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귀야행 3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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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65



귀신한테도 마음이 있으니

― 백귀야행 3

 이마 이치코 글·그림

 강경원 옮김

 시공사 펴냄, 1999.3.15. 5000원



  오늘날 아파트에는 ‘지킴이’를 안 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니, 오늘날 아파트에는 ‘지킴이’를 둘 자리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부터 어느 겨레이든 집이나 마을에는 ‘사람’뿐 아니라 ‘사람 아닌 다른 넋’이 함께 있다고 여겼어요. 한겨레는 ‘사람 아닌 다른 넋’ 가운데 사람을 보살핀다는 ‘지킴이’를 헤아렸고, 집이나 마을 곳곳에 ‘사람 아닌 다른 넋’을 기리거나 모시거나 섬기거나 아끼는 ‘무언가’를 두었어요. 이러면서 먹을거리를 조금씩 덜어서 함께 나누었고요.


  지난날 한겨레를 비롯해서 지구별 여러 겨레는 다 다른 모습과 몸짓으로 ‘사람 아닌 다른 넋’을 기리거나 모셨어요. 어느 모로는 두려워하기도 했고, 어느 모로는 포근히 여기기도 했어요. 어느 모로는 깍듯이 생각하기도 했고, 어느 모로는 살가운 동무나 이웃으로 삼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면 짚과 풀과 나무와 돌로 지은 한겨레 옛집에는 개구리도 지네도 풀벌레도 거미도 개미도 같이 살아요. 이뿐인가요. 서까래에는 참새 둥지도 있고, 처마 밑에는 제비 둥지도 있지요. 더구나 구렁이까지 한집에서 살고요. 흙에는 지렁이랑 두더지가 함께 살고, 수많은 풀벌레랑 딱정벌레가 집이며 마을에 함께 있어요. 여기에 온갖 새가 함께 살지요.



“깜짝 놀랄 테니 보러 와. 사실은 어제 저녁 우리 집 정원에 갑자기 …… 연못이 생겼다고 친구한테 전화했는데, 어떻게 하룻밤만에 없어진 거야?” (52쪽)


“사실은 우리들, 이 집에서 굉장히 외롭거든요. 좀 제멋대로긴 하지만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요. 모두들 당신이나 후유키 같으면 좋을 텐데.” (75쪽)


‘도대체 수호신이란 뭘까? 그 집은 (수호신이던) 그녀들의 불만으로 가득 차 있었어.’ (95쪽)



  이마 이치코 님 만화책 《백귀야행》 셋째 권을 읽으며 이 많은 ‘다른 넋’을 하나하나 그려 봅니다. 이 만화책에는 “온갖 귀신(백귀)”이 다 나오는데, 이 “온갖 귀신”은 그야말로 ‘저승’에서 살다가 ‘이승으로 와서 사람하고 함께 사는’ 요괴나 마물이 있다고 해요. 사람을 괴롭히고 싶은 요괴나 마물이 있다 하고, 사람을 돕고 싶은 요괴나 마물이 있다 하며,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는 요괴나 마물이 있다 해요. 그리고 이승에서 목숨이 다했으나 미처 저승으로 건너가지 못한 채 ‘몸 없는 넋으로만 이승에 남아’서 넋씻이를 받아야 하는 “죽은 사람”도 있대요.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어느새 이런 곳에 문이.” “할머님, 여기에는 옛날부터 문이 있었어요. 다들 보지 못했던 것뿐이에요. 전 이 집에 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사람들은 진짜로 있었던 거예요.” (100쪽)


‘아버님께서는 요괴와 인간 사이에서는 아이가 생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만, 그건 제 아버지나 할아버지에게 그녀들을 보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만약 그녀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통하기만 한다면, 자식을 낳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저는 작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내년 봄에는 아이가 태어날 예정이에요. 한 가지 걱정되는 건, 아내에게 호적이 없기 때문에…….’ (116쪽)



  ‘귀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는 무 자르듯이 섣불리 말할 수는 없습니다. 있다고도 없다고도 함부로 말할 수 없다고 느껴요. 그런데 꽤 많은 사람들은 깜깜한 곳을 무서워해요. 밤을 무서워한다든지 사람 없는 깊은 숲을 무서워하기도 해요. 아무도 없는 지하실이나 창고를 무서워하기도 하지요.


  우리는 왜 무서워해야 할까요? 혼자이니까? 귀신이 있으니까? 아니면 그냥? 귀신이 있다면 귀신은 왜 무서워해야 할까요? 겉모습이 여느 사람하고 달라서 무서워해야 할까요? 무시무시하거나 끔찍해 보여서 무서워해야 할까요?


  영화 〈식스 센스〉를 보면 ‘죽은 사람’이 나오고, ‘죽은 사람을 보는 아이’가 나와요. 죽은 사람을 보는 아이는 ‘죽은 사람’ 때문에 늘 무서워서 떨어요. 더욱이 ‘죽은 사람을 보는 아이’를 제대로 헤아리면서 이 아이를 돕는 어른이 없어요. 왜냐하면 거의 모든 어른은 ‘죽은 사람을 못 보기’ 때문입니다.



“저 애는 사물을 뚜렷이 가려내는 것이 두려운 거예요. 자신에게 익숙한 모습을 보고 안심하고 싶었던 거지요. 하지만 덕분에 당신과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 (187쪽)


“왜,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지? 분별없는 말을 입에 올리면, 그대로 된다잖아.” (203쪽)



  만화책 《백귀야행》에 나오는 주인공 가운데 고등학생 남학생 리쓰는 어릴 적부터 ‘수많은 귀신과 요괴와 마물’을 보면서 괴롭습니다. 게다가 학교나 마을이나 집에서 귀신이나 요괴나 마물을 보는 사람이 없어요. 할아버지는 늘 귀신이나 요괴나 마물을 보지만 일찍 돌아가셨어요. 주인공 남학생은 어릴 적부터 학교 공부는 도무지 할 수 없는데다가 집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일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에서나 수많은 귀신과 요괴와 마물을 느끼고 보기 때문이에요.


  이 만화책에서 다른 주인공인 여대생 사촌 즈카사도 리쓰처럼 귀신이나 요괴나 마물을 봅니다. 그러나 즈카사는 ‘귀신이나 요괴나 마물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그냥 말을 걸거나 그냥 지나칩니다. 그래서 다른 주인공인 리쓰네 사촌 누나는 귀신이나 요괴나 마물을 보더라도 아무렇지 않은데, 때때로 소스라치게 놀라지요.



“잘 보라구. 이건 즈키사 누나 때문에 생긴 거야. 다 누나가 불러들인 거란 말야! 이런 것들은 힘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 엄마가 돌아가실 리 없잖아! 즈카사 누나의 불안과 공포가 저급의 요마들을 불러모은 거야. 영능력이 어중간하기 때문에 대처하는 게 미숙해서 그래.” (215쪽)



  만화책에 나오는 고등학교 남학생은 학교 공부는 도무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동무를 사귀지도 못합니다. 다른 아이들은 ‘귀신을 볼 줄 아는’ 이 아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놀리거나 괴롭힐 뿐입니다. 귀신은 못 보고 ‘사람만 보는’ 다른 아이들은 막상 ‘사람을 보기’는 하지만, 저희하고 ‘똑같은 사람’인 리쓰라고 하는 아이를 따사로운 마음으로 맞아들이지 않아요.


  학교에 동무는 없으나 사촌 누나가 거의 동무와 같습니다. 두 사람이 ‘귀신을 볼 수 있는 눈’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 테지만, 이보다는 ‘마음을 헤아리면서 아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리쓰라는 아이는 ‘귀신이나 요괴나 마물이 어떤 마음’인가를 읽으려 합니다. 귀신을 보기만 할 뿐 아니라 ‘귀신이 어떤 마음’인가를 읽고서 넋씻이를 도와주지요.



“에미의 소행을 그만두게 하고자 잠자리를 바꾸고 숨어 있는 것이 자신의 아들인지는 꿈에도 모르고 죽여버린 겁니다. 저는 슬픔에 못 이겨 산속 나뭇가지에 목을 매달아 죽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슬픔이 너무 큰 나머지 자신이 한 일조차 잊고 있었나 봅니다. 단지 슬프고 미련이 남는 마음으로 이 세상에 남아 있었던 거죠. 왜 이렇게 중요한 걸 잊고 있었을까. 제가 기억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 아이는 다시 한 번 저를 찾아온 거예요. 미안, 미안하다, 용서해 주렴. 혼자서 쓸쓸했지. 같이 가자꾸나. 용서해 주렴.” (222∼223쪽)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서도 마음을 못 읽으면 서로 동무나 이웃이 못 됩니다. 우리가 서로 동무나 이웃이 된다면, 우리가 서로 마음을 읽고 나누며 아낀다는 뜻이에요. 귀신을 믿거나 안 믿거나, 또는 귀신을 볼 줄 알거나 볼 줄 모르거나, 이런 여러 가지는 대수롭지 않아요. 서로 마음을 볼 줄 아느냐가 대수롭지 싶어요. 서로 마음을 바라보면서 아낄 줄 아느냐를 살펴야지 싶어요.


  만화책 《백귀야행》은 귀신과 요괴와 마물 이야기를 엮으면서 이 자리에 ‘마음’을 가만히 얹습니다.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어떤 마음인가를 돌아보도록 넌지시 이끌어 줍니다.


  그러고 보니, 이 만화책에 나오는 리쓰네 어머니나 할머니는 리쓰가 어릴 적에 ‘산수 시험 5점’을 받아도 걱정하지 않아요. 시험종이에 이름을 썼으니 잘했다고 여겨요. 공부가 시원치 않더라도 마음을 쓰지 않아요. 아이가 튼튼하면서 씩씩하게 잘 자라는 데에만 마음을 써요. 아이가 스스로 꿈을 찾고 제 길을 생각하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여요.


  어쩌면 바로 이런 마음이 흐르기 때문에 ‘귀신을 보든 말든’ 또 ‘귀신을 믿든 말든’, 만화책에 나오는 아이가 아름다운 마음에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차츰차츰 거듭날 수 있구나 싶기도 합니다. 2016.12.3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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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귀야행 2
이마 이치코 지음 / 시공사(만화)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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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64



아직 이승을 못 떠나는 사람들

― 백귀야행 2

 이마 이치코 글·그림

 강경원 옮김

 시공사 펴냄, 1999.3.15. 5000원



  눈에 보이기에 믿고, 눈에 안 보이기에 안 믿곤 합니다. 손으로 만질 수 있기에 믿고, 손으로 만질 수 없기에 안 믿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음이나 사랑이나 꿈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기도 해요. 우리한테 목숨이 있기에 오늘도 몸을 움직이며 살지만, 정작 목숨을 눈으로 본다고 하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요.


  《백귀야행》(시공사,1999)은 여느 사람들이 볼 수 없는 넋이나 숨결을 언제나 알아보는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삼는 만화책입니다. 이 둘은 할아버지한테서 ‘다른 넋을 보는 눈’을 물려받았다고 할 만한데, 어쩌면 할아버지도 다른 어버이한테서 ‘다른 넋을 보는 눈’을 물려받았을는지 몰라요.



놀면서 술래를 하다가 죽은 아이는, 죽은 후에도 술래가 된 채 헤매이는 걸까. (52쪽)


“이봐, 잠깐만. 이미 나를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지? 나도 그런 느낌이 들어. 난 어쩌면 오래전에 죽은 게 아니었을까. 옛날 같았으면 벌써 죽었을 것을 약으로 살려 놓았던 것뿐이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이라도 집안의 도움이 되게 해 주고자, ‘목주님’께서 힘을 빌려주신 게 아니었을까.” (118∼119쪽)



  때때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고 하지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 때문에 믿기 어려울 테지만, 우리가 눈으로 모두 볼 수 있다면, 믿기 어려운 일이란 없으리라 느껴요. 우리가 어느 일을 놓고 놀랍다고 여긴다면 우리 스스로 그 일을 못 해낸다든지 생각조차 못 했기 때문이지 싶습니다. 우리 스스로 그 일을 얼마든지 한다면 놀랄 까닭이 없어요. 우리 스스로 그 모습을 늘 지켜보거나 바라본다면 딱히 놀랍다고 할 만하지 않습니다.



“식인귀에게 잡아먹힌 사람들이야. 성불하지 못하고 계속 여기에 있었겠지. 이 정원은 살아 있어. 틀림없이 솜씨가 좋은 직공이 온힘을 기울여 만들었겠지. 너무 잘 만드는 바람에 생명이 깃들게 되어 버린 거지.” (146∼147쪽)


‘백로가 말을 ……. 참, 전생에는 사람이었지.’ (201쪽)



  새도 얼마든지 말을 합니다. 입으로뿐 아니라 마음으로도 말을 해요. 이 말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이제 못 듣는 사람이 있어요. 도깨비를 볼 뿐 아니라 도깨비하고 말을 섞거나 함께 노는 사람이 있어요. 이와 달리 도깨비를 못 볼 뿐 아니라, 도깨비하고 못 어울리고 못 노는 사람이 있지요.


  만화책 《백귀야행》은 바로 이 대목을 살며시 건드립니다. ‘눈이 아닌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넋’을 웬만한 사람들은 도무지 못 알아채지만, 한 아이는 알아봐요. 한 아이는 알아볼 뿐 아니라 ‘죽었으나 무언가 아쉬워서 떠나지 못하는 넋’한테 말을 걸면서 이 아쉬움을 풀어 주려고 합니다. 한 아이는 다른 넋을 알아보더라도 무서워하거나 꺼리려고 합니다.



“그런 남자의 아이, 낳고 싶지 않아. 아빠를 닮아 형편없는 아이일 거야.” “누님, 그런 말씀 그만하세요. 그 애는 제 조카이기도 한걸요.” “료야. 울지 마. 나만 괴로운 줄 알았는데.” (215쪽)


“혼인식날 밤에 신랑이 싫다고 연못에 뛰어든 여자를 아내로 맞아 줄까?” “안 받아들여 주면 집으로 들어오시면 되잖아요. 빚은 일해서 갚으면 되구요! 그래도 만일, 받아들여 준다면, 그 사람은 누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거예요.” (216쪽)



  곰곰이 생각할 노릇이지 싶어요. ‘다른 넋’을 코앞에 마주할 적에 보이는 두 가지 몸짓처럼, 다른 넋이 아닌 ‘뻔히 눈에 보이는 사람들’을 코앞에 마주할 적에도 두 가지 몸짓은 아닐까요? 한 가지는 차분히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함께 실마리를 풀려는 이웃으로 바라보아요. 다른 한 가지는 못 본 척하거나 등을 돌려요.


  볼 수 없기에 안 믿기도 하지만, 막상 볼 수 있어도 안 믿곤 합니다.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둘레에 있기에 찬찬히 바라보거나 어깨동무를 하기도 하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둘레에 많아도 금을 긋거나 고개를 저으면서 손사래치기만 하기도 해요.


  아직 이승을 못 떠나는 사람들은 아쉬움을 풀고 싶습니다. 이승을 떠나는 사람들은 홀가분하게 하늘을 날면서 웃음을 짓습니다. 그러면 이승에서 삶을 짓는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요? 이승을 떠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래, 내가 꼭 해야 할 일은 이것이었는걸!’ 하고 깨달을까요, 아니면 어리거나 젊은 날부터 늘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꿈을 이루는 삶을 이승에서 보낼까요? 2016.12.27.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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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숟가락 11
오자와 마리 지음 / 삼양출판사(만화)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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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63



평화로운 살림을 바라보는 두 눈길

― 은빛 숟가락 11

 오자와 마리 글

 노미영 옮김

 삼양출판사 펴냄, 2016.10.28. 5000원



  오자와 마리 님은 이녁 만화에서 늘 ‘평화로운 살림’으로 하루를 짓는 사람들 이야기를 그립니다. 어쩜 이렇게 착학거나 참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 만한 사람들이 이야기를 이끌어요. 다툼도 미움도 시샘도 마음에 안 담는 ‘평화로운 주인공’한테는 마치 그늘이나 그림자가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늘이나 그림자처럼 어두운 구석이 없기 때문에 평화로울까요? 평화롭기 때문에 그늘이나 그림자처럼 어두운 구석이 없다고 여길 만할까요? 아니면 다른 모습이나 까닭이 있을까요?



“앗, 아이스크림을 집에서 만들 수 있어?” “응, 디저트로 만들어 볼까?” “응.” (5쪽)


“넌 정말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구나.” “응. 엄마도 아이스크림 좋아하니까 분명 엄마를 닮은 거야.” (8쪽)



  《은빛 숟가락》(삼양출판사,2016) 열한째 권 첫머리는 ‘집에서 빚는 아이스크림’ 이야기가 흐릅니다. 아이스크림이라면 으레 바깥에서 사다가 먹는 줄로만 아는 ‘아버지가 다른 어린 동생’한테 주인공 리츠는 ‘집에서 한결 재미나며 맛나게 아이스크림을 빚을’ 수 있다고 찬찬히 알려줍니다. 몸소 부엌일을 하고, 이때에 어린 동생이 곁에서 거들도록 이끌어요. ‘입양아’였던 주인공 리츠는 어릴 적부터 ‘낳은 어머니·아버지’ 없이 자랐고, 뒤늦게 ‘낳은 어머니’를 알았어요. 그렇지만 주인공 리츠는 이 대목에서 딱히 흔들리지 않아요. ‘두 어머니’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으며, ‘기른 어머니’를 ‘어머니’로 여기면서 ‘기른 두 어버이가 그동안 베푼 사랑’을 즐거우면서도 고맙게 헤아려요.


  이러다가 뒤늦게 안 ‘아버지 다른 어린 동생’이 ‘낳은 어머니’하고 지내는 집에서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서 고작 아이스크림으로 끼니를 때우는 모습을 보면서 이 어린 동생한테 도시락을 싸서 꼬박꼬박 챙겨 주었고, ‘집에서 밥을 지어 여럿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누리는 기쁨’을 차근차근 보여줍니다.



“그렇다 해도 별로 상관없어. 두근거림 없는 연애도 재미있게 그리면 그만이야. 어떤 소재라도 재미있게 그린다면 말이지. 그게 안 되면 경험치를 올리는 수밖에 없어. 만화는 궁극적 엔터테인먼트거든. 그야말로 압도적 불운이나 불행을 경험하면 강해지지. 그런 환경히 제작 의욕으로도 연결되고 말야. 캐릭터도 좀더 깊이가 있었으면 싶네.” ‘살아온 방식도 인격도 전부 부정당한 느낌. 게다가 내용에 대한 언급은 전혀 안 했어. 난 재능이 없는 걸까?’ (18∼19쪽)



  겉으로만 본다면 주인공 리츠는 아주 눈부실 만해요. 키가 크고 잘생긴데다가 똑똑하다고 해요. 그러나 리츠는 이런 겉모습을 따지거나 생각하지 않습니다. 리츠로서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사람’을 곁에 두면서 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숨결을 한결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레 돌보고 싶은 꿈을 생각합니다.


  대학입시를 앞두고 ‘기른 어머니’가 몸져누우니 학교가 아닌 집을 고르던 리츠예요. 대학교란 대수롭지 않으며, 정 가야 한다면 집에서 ‘어머니 아버지 다른 두 동생’을 보살피고 집살림을 꾸리다가 나중에 시험을 치를 수 있다고 여겨요. 남들은 리츠한테서 겉모습을 보려 하지만, 리츠는 스스로 속마음을 생각할 뿐입니다.


  그래서 리츠는 ‘남들이 수수하게 보는 아가씨’가 리츠한테는 ‘수수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느껴요. 리츠는 겉모습이 아닌 마음을 바라보면서 읽으려는 사람이기에, ‘눈을 감고 마음으로 따스하게 다가오는’ 사람들 숨결을 즐거우면서 반갑게 맞이하지요.



‘가정환경은 평화롭고 별다른 문제가 없다. 남친은 미남에 다정하다. 난 별로 특별한 것 없는 수수한 여자지만, 만화가가 되고 싶은 마음은 미카리든 누구에게든 지지 않아.’ (29쪽)


“정말이네. 리츠가 입상했어. 너, 영화감독이 목표야?” “아니, 카오루 부장님이 멋대로 응모했어. 그냥 남매싸움을 찍었을 뿐인데, 카나데가 들떴지 뭐야.” (45쪽)



  그런데 말이에요, 주인공 리츠는 이런 마음이나 몸짓이어도, 리츠를 둘러싼 사람들은 아무래도 겉모습에 휘둘립니다. 리츠를 남자친구로 둔 아가씨는 ‘너무 수수하고 너무 평화로우며 너무 따스한 집안’에서 태어나 자란 탓(?)에 이녁이 그리는 만화가 너무 밋밋하면서 재미가 없구나 하고 생각해 버립니다. 마치 ‘타고난 불행을 잔뜩 짊어져야’ 재미나면서 톡톡 튀거나 새롭거나 멋진 만화를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말아요.



‘행복한 얼굴을 보고 나도 행복해진다. ‘뭔가 괴로운 일이 있어도 맛있는 밥 먹으면 우선은 기운이 나잖아.’ 그런 말을 해 준 그 애를 정말 좋아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내일부터는 다시, 제대로 앞을 보고 걷자.’ (98쪽)



  만화책 《은빛 숟가락》에 나오는 사람들은 우리 곁에서 어렵잖이 마주칠 수 있을 만하다고 느낍니다. 대단하거나 남다른 이들이 《은빛 숟가락》에 나오지 않아요. 아주 수수하거나 투박한 사람들이 이 만화책에 나옵니다. 이들은 때때로 즐겁게 제 길을 걷지만, 때때로 스스로 슬픔에 사로잡혀서 엉거주춤하거나 맴돌거나 수렁에 빠지곤 합니다.


  주인공 리츠는 ‘주인공답다’기보다 ‘리츠다운’ 마음으로 아픔을 툭툭 털어냅니다. 먼저, 제 앞에 놓인 모든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받아들입니다. 이러고 나서, 이 길이 가시밭길이든 수렁길이든 진흙길이든 대수로이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이녁이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제대로 보고서 나아가자고 생각해요. 아프다고 아픔에 젖지 않고 슬프다고 슬픔에 사로잡히지 않아요. 어버이가 아이한테 늘 새롭게 맛난 밥을 차려 주는 마음처럼, 기쁠 적에는 기쁨을 나누도록 밥을 짓고 슬플 적에는 슬픔을 달래도록 밥을 짓는 마음마냥, 스스로 차분하면서 고요하게 마음속을 바라보면서 숟가락을 손에 쥡니다.


  평화로운 살림은 평화에서 태어나요. 평화로운 살림에서는 평화로운 이야기가 흘러요. 평화로운 살림이기에 평화로운 사랑을 그릴 만해요. 리츠를 좋아하는 아가씨가 이 대목을 곧 깨달으면서 제대로 볼 수 있기를 빕니다. 모든 만화는 팽팽한 다툼이나 오르락내리락 고빗사위가 흘러야 하지 않습니다. 밀고 당기거나 악을 쓰거나 눈물을 쥐어짜거나 웃음이 마구 터져야만 하지도 않습니다. 겨울에 동백꽃이 피고 유채꽃이 피듯이, 새봄에 꽃샘바람을 맞으며 맑은 꽃이 피듯이, 가을에 나락이 익듯이, 드센 바람이 불어도 구름은 파란 하늘을 흐르듯이, 한겨울에도 해님이 눈부시듯이, 평화로운 살림에서는 오직 평화로운 살림이기에 그려서 보일 수 있는 아름다우면서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있어요. 이 아름다움하고 사랑스러움을 가슴으로 넉넉히 안아 보셔요. 2016.12.2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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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커플
우니타 유미 지음, 김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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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62



빈틈 많은 두 사람이 틈새로 엿본 마음

― 스토커플

 우니타 유미 글·그림

 김완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08.12.26. 8000원



  우니타 유미 님이 빚은 만화책 《스토커플》(애니북스,2008)은 마치 뒤를 몰래 캐거나 살피는 듯한 두 사람이 나와서 어우러지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처음에는 ‘틈새쟁이’라고 할 만큼 틈새를 들여다보며 놀기를 좋아하는 사내가 나옵니다. 이녁은 남이 무어라 하든 말든 건물과 건물이 맞닿으려고 하면서 맞닿지 않아 생긴 조그마한 틈새에 고개를 들이밀고 쳐다보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으나 얼결에 드러나는 속내를 틈새 엿보기로 즐긴다고 할까요.



틈새를 지나가는 약 1초 정도의 순간, 나는 주시한다 늘씬하고 귀여운 애가 천천히 걷고 있는지, 뚱뚱하고 귀여운 애가 고속이동하고 있는지. 틈새로밖에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진실은 알 수 없다. (13∼14쪽)


가만 생각해 보면 이쪽에서 엿볼 수 있다는 건 저쪽에서도 엿볼 수 있다는 소리다. 틈새란 그런 것. 그걸 깨닫지 못한 내가 멍청했던 거지. (24쪽)



  틈새쟁이 사내는 어느 날 이웃집 아가씨를 봅니다. 여느 날처럼 그냥 창가에 앉아서 바깥을 내다보는데, 문득 이웃집 커튼 사이로 속옷 차림 아가씨가 움직이는 모습을 봅니다. 아주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모습이었으나, 틈새쟁이 사내는 짧은 동안 스쳐서 지나가는 이웃집 아가씨를 엿보는 재미를 새롭게 붙였고, 날마다 엿볼 수는 없어도 이렇게 엿볼 수 있는 즐거움을 가슴속에 품어요.


  그런데 말이지요, 이웃집 아가씨도 건너편 사내를 커튼 틈새로 엿보아요. 게다가 이웃집 아가씨는 그냥 엿보지 않습니다. 사진기로 이웃집 사내 몸짓을 하나하나 담습니다. 우스꽝스러운 몸짓도 바보스러운 몸짓도 아주 재미있어 하면서 사진으로 찍지요.



엿보기만 하던 상대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다면 사람들은 보통 어떻게 반응할까? 아니, 엿본 것부터가 정상은 아니지만, 식당이 텅텅 비었는데 왜 하필 이 자리야? (61쪽)



  사람하고 사람 사이에는 언제나 틈새가 있기 마련입니다. 틈새가 없는 사람이란 없지 싶어요. 우리한테는 틈도 사이도 틈새도 있기 때문에 서로 어우러질 수 있지 싶어요. 이른바 ‘빈틈없는’ 사람이라면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을 테니 좀처럼 사귈 수 없다고 할 만해요. 틈새가 있기에, 빈틈이 있기에, 그러니까 허술하거나 모자란 대목이 있기에, 우리는 서로 한결 더욱 아끼거나 보살피려는 마음을 북돋우면서 사귈 수 있지 싶습니다.



“줌을 못 쓰겠다면 다가오면 되지.” “아, 그렇구나.” (196쪽)


“아하하, 누구에게나 빈틈을 보이는 게 아니랍니다.” (199쪽)



  멀어서 안 보이기에 사진기 줌렌즈를 쓰고 싶을 수 있어요. 그런데 줌렌즈를 쓴다고 해서 잘 보이지는 않아요. 줌렌즈를 쓰더라도 목소리를 못 듣고, 숨결을 못 느껴요. 줌렌즈를 내려놓고 가만히 다가서면, 목소리를 듣고 숨결을 느낄 뿐 아니라, 무거운 사진장비 하나도 없이 서로 마주보면서 따사로운 마음이 흐를 만합니다.


  나는 너한테 틈을 주면서 다가섭니다. 너는 나한테 틈을 주면서 다가옵니다. 우리는 서로 틈을 마련해서 이 틈에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넣습니다. 우리는 다 같이 틈을 내어 만나고, 틈을 빚어 어울리며, 틈을 지어 살림을 노래해요. 틈이 있기에 함께 있고, 틈이 있으니 어깨동무를 하지요.


  아주 작은 틈이라 하더라도 다 좋아요.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틈을 내면 돼요. 아주 조그마한 틈이라도 서로서로 다가서는 길목으로 맞닿아요. 사랑이라는 마음이기에 허술하거나 모자란 틈을 따사로이 보듬으면서 더욱 아름답고 즐거운 삶으로 거듭날 수 있어요. 2016.12.21.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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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코와 술 1
신큐 치에 지음, 문기업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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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661



혼자 있을 적부터 잘 먹고 잘 놀아야

― 와카코와 술 1

 신큐 치에 글·그림

 문기업 옮김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2014.12.20. 8000원



  만화책 《와카코와 술》(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2015) 첫째 권을 읽다가 생각합니다. 이 만화책을 좋게 생각하는 이하고 안 좋게 생각하는 이가 크게 갈릴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어느 모로 본다면 고작 대여섯 해쯤만 앞서도 한국에서 이런 만화책이 나오기 어려웠을 테고, 열 해쯤 앞서라면 더더욱 어려웠을 테며, 스무 해쯤 앞서라면 엄두조차 못 냈으리라 싶어요. 왜 그러한가 하면, 이 만화책에는 ‘혼자 살면서 혼자 술을 즐기는 아가씨’가 나오거든요. 사내가 혼자 술을 마시는 이야기는 흔해도 가시내가 혼자 술을 마시는 이야기는 아직 안 흔하거나 수수하게 바라보지 못하는 한국 사회이기도 해요.



산책으로 상쾌하게 땀을 흘렸다. 누가 알쏘냐. 산책을 위해 입은 옷에 숨겨진 원대한 계획을. 모든 것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서 한잔 걸치기 위해. (11쪽)


어떠냐. 혼자서 음식을 독차지한 당당한 모습. 이게 다 내 거라고. (13쪽)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가시내가 혼자 살면서 혼자 맛집이나 술집을 찾아다니면서 혼밥이나 혼술을 즐긴 지는 그리 오랜 일은 아니라고 느낍니다. 이는 한국이나 일본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엇비슷하리라 느껴요. 혼자 지구별을 돌아다니는 사내는 꽤 있었어도, 혼자 지구별을 두루 누비는 가시내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기도 했어요. 우리 사회는 아직 갑갑하고, 아직 닫혔으며, 아직 까마득합니다. 그러나 이 사회를 깨려는 몸짓이 있고, 이 사회로는 도무지 안 된다고 느끼는 숨결이 있으며, 이 사회를 앞으로 아름답게 바꾸려는 넋이 있어요.



오늘 밤은 나랑 데이트할 예정. (22쪽)


봄 야채는 보통 풋내가 나고, 쓰다고들 하는데, 그런 봄의 맛에 차가운 미즈와리가 몸을 파고들어 풋내가 맛있게 느껴지더라고. 어른의 봄. (57∼58쪽)



  혼자 일하고 혼자 살면서 혼자 차리는 밥상을 푸짐하게 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집에서 밥상을 혼자 차려서 먹기도 수월하지 않을 수 있으나, 혼자 밥을 먹으려고 바깥에서 밥집을 찾기에도 수월하지 않을 수 있어요.


  여럿이 둘러앉아 왁자지껄 떠들거나 온갖 밥을 차리는 자리도 즐겁습니다. 이에 못지않게 혼자 조용히 밥상맡에 앉아서 가만히 생각에 잠기면서 천천히 수저를 들 적에도 즐거워요.


  저는 예전에 혼자 살 적에 바깥일을 마치고 책방에 들러 혼자 여러 시간 책을 누리고는, 혼자 술집에 들러 안주 하나를 시키고 맥주 두어 잔을 마시면서 조용히 책을 읽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2000년대 첫무렵이었는데, 술집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던 사람은 아마 거의 없었겠지요.



다 같이 먹을 때는 창피해서 뼈에 붙은 살을 들고 뜯을 수 없었다. 이 뾰족뾰족한 곳을 발라내서 먹는 것까지 참았었으니까. 그때는 그때 지금은 지금. 피라냐가 물어뜯듯이 눈 깜짝할 새에 사라질 걱정 없이, 이렇게 느긋하게 마시며 즐길 수 있다니, 행복해. (106∼107쪽)



  혼자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차려서 먹을 수 있습니다. 그냥 냄비 하나로 밥을 지어 가볍게 먹을 수 있습니다. 혼자이기에 더 느긋하게 온갖 반찬을 아기자기하게 지어서 넉넉하면서 느긋하게 먹을 수 있습니다. 혼자이기에 아무것도 안 할 수 있지만, 혼자이기에 더 많은 것을 하면서 스스로 북돋울 수 있어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혼자일 적에 더 알뜰히 즐길 수 있는 살림일 적에, 둘이나 여럿이어도 새롭게 알뜰한 살림으로 나아갈 만하지 싶습니다. 혼자만 잘 살면 무슨 재미이느냐고도 하지만, 혼자 있을 적부터 잘 살고 잘 먹고 잘 노는 몸짓을 사랑하는 삶이어야, 여럿이 어울릴 적에도 잘 살고 잘 먹고 잘 노는 나라를 가꾸는 슬기가 자랄 수 있지 싶습니다. 2016.12.1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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