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책 2

동화책은 어린이가 읽는 책이 아니다. 동화책은 어린이부터 읽는 책이다. 동화책은 어린이하고 어깨동무하면서 읽는 책이다. 동화책은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고 싶은 누구나 읽는 책이다. 동화책은 삶을 노래하고 싶어서 읽는 책이다. 동화책은 스스로 꿈을 지어 마음에 날개를 달면서 훨훨 바람하고 하늘을 누비고 싶기에 읽는 책이다. 동화책은 새로운 어른으로 아름답게 자라고 싶어서 읽는 책이다. 동화책은 눈물을 배우고 웃음을 익혀 하루를 짓는 씩씩한 몸짓이 되고 싶으니 읽는 책이다. 다 같이 숲이 되어 하늘을 가슴에 담고 싶은 어른이 동화책을 쓴다. 2000.4.5.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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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군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이튿날 찾아간 헌책집에서 《몽실 언니》란 동화책이 보여서 선 채로 책을 펼치다가 그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누가 볼세라 구석 깊은 곳에 숨어 더 눈물지으면서 읽다가 덮었다. 더 읽을 수 없다. 얼른 책값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서 눈물바람으로 끝까지 읽었다. 난 여태 뭘 읽고 살았지? 스물 몇 해를 살며 책다운 책을 여태 하나도 못 읽었잖아. 게다가 동화책다운 동화책을 어릴 적에 하나도 못 읽었잖아. 그래, 그러면 오늘부터 동화책을 읽자. 스물네 살 어린이로서 동화책을 읽자. 1998.1.3.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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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람

‘우리말 소식지’하고 ‘헌책방 소식지’를 주마다 서너 가지씩 혼자 엮어서 써내고, 이를 복사해서 돌리니, 둘레에서 놀란다. 어떻게 주마다 서너 가지 소식지를 혼자 다 쓸 수 있느냔다. 나는 외려 더 놀란다. 왜 그렇게 못 할까?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스스로 못 한다고 여기니 끝내 못 할 뿐이지 않을까? 누가 나더러 소식지를 내라고 하지 않는다. 스스로 써야겠다고 여겨서 쓴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쓴다기보다 마음에서 저절로 솟구쳐오른다. 그렇다고 솟구쳐오르는 모든 이야기를 써내지는 않는다. 글만 쓸 수 없다.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신문을 다 돌리면 지국 식구들 먹을 밥을 지어서 차리고, 신문 돌리며 땀으로 흥건히 젖은 옷을 빨래하고, 이웃 지국하고 주고받은 열 가지 아침신문을 샅샅이 읽으면서 신문글 오려모으기를 하고, 자전거 타고 헌책집에 가서 책을 읽는다. 낮에는 신문값 걷으러 다닌다. 저녁에는 대학교 셈틀칸으로 찾아가서 열 시에 문을 닫기 앞서까지 신나게 글을 쓴다. 놀랄 일이란 없다. 하루를 쪼갤 마음이 있으면 틈이 생긴다. 이렇게 스스로 지은 틈에 스스로 마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쓸거리가 차고 넘친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글로 옮기고 싶은 몇 가지를 고른다. 우리는 마음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에 글을 못 쓸 뿐이다. 1998.3.2.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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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율 단식

지율 스님이 백 날 넘게 밥굶기를 하면서 말없이 외쳤다. 도룡뇽 목소리를 들으라고, 도룡뇽 곁에 있는 냇물 노랫소리를 들으라고, 냇물 곁에 있는 돌멩이 말소리를 들으라고, 돌멩이 곁에 있는 멧새 얘깃소리를 들으라고, 멧새 곁에 있는 바람줄기 울음소리를 들으라고, 바람줄기 곁에 있는 나뭇잎 웃음소리를 들으라고, 나뭇잎 곁에 있는 모래알 꿈소리를 들으라고, 모래알 곁에서 발 담그며 노는 아이들 사랑소리를 들으라고. 이러면서 덧붙인다. 우리는 밥을 얼마나 먹어야 하느냐고. 2006.1.7.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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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칸

길손집에서 하룻밤 묵는다. 새벽에 일어나 무릎셈틀을 켠다. 누리그물을 이어 주는 상자에 적힌 비밀번호를 넣는데 도무지 안 된다. 길손집지기한테 여쭈려 하나 달게 주무셔서 깨우지 못한다. 한참 헤매다가 옆칸에 살며시 들어간다. 어제 길손집에 묵으면서 보니 손님이 든 칸이 없는 듯했다. 빈 옆칸에 적힌 비밀번호를 넣으니 누리그물로 들어갈 수 있다. 내가 묵은 칸에 적힌 비밀번호로는 안 되고 옆칸에 적힌 비밀번호로는 된다. 아리송하구나 싶으면서도 고맙다. 이쪽에 없으면 저쪽에 있는 대로 쓰면 되는 셈이네. 그렇잖은가. 이 길을 가려는데 삽질을 해서 막혔다면 저 길로 돌아가면 될 테지. 나는 길을 갈 뿐이다. 2019.2.26.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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