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후회망상 아가씨 5 - 우리에겐 시간이 없다, 도쿄 타라레바 아가씨
히가시무라 아키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752



생각을 해 보렴

― 도쿄 후회망상 아가씨 5

 히가시무라 아키코/최윤정 옮김

 학산문화사, 2017.3.25.



‘그런 모욕을 당한 건 나 하나로 충분해. 왜냐하면 우린 늘 즐겁게 지내고 싶으니까. 긍정적으로 살고 싶으니까.’ (23쪽)


“결혼 생각도 없는데 왜 사귀는 거야?” “응? 그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136쪽)


“나도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그건 아서라. 남자는 다 멍청해. 너도 나한테 이런 말 듣고 싶지 않겠지만.” (149쪽)



  즐겁게 살고 싶은 아가씨 셋은 언제나 즐거움을 찾습니다. 다만 즐거움을 찾기는 하되, 참말로 즐거운가는 미처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 즐거움이 얼마나 즐거울는지를 깊이 살피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남들이 즐겁다고 여기는 길을 따라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즐거움은 스스로 찾아야 해요. 그러나 즐거움을 바라는 아가씨 셋은 새로운 즐거움이 아닌 익숙한 놀이에서 그치곤 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마주하는 즐거움이 아닌, 어제도 그제도 그끄제도 늘 똑같이 되풀이하던 몸짓을 앞으로도 이어가고픈 몸짓이에요.


  이러다가 아주 호되게 지청구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이때까지도 숱한 사람들이 둘레에서 지청구를 했습니다만 여느 사람들 지청구는 한귀로 흘리거나 되레 짜증을 냈어요. 그렇지만 호되게 지청구를 하는 목소리는 가슴에 푹 박힙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둘레에서 뭇사람이 넌지시 들려주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새삼스레 가슴에 콕콕 박힙니다.


  《도쿄 후회망상 아가씨》에 나오는 세 아가씨는 발버둥을 칩니다. 하루하루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에 ‘이제는 더 젊지 않다’면서 발버둥을 칩니다. 몸도 몸집도 예전 같지 않지만 예전처럼 놀기를 바라면서 온갖 울타리에 부딪혀요. 이 수렁에서 빠져나올 길이 있을까요. 이 쳇바퀴에서 스스로 뛰쳐나올 수 있을까요.


  아니면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될 대로 되라지. 그냥 놀자’는 마음으로 치닫고 말까요. 또는 ‘그래, 삶이 뭐 대순가. 나이값을 해야지’ 하면서 꿈을 모두 접어버릴까요. 2018.2.19.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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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홍차 - 생활밀착형 홍차만화
김줄 그림, 최예선 글 / 모요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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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750


술 아닌 차 한 잔을 나누는 즐거움
― 오늘은 홍차
 김줄 그림·최예선 글
 모요사, 2017.2.14.


‘이것이 현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는데. 꼭 보상받는 건 아니구나.’ (19쪽)

‘막 세탁한 이불의 향긋하고 보송보송한 느낌이 너무 좋아서 나는 늘 이러고 장난을 쳤는데, 평소 꽤 엄했던 엄마도 그때만큼은 이상하게 혼을 내지 않으시더라.’ (53쪽)


  술 한 잔으로 슬픔이나 아픔을 달래는 분이 있습니다. 참말로 술 한 잔은 우리 마음을 찬찬히 녹이곤 합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술 한 잔으로 슬픔이나 아픔을 달래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해코지하는 짓을 저지르기도 해요. ‘술김’에 모르고 그랬다느니, ‘거나한’ 나머지 하나도 안 떠오른다고 핑계를 대지요. 갖은 성추행이 술김이나 거나한 나머지 생겨요.

  참 많은 사내들이 술김에 몹쓸 짓이나 모진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사내들은 왜 사람(누구보다도 가시내)을 만날 적에 굳이 술을 함께 마시자고 할까요? 술김에 자꾸 몹쓸 짓을 저지르고 거나한 탓에 모진 말썽을 일으킨다면, 사람을 만날 적에 술 아닌 차를 마시면 좋을 텐데요. 찻물을 마시다가 ‘찻김’에 말썽을 일으켰다는 얘기는 아직 들은 적이 없거든요.


“일곱 가지 꽃과 여섯 가지 허브를 섞었어요.” “아, 그래서 이렇게 다양한 맛이 나는구나. 이런 맛은 처음이에요.” (29쪽)

“모든 걸 잊게 하는 마법의 약은 아니지만, 차를 마시는 동안은 잠시 잊을 수 있지요. 쉼표가 필요할 때마다 홍차를 마셔 봐요. 조금은 다른 내가 되어 있을 거예요.” (31쪽)


  만화책 《오늘은 홍차》(모요사, 2017)를 읽습니다. 이 만화책에 나오는 ‘차를 마시는 사람’은 거의 다 가시내입니다. 그리고 이들 ‘차를 마시는 가시내’는 일터나 집에서 짜증이나 괴로움을 잔뜩 짊어집니다. 힘들된 어느 날 차 한 잔을 만나면서 온누리를 보는 눈이 달라진대요. 고되던 어느 날 차 두 잔을 만나면서 나를 스스로 바라보는 눈도 바뀌었대요.


‘겨우 홍차 한 잔에 달라진 내 모습에 킥킥대다가, 문득 깨달았죠. 작은 것 하나가 바뀌면 다른 것들도 조금씩 바뀌어서, 결국엔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지는 게 아닐까?’ (72쪽)

‘몸과 마음이 밀착되는 느낌이 들면서 내 마음이 말하는 게 조금씩 들리기 시작해요. 이 감각이 바로 ‘나’구나.’ (78∼79쪽)


  차 한 잔은 아주 대단하거나 커다랗지 않습니다. 차 한 잔은 참으로 작습니다. 고작 찻물입니다. 그런데 이 작은 찻물이 우리 몸을 바꾸어요. 몇 모금 찻물을 홀짝이다가 어느새 우리 마음까지 바꿉니다.

  우리 몸을 우리가 스스로 따뜻하게 감싸면서 우리 마음을 우리가 스스로 따뜻하게 어루만진다고 할 만합니다. 몇 모금 찻물로 몸을 따뜻하게 감싸니, 따뜻한 몸에서 피어나는 마음이 덩달아 따뜻합니다. 따뜻한 몸이랑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도 따뜻하면서 새롭게 기운이 흘러요.

  술도 자리에 따라서 무척 즐거운 마실거리가 됩니다. 다만 술만 마시다가는 말썽으로 이어지지 싶어요. 술을 가만가만 줄이면서 찻물로 바꾸어 볼 수 있다면, 어른 아이 다 같이 둘러앉아 서로 찻잔을 나눌 수 있다면, 향긋한 풀내음을 찻내음으로 바꾸고, 달콤한 꽃내음을 달콤한 찻내음으로 바꿀 수 있다면, 참으로 우리 삶을 우리 손으로 바꿀 만하지 싶습니다.


“좋은 타이밍을 놓쳤다고 해서 일을 완전히 망치는 건 아니에요. 타이밍을 놓친 덕분에 이렇게 맛있는 밀크티를 마실 수 있잖아요?” (112쪽)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어. 각양각색의 찻잔과 홍차들처럼.” (203쪽)


  술도 차도 모두 물입니다. 한쪽 물은 우리 몸을 얼근하게 바꿉니다. 다른 한쪽 물은 우리 몸을 따뜻하게 바꿉니다. 지나치게 들이켠 술이란, 막술이란, 얼근한 몸을 넘어 헬렐레한 몸으로 바꾸는 나머지 막짓이나 막말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따뜻하게 마시는 차란, 부드러우면서 넉넉한 찻물이란, 따스한 몸을 거쳐 따스한 마음으로 바꾸는 즐거움으로 으레 이어져요.


“인도에서는 네팔의 찌아와 꼭 닮은 짜이가, 한국 강진에서는 구수한 야생 발효차가, 일본에서는 연둣빛 녹차가, 프랑스에서는 짙은 홍차가, 그리고 트리샤는 알게 되었죠. 누군가 ‘차’라고 말할 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것을 떠올린다는 것을.” (256쪽)


  온누리 어느 곳에서나 찻물을 나눕니다. 인도도 네팔도 한국도 일본도 프랑스도, 또 숱한 나라마다, 골골샅샅 어디에나, 몸을 따뜻하게 달래고 마음을 포근하게 쓰다듬는 찻물이 흐릅니다.

  함께 따뜻하기를 빕니다. 몹쓸 손길이 아닌 따스하면서 고운 손길을 나누기를 빕니다. 향긋하면서 너른 마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엉큼한 손길은 이제 스러지고 상냥한 손길로 어깨동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18.2.1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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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한구석에 - 상
코노 후미요 지음 / 미우(대원씨아이)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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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51



토끼 그림이 있으면 바다를 싫어할 수 없어

― 이 세상의 한구석에 上

 코노 후미요/강동욱 옮김

 미우, 2017.10.31.



“저녁 굶으면 불쌍하잖아. 아무리 도깨비라도.” “그 사람 도깨비였어?” (17쪽)


‘아아, 역시 너무 흥분이 돼서 잠을 설쳤다. 셋이 바다를 건너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 엄마 아빠 얘기는 듣지도 않는다.’ (21쪽)



  지난 2005년에 《저녁뜸의 거리》라는 만화책이 한국말로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 만화책은 히로시마에서 태어나 자란 분이 히로시마에서 마주한 이웃이자 동무가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만 그린이는 피폭 1세도 2세도 아니요, 살붙이 가운데 피폭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히로시마에서 살며 전쟁을 마주하고 원자폭탄을 맞고 전쟁 뒤를 살아간 분들을 찾아다니면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듣고는 이를 만화로 옮겼다고 해요.


  《저녁뜸의 거리》라는 만화책은 한국에서 조용히 나왔다가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이러다가 2017년에 《이 세상의 한 구석에》라는 만화책 세 권이 한꺼번에 나오는데, 만화책을 바탕으로 빚은 만화영화가 한국에서 극장에 걸렸지요.



“스즈, 여기 놔두고 옷을 개렴. 놔두면 나중에 먹으러 올 거야.” “할머니, 옷도 여기 놔두면 입으러 올까요?” “스즈는 마음씨도 참 곱구나.” (32쪽)



  《이 세상의 한 구석에》라는 만화책은 책에 붙은 이름 그대로 ‘온누리’ 가운데 ‘한 구석’에서 나고 자란 작고 수수한 사람들이 어떻게 삶을 바라보고 살림을 꾸렸는가를 낱낱이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들 작고 수수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일본 히로시마 한켠에서 가시내로 태어나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다가 시집을 가서 시집에서 새롭게 온갖 집안일을 도맡을 뿐 아니라, 마을에서 시키는 마을일도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초등학교라고 할 만한 데는 다녔으나 학교를 더 다닌 적이 없는 1930년대 어린 가시내가 만화책에 나옵니다. 학교를 다니며 수업을 듣기보다 꾸벅꾸벅 졸지만, 늘 그림을 그리면서 논답니다. 가만 보면 집에서 늘 온갖 집안일을 하는 아이인 터라, 바닷가에서 맨손으로 김을 뜨고 말리고 걷고, 또 이렇게 갈무리해서 띄운 김을 상자에 담아 도시(읍내)로 가서 내다 파는 몫까지 하는 아이인 만큼, 학교에서 꾸벅꾸벅 졸 만합니다.


  이 대목에서 더 헤아려 보아야지 싶어요. 저는 1980년대 첫무렵에 국민학교를 다니면서 학교에서 우리한테 쑤셔넣은 ‘반공 교육’이라든지 ‘데모는 나쁜 짓’이라고 하는 말을 고스란히 믿으면서 감쪽같이 속은 채 자랐습니다. 제 또래도 으레 비슷했지 싶습니다. 학교에서 아이들한테 민주물결을 안 가르쳤어요. 철들기 앞서 아이들은 어른이 시키는 대로 따르거나 배우지요.


  우리로서는 일제강점기인데, 일본으로서는 제국주의 권력자가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면서 제 나라(일본) 아이들한테 참다운 역사나 사회를 가르쳤을까요? 그리고 그무렵 집안일에 바쁜 일본 아이들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나 사회’를 얼마나 귀여겨들으면서 얼마나 믿었을까요? 아니 학교 교육에 마음을 쓸 틈이란 없겠지요. 지난날에는 밥을 차릴 적에도 나무를 해서 불을 피우고 솥에 물을 맞추고 하나하나 손으로 했으니까요.



“(바다에서) 토끼가 뛴다. 전복 사고가 있었던 그 설날도 바다가 이랬는데. 그리고 싶으면 네가 대신 그리든가. 이 개떡같은 바다라도.” “미즈하라. 방금 한 말 무슨 뜻이야?” “어? 아, 그런 말 안 써? 봐. 하얀 파도가 일면 하얀 토끼가 뛰는 것 같잖아.” (46∼47쪽)


“정말이지 쓸데없는 짓만 한다니까. 완성되어 버리면 집에 가야 되잖아. 이런 그림이 있으면 바다를 싫어할 수가 없잖아.” (50∼51쪽)



  만화책 《이 세상의 한 구석에》에 나오는 아이는 틈이 나면 그림을 그립니다. 이 아이는 대단한 그림을 그리지 않습니다. 동생하고 오빠를 그리고, 마을을 그립니다. 동무를 그리고, 읍내를 그립니다. 하늘을 그리고 바다를 그려요.


  드센 물결이 치는 바다를 바라보던 동무가 ‘토끼 물결’이라고 말하자, 참말 물결이 토끼뜀처럼 보이는구나 싶어 토끼 바다를 그려요.


  밥을 짓는 부엌을 그립니다. 김을 뜨는 바닷가를 그립니다. 갯벌을 그리고, 수박을 그리며, 천장에서 산다는 도깨비를 그립니다. 할머니를 그리고 나무를 그리지요.


  그림을 좋아하던 아이네 오빠는 군대에 갑니다. 아마 끌려갔겠지요.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네 동무 가운데 사내는 하나같이 군대에 가요. 다들 끌려갑니다. 그리고 군대에 간 사내들이 숱하게 죽어 나가니, 집이나 마을에 남는 가시내는 온갖 일을 떠안습니다.


  언뜻 보자면 만화책에 흐르는 살림살이는 ‘살짝 평화롭게’ 보일 수 있습니다. 1930∼40년대가 이토록 살짝 평화로울 수 있으랴 싶지만, 곰곰이 따져 본다면 살짝 평화스러움이라기보다는, 아무리 힘들거나 고되거나 아프거나 슬프더라도 ‘하루하루 밥을 먹으며 산다’고 할 만합니다. 평화로운 모습이 아닌, 고되어서 씩씩하게 살아가려는 모습이지 싶어요.


  날마다 나무를 하고, 날마다 불을 지펴요. 날마다 빨래를 하고, 날마다 비질이며 걸레질을 해요. 날마다 집안일을 할 뿐 아니라 돈을 버는 일(바닷가에서 김 뜨기)을 함께하지요. 한겨울에 맨손이 얼어붙으면서 갖은 일을 합니다.


  이런 작고 수수한 사람들한테 일본 권력자는 전쟁질을 시키거나 떠안깁니다. 사내한테는 총을 쥐라 하고, 가시내한테는 집안일에 얽매이게 내몹니다. 젊은 사내는 풋풋한 나이에 총알받이가 되고, 나이든 사내는 군수공장에서 ‘나라가 시키는 대로’ 전쟁무기 때려짓는 일을 합니다.



“다 큰 어른이, 6살 애랑 경쟁하겠다고……. 망신은 슈사쿠의 몫이거늘.” “자, 자아! 시험 재배는 이 정도로 끝내고 실제로 경작 계획을 짜 볼까.” (133쪽)



  일본이라는 나라는 틀림없이 몹쓸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떠했을까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권력자는 사람들을 얼마나 곱게 바라보면서 돌보는 길을 걸었을까요?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사람들 사이를 가른 신분이나 계급을 되새겨 보아야지 싶어요. 조선이 무너지고 새로 선 나라에서 정치권력자는 오랫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찬찬히 짚어야지 싶어요. 그리고 이런 정치권력자 밑에서 삶을 짓고 살림을 가꾼 작고 수수한 사람들을 다시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총알받이로 끌려간 젊은 사내는 바로 우리요, 우리 식구요, 우리 이웃이거나 동무입니다.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는 채 집안일을 도맡아야 한 모든 가시내도 바로 우리요, 우리 식구요, 우리 이웃이거나 동무입니다.


  만화책 《이 세상의 한 구석에》는 따로 전쟁을 따지거나 평화를 노래하지 않습니다. 이 만화책은 작고 낮으며 수수한 목소리로 ‘바로 이곳에 사람이 살아갑니다’를 이야기합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심부름을 하고 갖은 일을 하던 아이가 살아가던 하루를 이야기합니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온갖 일을 하며 자라다가 갓 스무 살이 된 젊은 아가씨가 시집에서 새롭게 집안일이며 마을일을 하면서 무엇을 보고 생각하고 그림으로 옮겼는가를 찬찬히 이야기합니다.



“엄마, 나 2전만 줘. 연필을 잃어버렸어.” “하나도 없니?” “아직 하나 있긴 한데.” “없으면 다음주 용돈 받을 때까지 버텨. 네가 낙서만 안 하면 되잖아.” (37쪽)



  우리도 우리 스스로 지난 1930∼40년대를 ‘한국 시골 아주머니’ 눈길이나 눈높이로 바라보면 어떤 모습이 될 만한가를 그려 보아야지 싶어요. 지식인이나 정치인이나 사내들 목소리나 눈높이가 아닌,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이 어릴 적부터 집안일을 하며 자라다가 어른이 되어도 집안일을 그대로 하고 아이를 낳고 밭일 논일 몽땅 하던 ‘한국 시골 아주머니’ 눈길이나 눈높이로 바라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이러면서 오늘 이곳도 ‘작고 수수한 서울 언저리 아주머니’ 눈길이나 눈높이로 바라볼 수 있다면, 아주 다른 역사와 사회를 들여다볼 만하지 싶습니다.


  토끼 물결 그림이 있어 바다를 사랑합니다. 새끼손가락 끝마디보다 짧은 몽당연필을 아껴 가며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하루를 사랑합니다. 만화책(+ 만화영화) 주인공인 아가씨는 일본이 전쟁에서 졌다는 이야기를 라디오로 듣고 난 뒤에 마을에 걸린 태극기를 처음으로 보고는 ‘학교와 나라와 마을에서 아무도 안 가르친 역사와 사회가 있’는 줄 비로소 깨달아요. 이때부터 ‘남이 시키거나 가르치는 대로 따르지 않겠노라’면서 눈물을 흘리며 다짐해요. 남(정치권력)이 무엇을 시키거나 가르치려는가를 헤아려 보지 않고서 그대로 따르던 길을 끝낼 줄 아는 몸짓, 작고 낮으며 수수한 이웃 목소리를 듣기, 우리 앞길을 찬찬히 생각해 봅니다. 2018.2.1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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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야샤 10
다카하시 루미코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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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49



우리가 입은 몸이란

― 이누야샤 10

 타카하시 루미코/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02.5.25.



‘부탁한다, 내 몸아. 제발 버텨 다오. 마지막 일을 끝낼 때까지.’ (9쪽)


“나라쿠 자식, 사혼의 조각을 심어서, 죽을 때까지 이 녀석을 싸우게 할 속셈이었어.” (53쪽)


“한꺼번에 좀 말하지 마!” “다시 한 번 말할까요?” “즉 혼이란 선하게도 악하게도 될 수 있다는 뜻이야.” (103쪽)


“요괴들은 그 남자의 마음의 틈새를 파고들어, 남자에게 씌었지. 많은 요괴가 하나로 뭉치려면, 삿된 마음을 가진 인간을 연결고리로 쓰는 것이 가장 간단하다고 해.” (105∼106쪽)



  몸더러 조금 더 버티어 달라고 바라는 적이 있습니다. 이때에 참말로 몸은 조금 더 버티어 줍니다. 몸한테 다시 더 버티어 달라고 바라기도 합니다. 이때에도 몸은 기꺼이 다시 더 버티어 주어요. 어쩜 몸은 이리 대단한가 하고 여기면서 마지막으로 더 버티어 주겠니 하고 바라면, 몸은 스스럼없이 마지막으로 더 버티어 줍니다.


  젖 먹던 힘을 내 달라고 하면 젖 먹던 힘을 내주는 몸입니다. 이제 더 못 버티겠구나 싶으면 참으로 몸은 더 못 버티면서 풀어져 버려요. 이러면서 가만히 생각하지요. 어쩌면 우리 몸이란 우리가 바라보고 바라는 대로 움직이지 않는가? 어쩌면 우리 몸이란 우리가 바라보거나 바라는 길이 없으면 흐트러지거나 풀어지지 않는가?


  《이누야샤》 열째 권에 이르면 사혼 구슬이 태어난 마을 이야기가 흐릅니다. 사혼 구슬을 찾아가는 아이들은 이 아이들대로 ‘버티는 몸’하고 ‘버티지 못하는 몸’을 바라보고 느낍니다. 요괴랑 반요괴랑 사람은 버틸 수 있는 몸이 달라요. 서로 다른 몸인 터라 ‘내 몸을 잣대로 네 몸을 바라보’곤 합니다. 다만 튼튼하거나 억센 쪽은 여리거나 힘든 쪽을 잘 몰라요.


  바라는 대로 움직일 수 있는 몸이라면, 즐거운 쪽으로뿐 아니라 궂은 쪽으로도 움직이겠지요. 이와 맞물려 우리 넋도 고운 쪽으로도 흐를 테지만 얄궂은 쪽으로도 흐르겠지요. 착하게 생각을 심으면서 착한 넋으로 거듭나요. 나쁘게 생각을 심으면서 나쁜 넋으로 치닫고요.


  우리는 기쁘면서 상냥한 숨결이 들어오도록 활짝 여는 마음인가요, 아니면 궂으면서 지저분한 숨결이 들어오도록 빈틈이 많은 마음인가요. 2018.2.5.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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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소리 15
라가와 마리모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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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책 즐겨읽기 748



소리 훔치기, 또는 소리 배우기

― 순백의 소리 15

 라가와 마리모/서현아 옮김

 학산문화사, 2017.4.25.



‘내 손 좀 볼래? 굉장하지? 아무것도 없는데.’ (22쪽)


“나는 제자 같은 거창시런 건 안 받는다. 그러니까네, 네 마음대로 와가 마음대로 소리 듣고 마음대로 훔치면 된다.” (52쪽)


“할배는 니보다 엄치 오래 안 살았나,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마이 만났제. 그만큼 여러 가진 기라. 깨닫고 보면, 그기 다 소리다.” (81∼82쪽)


‘나의 소리. 부디, 받아들여 주기를. 부디, 부디, 이 소리가, 마음에 닿기를.’ ()98∼99쪽)



  《순백의 소리》 열다섯째 권에서는 ‘훔치기’ 또는 ‘배우기’를 이야기합니다. 얼핏 보자면 아무것도 없다 싶은 두 손인데, 이 손에 악기를 쥐니 어마어마한 소리가 흘러 노래로 거듭납니다. 그냥 보자면 아무것도 아닌 두 손이 있는 사람인데, 이 손에 연필을 쥐니 사람들 가슴을 파고드는 글꽃을 피웁니다.


  빼어난 노래를 켤 줄 아는 사람은 누구한테서 무엇을 배웠을까요? 놀라운 스승이 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스승한테서 소릿결을 훔쳤기 때문일까요? 스승은 아이한테 소리를 빼앗길까요, 아니면 그냥 들려줄까요, 아니면 조용히 물려줄까요?


  배울 줄 아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배웁니다.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은 옆에 앉아서 하나하나 짚어 주더라도 못 배웁니다. 배우려 하는 사람은 제 모두를 몽땅 내려놓은 다음에 새로운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들입니다. 배울 줄 모르는 사람은 제 모두를 단단히 세워서 어떤 새로운 바람도 스미지 못하게 닫아겁니다.


  우리 함께 배워 봐요. 우리 같이 노래해 봐요. 즐겁게 새바람을. 2018.2.3.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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