보면 참말 그럴 만하구나 싶다. 몸을 조금도 가만히 둘 수 없는 아이들이니까 그렇다. 나도 어릴 적에 그러했는데, 이 아이들을 어찌 밥상맡에 얌전히 붙들어 맬 수 있을까. 목줄이나 손줄이나 발줄을 채우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밥상맡에 고분고분 앉아서 먹을 수 없다. 그런데 아이들은 여덟 살이 되면 학교에 가야 하고, 오늘날 학교는 마치 군대나 감옥처럼 ‘밥판’에 똑같은 밥과 국과 반찬을 똑같이 올려서 똑같은 틀(시간 제한)을 벗어나지 않도록 빨리 먹고 빨리 치우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아이 몸에 안 맞아도 억지로 먹어야 하고, 남기지 말아야 하며, 밥을 먹으며 떠들거나 놀지 말아야 하도록 길들여져야 한다. 아이들을 이렇게 길들여야 밥을 잘 먹을까? 아니다. 이렇게 한들 밥을 잘 먹지 않는다. 아이들은 차츰 철이 들면서 밥을 어떻게 먹을 적에 즐거운지 스스로 깨닫는다. 아이들이 밥짓기를 함께 할 때가 되면, 급식이나 교육이니 훈련이니 안 해도, 스스로 밥을 ‘제대로’ 잘 먹는다. 어버이와 어른은 이를 기쁘게 지켜보면서 아이를 이끌 수 있으면 된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 우리 집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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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9. 뛰노는 마음


  어른이 된 사람은 집에서 뛰는 일이 드물다. 어른끼리 사는 집에서는 딱히 시끄러운 소리가 날 일이 없다. 그러나,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아이가 뛰고 싶다. 아이는 뛰고 구르면서 놀려 한다. 노래도 목청껏 부르고 싶으며, 때때로 길게 소리를 지르고 싶다. 그러면, 어른은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보금자리를 어떻게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할까.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면 되는 곳이 보금자리일까?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곳이 집일까? 뛰놀지 못하는 집에서 아이는 ‘뛰놀면 안 된다’는 삶을 보면서 배운다. 뛰놀지 못하는 보금자리에서 어버이는 ‘뛰놀지 말라’는 윽박지름을 보여주면서 가르친다. 나는 두 아이와 뛰면서 놀려 한다. 나는 두 아이와 곁님하고 노래하면서 놀려 한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어우러져서 뛰놀고, 어른과 아이가 같이 아끼면서 웃고 노래하려 한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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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배움자리 8. 물 한 모금



  물병이 하나만 있으면 목이 마른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기다려야 한다. 서로 먼저 마시겠다고 다툴 만하다. 이때에 나는 두 아이한테 말한다. 먼저 큰아이한테는 “자, 누나는 늘 동생한테 먼저 마시라고 하렴.” 하고 말한 뒤, 작은아이한테는 “자, 동생은 늘 누나더러 먼저 마시라고 하렴.” 하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두 아이는 물을 마시거나 주전부리를 먹을 적에 으레 서로서로 내민다. “자, 네가 먼저 마셔.” “자, 네가 먼저 먹어.” 이렇게 여러 날이 흐르고 여러 달이 흐른다. 어느덧 이런 삶이 여러 해째 된다. 마실을 하다가 큰아이가 아주 목이 말라서 “물 주셔요.” 하고 말한다. 가방에서 물병을 꺼내어 큰아이한테 건넨다. 큰아이는 발갛게 달아오른 볼로 물병을 열고는 동생한테 내민다. “자, 보라야 너 먼저 마셔.” 동생도 몹시 목이 말랐기에 누나가 건네는 물병을 받아 벌컥벌컥 마신다. 이러고서 누나한테 돌려준다. 누나는 동생이 다 마시기를 기다렸다가 마신다. 이런 뒤 동생은 다시 물병을 받아 한 모금 더 마신다. 두 아이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머리를 쓰다듬는다. ㅎㄲㅅㄱ


(최종규/함께살기 .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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