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의 뉴욕 프러포즈 - 뉴요커 100명과 함께한 아주 특별한 결혼 선물
정상구 사진, 박평종 글 / 포토넷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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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로 사진을 나누는 기쁨
 [찾아 읽는 사진책 88] 정상구, 《100번의 뉴욕 프러포즈》(포토넷,2011)

 


  나는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이 사진을 선물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사진을 처음 배워 처음 찍던 때부터, 내가 찍은 사진은 나한테 사진으로 찍힌 사람들한테 고스란히 선물로 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부러 선물하려고 사진을 찍지 않았으나, 사진기를 쥐고 사진기에 눈을 박아 사진기 단추를 누를 때면, 내가 나눌 수 있는 가장 좋으며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선물이 사진 한 장으로 태어날 수 있기를 빌었습니다.


  내 곁 좋은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든, 헌책방 마실을 하며 헌책방 일꾼을 담거나 헌책방 책시렁을 사진으로 담든, 골목동네 나들이를 하며 골목이웃과 골목꽃과 골목집을 마주하며 사진으로 담든, 옆지기를 만나고 두 아이를 낳으며 살아가는 나날을 사진으로 담든, 나로서는 언제나 내 사진감한테 선물로 돌려주고픈 사진입니다.


  내 곁 좋은 님과 벗은 모두 ‘오늘 이곳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곧바로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싱그러이 마시고 고마이 내쉬는 숨결 하나가 고마운 선물이라고 느낍니다. 목숨 한 자락이 가장 커다랗다 할 만하고 가장 놀랍다 할 만하며 가장 거룩하다 할 만한 선물이라고 느껴요.


  선물을 누리는 삶이기에 선물을 돌려주는 사진을 찍습니다. 선물을 받는 삶이기에 기쁘게 선물을 바치는 사진을 찍습니다.

 

 

 


  내 눈을 사진기에 박아 들여다봅니다. 나를 마주하는 사람이 웃습니다. 나도 웃으면서 단추를 살짝 누릅니다. 내 눈을 사진기에 박고 바라봅니다. 나와 마주한 헌책방 책시렁과 골목집 꽃그릇이 환하게 빛납니다. 나도 환하게 빛나는 넋이 되어 단추를 살며시 누릅니다.


  서로서로 좋은 꿈과 마음과 사랑이 되기에 사진 하나 곱게 태어납니다. 다 함께 기쁜 뜻과 얼과 이야기가 되기에 사진 하나 즐거이 태어납니다.


  정상구 님이 빚은 사진책 《100번의 뉴욕 프러포즈》(포토넷,2011)를 읽습니다. 정상구 님은 미국 뉴욕으로 여러 날 마실을 떠나 사진을 찍었습니다. 무언가 남달리 선물하고 싶은 사진을 찍고픈 마음이었기에, 비행기를 타고 멀리멀리 뉴욕까지 찾아갔습니다. 정상구 님은 지구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여행 글’과 ‘여행 사진’을 빚는 일을 한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정상구 님 삶에 걸맞게 뉴욕 마실을 하며 사진을 찍을 만해요. 내가 무언가 남다르다 싶은 사진을 얻고 싶다면, 나로서는 한국땅 곳곳에 자리한 헌책방을 샅샅이 돌며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골목동네를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온 나라 골목동네 곳곳을 찬찬히 누비미 사진을 찍을 만합니다.


  곧, 누군가는 미국 뉴욕에서 마주한 백 사람한테서 들은 좋은 말마디를 엮어 ‘한 사람한테 바치는 사진잔치’를 열 수 있고, 누군가는 인천이나 춘천이나 목포 골목동네를 돌며 마주한 백 사람한테서 들은 예쁜 말마디를 그러모아 ‘한 사람한테 드리는 사진잔치’를 열 수 있어요. 온 나라 백 군데 헌책방 일꾼한테서 들은 사랑스러운 말마디를 갈무리해서 ‘한 사람한테 올리는 사진잔치’를 열 만합니다. 이 나라 백 군데 시골마을 흙일꾼 할머니한테서 들은 고운 말마디를 추슬러 ‘한 사람한테 베푸는 사진잔치’를 열어도 즐거워요.

 

 

 

 


  뉴욕으로 날아가서 사진을 찍던 정상구 님은 “경험이 쌓이자 이제는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순간들이 더 큰 즐거움으로 다가왔습니다(머리말).” 하고 말합니다. ‘나와 함께 살아요.’ 하고 말하는 일도 설레며 기쁠 테지만, 이렇게 말하기 앞서 여러 가지 잔치를 꾀하면서 겪는 일도 기쁘리라 생각합니다. 오래오래 함께 살아갈 옆지기를 헤아리는 꿈도 기쁠 테고, 옆지기한테 줄 선물을 생각하는 마음도 기쁠 테지요.


  언제나 오늘 하루 살아가며 기쁩니다. 어제는 어제대로 보낼 수 있기에 기쁩니다. 글피나 모레는 글피나 모레를 맞이할 수 있어 기뻐요.


  사진은 어제도 모레도 글피도 아닌 오늘을 찍습니다. 오늘 바로 이곳에서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누리는 삶이 즐거워서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누리는 삶이 괴롭기에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누리는 삶이 기쁜 만큼 사진을 찍습니다. 오늘 누리는 삶이 슬픈 만큼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으로 담는 이야기는 환할 수 있으나 어두울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엮는 이야기는 아플 수 있으나 산뜻할 수 있습니다. 사진으로 모두는 이야기는 놀라울 수 있으나 수수할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으로 흘러야 멋진 사진이 아닙니다. 어느 쪽으로 흐르든 내가 살아가며 사랑한 이야기라면 즐겁고 좋으며 반가운 사진입니다.

 

 

 

 


  정상구 님은 “사흘 동안 뉴욕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메시지를 받던 그 순간들이 제게는 진심이 가득 담겼던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충실한 시간이었습니다(머리말).” 하고 이야기합니다. 정상구 님이 사랑하는 분한테 바치려는 사진과 사진잔치와 사진책은 모두 어여쁩니다. 두 사람이 앞으로 일굴 나날도 어여쁠 테지만, 바로 오늘 이곳에서 서로 누리는 이야기잔치가 어여쁩니다.


  오늘을 사랑하기에 어제를 사랑합니다. 오늘을 사랑하기에 모레와 글피를 사랑으로 맞이합니다. 오늘 땀을 흘리면서 어제 흘린 땀을 즐거이 되새깁니다. 오늘 땀을 흘리면서 모레와 글피에 흘릴 내 좋은 땀을 곰곰이 꿈꿉니다.


  선물로 사진을 나누는 기쁨이란, 오늘 내 삶을 더없이 아름다이 누리면서 그지없이 즐거이 빛내고픈 사랑을 빚는 속삭임입니다. (4345.4.4.물.ㅎㄲㅅㄱ)


― 100번의 뉴욕 프러포즈 (정상구 사진·글,포토넷 펴냄,2011.4.11./1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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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쏘다, 활 - 일상을 넘어 비범함에 이르는 길
오이겐 헤리겔 지음, 정창호 옮김 / 걷는책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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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값이 비싼 책, 값이 싼 책
 [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45] 오이겐 헤리겔, 《마음을 쏘다, 활》

 


- 책이름 : 마음을 쏘다, 활
- 글 : 오이겐 헤리겔
- 옮긴이 : 정창호
- 펴낸곳 : 걷는책 (2012.3.15.)
- 책값 : 12000원

 


  여기 책이 한 권 있습니다. 이 책은 모두 100만 권을 찍었고, 책값이 2012년 4월 1일에 1만 원입니다. 쪽수는 400쪽이요, 신문과 방송과 잡지에서 널리 추켜세우며 몹시 잘 팔립니다.


  여기 책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책은 모두 100권을 찍었고, 책값이 2012년 4월 1일에 1만 원입니다. 쪽수는 100쪽이요, 어느 신문도 방송도 잡지도 추켜세운 적 없을 뿐 아니라, 깎아내리거나 손가락질한 적조차 없습니다. 여느 책방에 들어가지 않은 책이니, 이 책을 사는 사람도 없으나 알아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도서관에조차 없으니, 이 책을 이야기하는 사람마저 없습니다.


  두 가지 1만 원짜리 책이 한 자리에 놓입니다. 내 주머니에는 꼭 1만 원이 있습니다. 나는 이 돈으로 짜장면 한 그릇에다가 이과두술 한 병 사서 먹을 수 있습니다. 이러고 돈이 남아 집까지 버스를 타고 돌아갈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돈으로 길거리에서 옷 한 벌 사서 입을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돈으로 빵집에 갈 수 있고, 찻집에 들를 수 있습니다. 또는 은행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귀여운 이웃 아이한테 선물로 줄 수 있습니다. 라면을 산다면 1만 원으로 몇 봉지를 살 만할까요. 과자를 산다면 이 돈으로 몇 봉지를 살 만한가요.


  널리 사랑받고 잘 알려진 1만 원짜리 두툼한 책이 내게 읽기 좋은 책일까요. 아무도 모르고 나 또한 하나도 모르는 똑같이 1만 원짜리 얇은 책이 나한테 읽기 좋은 책일까요. 같은 1만 원을 치른다 할 때에, 두툼하고 잘 알려진 책이 내 마음밭에 깊이 아로새겨질 만할까요. 같은 돈으로 책을 살 때에, 얇고 아무것도 모르는 책이 내 마음자리에 또렷이 돋을새김할 만할까요. 부피가 큰 책이 값싸다 할 만할까요. 부피가 작은 책은 비싸다 할 만할까요.


..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이지만, 계산하고 사고하지 않을 때 위대한 작품을 창조해 낸다 … 인간 자신이 바로 비요, 바다요, 별이며, 새순이다 … 스승들은 자신이 마치 혼자 있는 듯이 행동한다 ..  (28, 87쪽)


  공장에서 찍어 만든 똑같은 과자가 둘 있습니다. 똑같은 과자 둘인데, 이 과자를 들인 가게 두 곳 값이 다릅니다. 가게가 집 가까이 있으면, 사람들은 으레 값싸게 파는 가게로 가서 삽니다. 누군가는 가게 일꾼 마음씨를 살피며 값이 조금 더 비싸다는 곳에 갈는지 모르지만, 똑같은 과자를 놓고 더 비싼 녀석을 굳이 사려고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똑같은 책이 두 권 있을 때에도 사람들 마음은 거의 비슷합니다. 100원이라도 더 값싸게 파는 책방으로 가서 책을 장만합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산다 할 때에도, 100원이라도 더 눅은 데를 찾습니다.


  그런데, 여기 조금 다른 과자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여느 식품공장에서 화학조미료와 화학성분으로 만든 가공식품이고, 하나는 유기농 곡식으며 빚으면서 화학조미료는 하나도 안 씁니다. 가공식품 과자는 값이 1000원이고, 유기농 과자는 값이 2000원입니다. 이때에 사람들 마음과 눈길은 어느 쪽으로 갈까요. 한결 값싼 쪽으로 마음과 눈길이 갈까요, 내 몸에 좋거나 내 몸을 살리는 쪽으로 마음과 눈길이 갈까요.


  흙을 일구는 일꾼이 비료와 풀약을 쓰는 까닭은, 품을 적게 들이면서 더 많이 거두고 싶으며, 더 때깔 번드르르하게 거두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더 잘 사다 먹으니까요. 게다가, 도시사람이 아무리 ‘유기농’이니 ‘친환경’이니 따진다 하더라도, 막상 가게에 가고 보면 더 값싼 푸성귀나 나물이나 열매를 사다 먹습니다. 제대로 일군 좋은 먹을거리를 제값 치르며 사다 먹으려는 도시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 어느 선사가 이미 벗어던진 것, 그리고 더 이상 아쉬워하지도 않는 것에 대해 이런저런 설명을 할 유혹에 빠지겠는가 … 그때서야 나는 선생님의 오른손이 갑자기 열리고, 시위를 놓으면서 순간적으로 뒤로 움직였지만, 몸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는 덤덤하게 학생들의 실수 섞인 노력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자립성이나 독창성 등을 바라지 않고, 그저 참을성 있게 제자가 성장하고 원숙해지기를 기다린다. 양쪽 모두 서두르지 않는다. 스승은 윽박지르지 않고, 제자는 성급하게 발걸음을 놀리지 않는다 … 제자가 얼마나 멀리까지 도달할 것인가는 스승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다. 스승은 제자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하자마자 제자 스스로 그 길을 걸어가도록 한다 ..  (42, 65, 86, 93쪽)


  여기 책이 잔뜩 있습니다. 책을 파는 일꾼은 책을 값에 따라 나누었습니다. 100원짜리와 500원짜리와 1000원짜리와 5000원짜리와 1만 원짜리가 있습니다. 책을 사서 읽으려 하는 사람한테 1만 원이 있다면, 이 가운데 어느 책을 골라서 살까요. 값싼 100원짜리 책으로 100권을 사면 흐뭇할까요. 500원짜리 20권이면 즐거울까요. 1만 원짜리 책을 1권 사면 어딘가 찝찝할까요.


  여기 번역책이 있습니다. 이른바 “초원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옮긴 책입니다. “초원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을 쓴 미국사람은 “큰 숲 작은 집”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나, 이 소설을 연속극으로 만들었을 때에, 이 연속극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일본사람이 붙인 “草原の家”라는 이름을 껍데기만 한글로 바꾸어 “초원의 집”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름이야 어떠하든, 이 소설책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책은 500원이고 어느 책은 5000원입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어느 책을 골라서 살까요. 값을 살피며 책을 살까요, 번역이 얼마나 제대로 되었는가를 살피며 책을 살까요.


  여기 또다른 책이 있습니다. “모비딕”이라는 이름이 붙은 책입니다. 하나는 1000원이고 다른 하나는 3000원입니다. 1000원짜리는 간추린 판이고, 3000원짜리는 모두 옮긴 판입니다. 옆에 2000원짜리도 있는데, 간추렸는지 모두 옮겼는지 안 밝혔으나 두께는 모두 옮긴 판하고 거의 비슷합니다. 이때에 사람들은 어느 책을 골라서 살까요. 값을 따져 책을 살까요, 간추린 판인가 모두 옮긴 판인가를 곰곰이 따지며 책을 살까요.


.. “해야 할 것에 대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면 될지를 궁리하지 마십시오. 쏠 때는 쏘는 사람 자신도 모르게 쏘아야만 흔들림이 없습니다 … 당신은 발사 자체에 온 정신을 쏟지 않고, 미리부터 성공이냐 실패이냐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 왜 스승은 필수적이긴 하지만 초보적인 수준의 준비 작업을 경험 있는 제자에게 맡기지 않는가? 자신이 직접 먹을 갈면 상상력이 고양되고, 꽃다발 끈을 잘라 내던지는 대신에 직접 조심스럽게 풀면 조형의 능력이 향상되기라도 한단 말인가 ..  (67, 70, 88쪽)


  나와 옆지기가 책을 살펴 장만하는 삶을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나와 옆지기는 책을 살 때에 값을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사야 하는 책이면 삽니다. 사야 하는 책이 아니라 하면, 거저로 주어도 받지 않습니다. 읽어야 하는 책일 때에는 제값을 톡톡히 치러 장만합니다. 읽어야 하지 않는 책이라면 아무리 에누리를 해 준다 하더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두께가 얇으나 값이 꽤 세다 싶도록 붙은 책은 어김없이 있습니다. 맞아요. 이런 책이 있습니다. 두께가 두툼한데 값이 참 눅다 싶게 붙은 책이 으레 있습니다. 놀랍지만, 이런 책이 있습니다. 내 주머니는 보배 곳간이 아닌 만큼, 사고픈 책이 있다 해서 몽땅 장만하지 못합니다. 내가 사고픈 책을 몽땅 장만할 수 있으면, 참 아름다운 책들로 내 책터를 꾸미겠구나 싶기도 하지만, 어쩌면 책에 파묻히고 말아 내 삶을 가만히 돌아보며 사랑하는 길을 놓칠 수 있습니다. 나는 늘 내 주머니에 따라 책을 사기는 하지만, 내 가벼운 주머니로 책을 산다 하더라도 푼푼이 돈을 모은 다음, 내 마음을 밝히고 내 생각을 북돋우며 내 사랑을 보듬는 좋은 삶동무 같은 책을 하나 장만합니다.


  아름다이 읽으며 아름다이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는 책이라면 우리한테 좋은 책이에요. 아름다이 먹으며 아름다이 기운 얻는 바탕이 되는 먹을거리라면 우리한테 좋은 밥이에요.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해야 합니다. 스스로 옷을 짓거나 손질하고 빨래까지 하면서, 옷 한 벌을 마련하는 데에 드는 품과 겨를과 땀과 삶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먹을거리를 손수 일구어야 합니다. 백만 평이나 십만 평 논밭을 일구어야 하지는 않아요. 다문 한 평이라도 내 밭뙈기를 일구면서 내 몸을 살찌울 먹을거리가 어떠한 품과 겨를과 땀과 사랑으로 태어나는가를 느끼며 알아차려야 합니다.


  사람들 스스로 책을 읽고 싶다면, 사람들 스스로 책을 써야 합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책시렁에 꽂힐 책이 아닌, 내 삶을 짓는 이야기를 담아, 내 아이와 이웃과 동무한테 들려줄 꿈이 피어나는 책을 써야 합니다. 스스로 책을 써 보면, 곧 스스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사진을 찍으면, 비로소 ‘내 삶에 아름다이 젖어들’ 아름다운 글과 그림과 사진을 만나요. 스스로 글을 쓰며 스스로 좋은 글을 맞아들입니다. 스스로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 좋은 그림을 느낍니다. 스스로 사진을 찍으며 스스로 좋은 사진에 눈물을 흘립니다.


.. “당신은 배우는 과정에서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한시도 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러지 말고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어떻게 되어 가는지, 묵묵히 참고 기다리십시오 …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길은 측량할 길이 없습니다. 몇 주, 몇 달, 몇 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 지금 나는 칭찬을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러니 당신이 감격할 이유는 없지요 … 그렇게 해서 백발백중 표적을 맞춘다면, 당신은 남에게 과시하는 기교적 사수에 불과합니다” ..  (100∼101, 104, 109쪽)


  오이겐 헤리겔 님이 빚은 책 《마음을 쏘다, 활》(걷는책,2012)을 읽습니다. 참 얇은 책입니다. 책값은 12000원입니다. 언뜻, 움찔, 할 사람이 있겠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지난일 한 자락 떠오릅니다. 2005년 일인데, 《부처와 테러리스트》(달팽이,2005)라는 책이 갓 나왔을 적, 나 또한 움찔 하면서, 어라 책값이 좀 세네, 하고 생각했어요. 이제 와 돌이키면, 그러니까 어느새 일곱 해 지난 2012년에 더듬으며 헤아리면, 책값 6500원은 참 쌉니다. 이 책이 더 찍지 못했기에 예전 값이 그대로라 할 테지만, 책값이란 한 해 두 해 지나고 보면 모두 아무것 아니에요. 아니, 책이란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하는 돈으로 읽지 않아요. 종이를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종이에 아로새겨진 글을 읽을 때에 비로소 책이에요. 이야기와 줄거리를 마음으로 삭히면서 내 넋을 북돋울 때에 책읽기예요. 값싼 책을 읽어야 내 삶이 아름답게 거듭나지 않아요. 아름다운 이야기와 줄거리를 읽으며 내 넋을 아름다이 돌볼 때에 비로소 내 삶이 아름답게 거듭나요. 지난 2005년, 값에 움찔한 사티쉬 쿠마르 님 책 《부처와 테러리스트》를 읽고 나서 마음이 아주 좋아졌어요. 이야기와 줄거리가 아주 좋았거든요. 책을 덮을 무렵에는 ‘책값’이나 ‘부피’는 모두 잊었어요. 좋은 삶을 읽을 수 있기에 좋고, 좋은 삶을 읽으며 내 하루를 좋은 꿈으로 다스릴 수 있어 좋아요.


  《마음을 쏘다, 활》을 읽을 때에도 이런 느낌입니다. 나는 삶을 읽으려고 책을 읽습니다. 적은 돈으로 ‘문화 소비’를 할 마음으로 책을 읽지 않습니다. 조금 더 값싸게 다루는 책을, 이를테면 나라 안팎에 널리 알려진데다가 값 또한 싸다 하는 책을 몇 권 더 장만해서 집에 잔뜩 꽂아 놓고 읽어야 ‘내 마음이 넉넉해’지지 않아요. 나는 꼭 한 권만 읽을 수 있다 하더라도, ‘아름답게 살아가는 꿈을 사랑스레 적바림한 이야기’ 깃든 책을 손에 쥐어야 넉넉하고 즐겁습니다.


  삶을 읽는 책입니다. 삶을 가꾸는 책입니다. 삶을 사랑하는 책입니다. 삶을 이끄는 책입니다. 삶을 북돋우는 책입니다. 삶을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 다시 말해, 제자는 상대를 어떻게 가장 잘 공략할 것인가를 생각하거나 탐색하지 않게 된 것이다. 제자는 상대와 마주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생사가 걸린 문제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야 한다 ..  (136쪽)


  프랑스에서 내로라하는 사진쟁이들이 《마음을 쏘다, 활》을 읽으면서 ‘사진 찍는 넋과 매무새’를 추스를 수 있었다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왜냐하면, 사진찍기란 “마음찍기”이기 때문입니다. 간추려 말하자면, “사진찍기 = 마음찍기”입니다. “글읽기 = 마음읽기”입니다. “글쓰기 = 삶쓰기”입니다. “그림그리기 = 꿈그리기”입니다. “노래부르기 = 사랑부르기”입니다. “춤추기 = 사랑추기”입니다. “일하기 = 사랑하기”입니다. “놀이하기 = 이야기하기”입니다. “밥먹기 = 사랑먹기”입니다. “밥짓기 = 삶짓기”입니다.


  마음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삶을 읽지 못합니다. 삶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사랑을 읽지 못합니다. 사랑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읽지 못합니다. 이야기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이웃을 읽지 못합니다. 이웃을 읽지 못하는 사람은 내 옆지기를 읽지 못합니다. 내 옆지기를 읽지 못하는 사람은 뭇목숨붙이, 이를테면 풀과 나무와 새와 벌레를 찬찬히 읽지 못합니다.


  마음을 찍는 사진이기에, 사진학교를 다니거나 사진강의를 듣는대서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마음을 찍는 사진이기에, 쉰 예순 일흔 나이까지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살림하는 동안 아이들 낳아 돌보던 여느 어머니들이, 사진기를 처음 손에 쥐고서는 금세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사진으로 빚습니다. 여느 어머니들이 붓을 쥐면 금세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림으로 빚습니다. 여느 어머니들이 연필을 쥐면 금세 놀랍도록 아름다운 이야기를 글로 빚어요.


  여느 자리 여느 삶에서 마음을 읽으며 누릴 때에 비로소 문화이든 예술이든 과학이든 교육이든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마음을 읽지 못하는 내 삶이라 한다면, 지식이 쌓이고 정보는 늘어날 테지만, 사랑이나 꿈이나 이야기는 한 가락조차 없겠지요. (4345.4.2.달.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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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밑 푸른바다 - 포토 에세이
김수우 지음 / 눈빛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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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 이루어지는 빛
 [찾아 읽는 사진책 87] 김수우, 《지붕 밑 푸른바다》(눈빛,2003)

 


  길을 걸을 때에, 누군가는 집으로 갑니다. 누군가는 일터로 갑니다. 누군가는 ‘걷는 여행’을 합니다. 누군가는 군대베낭을 짊어지고 먼길을 힘겹게 갑니다. 누군가는 마음길을 닦으려 합니다. 누군가는 평화와 꿈을 빌며 두 손을 모읍니다. 갓 걸음마를 뗀 아이가 다리힘을 기르도록 길을 걷는 어버이가 있습니다. 걷는 길은 다 다르며, 누군가한테는 ‘걷기’이지만 ‘회사 가기’나 ‘나들이’나 ‘훈련’이나 ‘수행’이 되기도 합니다.


  사진기를 손에 쥐고 사진을 찍을 때에, 누군가는 그야말로 사진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사진으로 이야기를 빚습니다. 누군가는 돈을 벌려고 다른 이가 맡긴 어떤 모습을 찍습니다. 누군가는 내 사랑하는 살붙이 한삶을 적바림하려고 합니다. 누군가는 두 눈에 예쁘게 보이는 모습을 오래 건사하려고 합니다. 누군가로서는 ‘사진’을 하거나 ‘사진’을 찍으나, 누군가로서는 홀가분하게 ‘놀이’일 수 있고, 하루하루 고단한 ‘일’일 수 있으며, 좋은 사람들과 얼크러지는 ‘사랑’일 수 있어요.


  글 한 줄은 시가 됩니다. 글 한 줄이 모여 소설이 됩니다. 글 한 줄은 그저 글 한 줄이곤 합니다. 글 한 줄은 무언가 알려주는 말이 되고, 글 한 줄은 깊고 너른 마음을 담는 글월이 되기도 합니다.

 


  목청껏 내지르는 소리는 이야기가 되기도 하지만, 말로 그칠 수 있는데, 혼잣말에 될 수 있어요. 결 고운 노래가 될 수 있고, 산뜻한 자장노래가 될 수 있어요. 또는 자지러지는 울음소리가 되기도 할 테지요. 들새는, 멧새는, 바닷새는 어떤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서로 주고받을까요.


  사진책 《지붕 밑 푸른바다》(눈빛,2003)를 읽습니다. 시를 쓰는 김수우 님이 사진을 찍고 글을 붙입니다. 김수우 님은 시를 즐겨 쓴다고 하는데, 사진 또한 즐겨 찍는구나 싶어요. 어쩌면, 사진을 즐겨 찍으면서 시를 즐겨 쓴다 할 만하고, 시와 사진을 나란히 즐기는 삶이라 할 만하달 수 있어요. 《지붕 밑 푸른바다》는 “지붕 밑에는 밥주걱으로 퍼내며 꾹꾹 눌러 담던 이야기들이 살고 있다(13쪽).”고 느끼는 날부터 차근차근 적바림합니다. 이를테면, “도화지 구겨지는 일이 가장 슬펐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문방구에서 한 장씩 사들고 나오던 도화지를 구기려 자꾸 달겨들던 바람(30쪽).” 하고 지난날을 되새기면서 사진 한 장 찍고 글 한 자락 적바림합니다. “아파트 베란다에 널린 것보다 골목 빨래가 더 눈부셔 보이는 것은 왜일까(40쪽).” 하고 스스로 물으면서 사진 한 장 찍고 글 한 자락 끄적입니다.

 


  참말, 아파트 툇마루에 널린 빨래보다 골목집 담벼락에 줄을 드리워 해바라기하는 빨래가 한결 눈부셔 보이는 까닭이란 무엇일까요. 처마에 못을 박은 다음 줄 하나 전봇대 발판하고 엮어 마련한 빨래줄에 촘촘히 넌 빨래가 더 눈부셔 보이는 까닭은 따로 있을까요. 골목집 조그마한 꽃그릇에 올망졸망 피어나는 들꽃이랑 푸성귀 사이사이 빨래가 놓이는 빛깔이 더없이 눈부셔 보이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사진과 글로 예쁜 꽃을 피우려 하는 김수우 님은 부산내기입니다. 부산내기답게 부산 골목동네를 찬찬히 사진으로 살피고, 부산 골목동네에서 지낸 나날과 얽힌 이야기를 차근차근 풀어놓습니다.


  “사진은 그 아름다운 불안을 직시하는 내 눈빛이다(68쪽).” 하는 말처럼, 사진으로는 두려움과 걱정스러움과 조바심을 드러냅니다. 사진으로는 웃음과 기쁨과 두근거림을 나타냅니다. 사진으로 꿈과 사랑을 보여줍니다. 사진으로 아픔과 생채기를 그립니다.

 


  사진은 내 눈빛입니다. 사진은 내 삶을 고스란히 담는 눈빛입니다. 사진은 내 삶을 가만히 바라보는 느낌입니다. 사진은 내 삶을 사랑하는 하루하루 살포시 갈무리하는 손길입니다.


  “내 영혼은 아마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이 세상, 모순으로 가득하면서도 너무 눈부신 이 땅을 사랑해 왔음이 틀림없다. 주변에 놓인 사물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주시해 왔는가를 깨닫는 오후(83쪽).”라 하는데, 눈부신 이 땅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눈부신 이 땅을 이처럼 눈부시게 사진으로 담을 수 없어요. 눈부신 이 터를 사랑할 때에 비로소 눈부신 이 터를 눈부시게 글 한 자락으로 옮길 수 있어요. 눈부신 내 사랑을 눈부시게 깨달을 때에 눈부신 내 사랑을 눈부신 이야기 하나로 갈무리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겠지요.


  나는 너를 바라봅니다. 너는 나를 마주봅니다. 나는 나무를 얼싸안습니다. 나무는 온몸 내맡겨 나한테 안깁니다. 나는 바람을 마시고 햇볕을 먹습니다. 바람은 내 몸으로 조용히 스며들고, 햇볕은 내 살갗을 거쳐 온몸으로 가만히 빨려듭니다.

 


  “골목이라는 돋보기 렌즈를 통해 아름다운 길 하나를 만난다(93쪽).”고 하지요. 바다라는 돋보기가 있어요. 시골이라는 돋보기가 있어요. 멧길이라는 돋보기가 있고, 밭둑이라는 돋보기가 있습니다. 돋보기는 전봇대가 되기도 하고 전깃줄이 되기도 합니다.


  내 돋보기는 좋은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징검돌이 됩니다. 내 돋보기는 좋은 동무와 두레와 품앗이를 나누는 징검돌이 됩니다. 내 돋보기는 좋은 살붙이와 꿈을 빚는 징검돌이 됩니다. 어느새 내 사진기는 이웃이랑 동무랑 살붙이랑 마음을 주고받는 징검돌 같은 돋보기가 됩니다. 어느내 새 연필은 둘레 모든 목숨하고 생각을 주고받는 징검돌처럼 새로 거듭납니다.


  “이십여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이 낯설다 하니 친구는 다시 잘 찾아보라 말한다(119쪽),” 하고 이야기합니다. 내 동무는 좋은 넋을 살며시 들려줍니다. 내 이웃 또한 알게 모르게 좋은 얼을 가만히 들려줍니다. 내 살붙이도 날마다 좋은 숨을 날마다 조용히 불어넣어요.

 


  사진은 내 삶에서 태어납니다. 사진은 내 작은 삶에서 태어납니다. 사진은 내 작으며 어여쁜 삶에서 태어납니다. 사진은 날마다 누리는 내 작으며 어여쁜 삶에서 태어납니다. 사진은 내가 즐거이 발을 디디며 어깨동무하는 작으며 어여쁜 마을 삶에서 태어납니다.


  내가 찍는 사진은 내 얼굴이에요. 내가 쓰는 글은 내 모습이에요. 내가 찍는 사진은 내 삶이에요. 내가 쓰는 글은 내 이야기예요. 사진책 《지붕 밑 푸른바다》에 담긴 사진과 글은, 김수우 님 얼굴이자 모습이고 삶이면서 이야기입니다. (4345)
3.30.쇠.ㅎㄲㅅㄱ)


― 지붕 밑 푸른바다 (김수우 사진·글,눈빛 펴냄,2003.5.15./12000원)

 

덤.

 

옆에서 아이들 알짱대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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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곁에서 거닐다, 새 - 사진생태에세이 2
김태균 지음 / 지성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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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한 마리 사랑하는 사진
 [찾아 읽는 사진책 86] 김태균, 《생명 곁에서 거닐다, 새》(지성사,2008)

 


  “우리 주변에서 새들을 더욱 가깝게 만날 수 있기를, 우리가 모쪼록 다른 생물에 대한 배려와 함께 살아가기를 마음 가득히 바랍니다(머리말).” 하는 마음으로 내놓은 사진책 《생명 곁에서 거닐다, 새》(지성사,2008)일 테지만, 오늘날 이 나라 사람들은 새를 비롯한 뭇목숨이 제 보금자리를 곱게 건사하도록 삶터를 돌보지 않습니다. 도시는 자꾸 커지고, 시골자락이라 하더라도 들새와 들짐승이 느긋하게 쉴 곳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사람 손길이나 발길이 닿지 않는 숲을 찾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따로 나무를 솎는다든지 심는다든지 하지 않고 가만히 두는 숲을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헬리콥터로 온갖 농약을 뿌리지 않는 숲을 보기 어렵습니다. 조그마한 멧등성이마저 나들이길이 놓입니다. 높직한 멧자락에는 구멍이 숭숭 뚫려 고속도로나 고속철도가 놓입니다. 새들이 쉴 만한 숲이 나날이 사라집니다. 새들이 쉴 만한 숲이 사라지는 나라에서는 사람들도 느긋하게 숨쉴 만한 터전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농약을 치지 않으면 돈벌이가 되기 힘들다 하는 만큼, 시골자락에서조차 사람들이 마음 놓고 맨발로 밟을 만한 흙이나 아이들하고 뒹굴 만한 흙땅이 사라집니다. 새한테도 사람한테도 기쁘게 누릴 만한 터전이 사라지는 셈입니다.

 


  아파트이건 소우리나 돼지우리이건 고속도로나 고속철도이건, 이런저런 물질문명이 숲이나 멧자락까지 치고 들어가지 않을 때에 비로소 새들 보금자리를 곱게 지킵니다. 새들이 곱고 보금자리를 지키는 숲이라 하면, 사람들이 가끔 드나든다 하더라도 발자국이 남지 않습니다. 이때 들새나 멧새는 사람들한테 곱고 맑은 노랫소리를 들려줍니다. 이때 들새와 멧새는 사람들한테 곱고 빛나는 몸빛과 날갯짓을 보여줍니다.


  톱을 들고 숲속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쳐야 숲이나 멧자락을 예쁘게 보듬는다 할 수 있지는 않아요. 돈을 들여 멋들어진 나무를 심는대서 도시 둘레 좋은 쉼터가 마련된다고 할 수 있지는 않아요. 먼저 풀씨 한 알이 흙땅을 돌봅니다. 다음으로 나무씨 한 알이 흙땅을 지킵니다. 한 해 다섯 해 열 해 스무 해에 걸쳐 숱한 풀씨와 나무씨가 흙땅을 보듬습니다. 이동안 흙땅이 살아나고, 흙땅이 살아나는 동안 벌레들이 살아나며, 벌레들이 살아난 숲자리와 멧자리에 들새랑 멧새가 둥지를 틀고, 작은 들짐승이랑 멧짐승이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어요.

 

 


  오늘날 새들은 숲을 빼앗기고 들을 빼앗기며 멧자락을 빼앗깁니다. 들새이건 멧새이건 도시 한복판에서 과자부스러기나 밥쓰레기를 주워서 끼니를 때울밖에 없기도 합니다. 새들이 깃들 나무가 있던 데에 전봇대가 서는걸요. 새들이 깃들 숲이 있던 데에 아파트랑 높은 건물이 들어차는걸요. 그야말로 안간힘을 내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더없이 용을 쓰며 살아가자고 합니다.


  김태균 님 사진책 《생명 곁에서 거닐다, 새》를 읽으며 곰곰이 생각합니다. 책이름 그대로 목숨 곁에서 거닐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 일이랴 싶고, 사람들 누구나 이웃 목숨을 곱게 아끼면 얼마나 기쁜 일이랴 싶어요.


  가만히 보면, 사람들 스스로 이웃사람을 아낄 때에 다른 이웃 목숨이라 할 새나 벌레나 들짐승을 아낄 수 있겠지요. 이웃사람과 알뜰히 어깨동무할 때에 들고양이나 들개하고 알뜰히 어깨동무할 테고, 이웃사람과 살가이 손잡을 때에 들새나 멧새가 느긋하게 둥우리를 틀도록 지켜볼 수 있을 테지요.

 

 

 


  도시 한복판에서도 비둘기나 참새나 직박구리나 까치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도시 한복판 새들은 너무 아슬아슬합니다. 먹이도 아슬아슬하고 보금자리도 아슬아슬합니다. 사진책 《생명 곁에서 거닐다, 새》는 시골자락에서 마주한 새들을 담습니다. 시골자락이 아니고서는 새들 스스로 느긋하게 살아갈 수 없어요. 시골자락이 아니고서는 사람 또한 몸을 살찌우는 밥이랑 마음을 빛내는 숨을 맞아들일 수 없어요. 아스팔트 바닥에서 자라나는 쌀이나 보리가 아니에요. 시멘트 바닥에서 자라나는 콩이나 옥수수가 아니에요. 흙바닥에서 자라나는 풀과 나무요, 흙바닥에서 자라난 풀과 나무 둘레에 깃을 들이는 새들입니다.


  사진책 《생명 곁에서 거닐다, 새》에는 모두 마흔일곱 가지 새를 담았다고 합니다. 조금 더 담으면 더 좋았으리라 싶기도 하지만, 서른일곱 가지 새나 스물일곱 가지 새를 담아도 좋아요. 다만, 몇 가지 새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더 많은 모습과 더 다른 모습을 골고루 보여주었으면 한결 나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같은 새라 하더라도 다 다른 삶이고 다 다른 모습이에요.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 다른 삶이며 다 다른 모습이잖아요. 알이랑 둥우리랑 새끼 모습까지 골고루 보여주어도 좋고, 아직 어린 새인 모습까지 나란히 보여주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새 한 마리가 봄부터 겨울까지 하루하루 살아내는 즐겁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더 너르고 따사롭게 바라보면서 더 어여쁘고 더 살갑게 얼싸안은 이야기로 보여줄 수 있으면 참 좋으리라 생각해요. 이런 새 저런 새를 보여주고, 이런 모습 저런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책이름마따나 “생명 곁에서 거닐다”와 걸맞을 만한 ‘사람이 새와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란 무엇일까 하는 대목을 찬찬히 들려주지는 못하는구나 싶어요.

 


  어떤 숲에서 이들 새를 만났을까요. 어떤 시골에서 이들 새와 사귀었을까요. 어떤 길에서, 어떤 누리에서, 어떤 냇가에서, 어떤 하늘을 올려다보고, 어떤 땅을 밟으며 이들 새와 즐거이 어깨동무하고픈 꿈이요 사랑일까요.


  새를 찍든 나비를 찍든 벌레를 찍든 늘 매한가지라고 느껴요. 사람으로 살아가는 내 하루가 어떤 사랑이고, 이 사랑으로 어떻게 이웃 목숨과 마주하는 나날인가를 돌아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새를 바라보며 사진기를 쥔 나이기 앞서, 예쁜 목숨으로 삶을 누리는 내 손길과 눈길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새 한 마리 사랑하는 사진은 벌레 한 마리 사랑하는 사진과 같습니다. 새 한 마리 아끼는 사진은 나무 한 그루 아끼는 사진과 같습니다. 새 한 마리 마주하는 사진은 내 반가운 이웃들 살아가는 마을과 살가이 마주하는 사진과 같습니다. (4345.3.28.물.ㅎㄲㅅㄱ)


― 생명 곁에서 거닐다, 새 (김태균 사진·글,지성사 펴냄,2008.8.28./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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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 Children's Playing House
편해문 지음 / 고래가그랬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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널리 사랑받지 못하고, 그만 절판된 사진책 하나를 기리며, 이 사진책 하나를 되새기는 느낌글을 새로 적바림합니다. 부디 되살아나거나 새로운 사진책 하나 태어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과 살아가는 사진
 [따순 손길 기다리는 사진책 31] 편해문, 《소꿉》(고래가그랬어,2009)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어른이 한국에서 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담습니다. 아이들 스스로 저희끼리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지 못합니다. 아이들한테는 사진기가 없고, 아이들은 즐거이 놀 뿐 이런저런 모습을 애써 사진으로 찍어 남겨야 한다고 느끼지 않아요. 오늘 하루 신나게 놀고, 이듬날 하루 새롭게 놀며, 글피에 다시금 더 놀면 돼요.


  한국에서 사진을 찍는 어른이 한국땅 어린이가 노는 모습을 더러 사진으로 옮기곤 했지만, 막상 아이들을 오래도록 지켜보거나 찬찬히 살펴보거나 꾸준히 함께하면서 사진을 찍은 적은 아직 없지 않느냐 싶습니다.


  이제 골목놀이 하는 어린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골목놀이 하는 어린이가 아주 많았을 뿐 아니라, 이 아이들이 사진기를 꺼리지 않던 지난날, 이 아이들 모습을 사진으로 살포시 옮긴 어른은 매우 드물었어요. 아주 없었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때때로 드문드문 한두 장 ‘귀엽다’ 여겨 찍기는 하더라도, ‘한국 어린이 놀이’를 이야기로 엮어 사진책 내려던 어른은 없었다고 느껴요.

 

 


  스스로 사진쟁이라 일컫던 어른은 으레 큰도시에서 살았습니다. 서울이나 대구나 부산이나 인천 같은 큰도시에는 사진모임이 있었고, 사진모임에 몸담지 않더라도 사진기를 어깨에 걸치고는 곳곳으로 ‘사진마실’을 다니는 어른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 놀이터를 찾아다닌다든지, 큰길 안쪽 호젓한 골목길로 접어들면서 한두 시간, 서너 시간, 너덧 시간 아이들하고 얼크러지며 놀다가 사진을 찍던 ‘한국 사진쟁이 어른’은 왜 찾아볼 수 없을까요.


  1980년대이든 1970년대이든 1960년대이든, 이무렵에 사진을 찍던 어른이 없었다면, 이 나라 아이들 놀이 이야기 또한 사진으로 옮길 수 없었다 하겠지요. 그런데, 이무렵이든 1990년대이든 2000년대이든 2010년대이든 사진을 찍는 어른은 많아요. 많디많은 한국 어른들은 스스로 제 나라 제 땅 제 이웃 어린이를 돌아보지 않아요. 으레 나라밖으로 나갑니다. 나라밖 아이들을 마주합니다.


  어린이놀이를 살피는 편해문 님은 사진쟁이가 아닙니다. 이녁은 사진쟁이가 아닌 까닭에 어린이놀이를 눈과 마음과 몸으로 살필 뿐, 굳이 사진기로 아이들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한국땅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놀이를 잃어버린 탓에 한국땅 어린이놀이를 찾으려고 힘썼으니, 한국땅 어린이놀이를 사진으로 담는 일이란 꿈꾸기 힘들겠지요. 편해문 님은 사진책 《소꿉》(고래가그랬어,2009)을 내놓았는데, 한국땅 아이들이 스스로 잊고 만 놀이를 북돋우거나 되살리다가, 나라밖 ‘작은’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아직 마음껏 놀고 신나게 뒹구는 모습을 보고는, 그만 사진쟁이 아닌 사람으로서 사진기를 들며 사진을 찍고는, 사진책까지 내놓습니다.

 

 


  사진책을 한참 들여다봅니다. 2009년에 처음으로 장만해서 들여다보고, 이 사진책이 새책방 책시렁에서 사라지고 난 이즈음 다시 한 권 장만해서 더 들여다봅니다. 아이들 얼굴만 바꾸면 한국에서 늘 마주하던 아이들 모습이요 아이들 놀이입니다. 아이들 얼굴은 다르지만, 어디에서나 똑같다 싶은 아이들 삶이며 아이들 사랑입니다.


  한국땅 아이들이 놀이를 잃거나 빼앗긴 탓에, 놀이하는 어린이 삶을 담은 사진책 또한 이 땅에서는 읽히지 못하고 사라져야 하는가 싶습니다. 한국땅 어른들부터 즐거이 웃고 까불며 놀 줄 모르니, 아이들 해맑은 웃음과 눈빛과 얼굴짓을 담은 사진책 하나 살뜰히 바라보며 아끼기란 힘든 노릇인가 싶습니다. 사진책 《소꿉》에 이어 “고무줄”이나 “땅금놀이” 같은 사진책이 잇달아 나오기를 빌었는데, 다른 놀이 사진책은 못 태어나고, 그만 《소꿉》마저 아스라이 사라지고 맙니다.

  바야흐로 한국땅에서 아이들이 온통 학교로 쫓겨나고, 학교로 쫓겨나서도 시험공부로 쫓겨나는데다가, 이윽고 대학바라기로 다시금 쫓겨나는 판입니다. 아이들이 일고여덟 살이 되면 ‘학교에 간다’고 말하지만, 이 아이들이 학교에 ‘간다’고는 좀처럼 못 느끼겠어요. 오늘 이곳 이 아이들은 집이나 마을에서 ‘놀이’를 누리지 못하는 채 학교로 ‘쫓겨나’는 셈 아닌가 싶어요. 한국 아이들은 갓 태어날 적부터 제대로 사랑받지 못하고, 제대로 뛰놀지 못하며, 제대로 흙을 만지지 못하다가, 온갖 탁아시설로 보내지고, 이렇게 보내지고 나서 금세 학교로 ‘등 떠밀리듯 쫓겨나’는 모양새로구나 싶어요. 그런데, 이렇게 학교로 쫓겨나더라도 학교에서 동무들을 사귀며 놀이할 틈이 없어요. 학교에서는 갖가지 시험공부가 아이들을 짓누릅니다. 특기이니 적성이니 무슨무슨 과외활동이니 방과후활동이니 참여학습이니 무어니 하면서 홀가분하게 놀이를 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제 언니 오빠 누나 형 들한테서 놀이를 물려받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늘 시험공부만 물려받습니다. 놀이를 잊은 채 어린 나날을 보내고, 시험공부만 짊어진 채 푸름이가 되어, 대학바라기로 얼룩진 젊은이가 됩니다.

 

 


  아직 이 나라 골골샅샅에서 아이들이 제가끔 놀이를 합니다. 골목놀이를 하는 어린이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시골 고샅에서 흙을 파먹는 아이가 아예 없지는 않습니다. 다만, 도시에서 골목놀이를 하는 아이들 곁에서 이 아이들 어버이부터 이들 놀이하는 아이를 사진으로 담지 않습니다. 시골 고샅에서 흙을 파먹는 아이를 돌보는 어버이가 스스로 기쁘게 사진을 찍지 않습니다.


  가만히 보면, 아이들 어버이는 아이들을 마냥 바라보기만 해도 배불러요. 구태여 사진을 찍지 않아도 마음에 꽉 들어찬다 할 만해요. 여느 어버이한테 ‘당신 사진쟁이가 되어 보시오’ 하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야기는 들려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누리는 오늘을 아이들과 바로 이 자리에서 기쁘게 누리면서 사진 한 장으로 적바림할 수 있으면,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어른이 될 무렵, ‘어른이 된 아이가 마음껏 뒹굴며 뛰놀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으로 ‘어른이 된 아이’가 오래오래 해맑은 웃음과 낯빛을 알뜰히 아끼도록 도울 수 있어요. 사진쟁이가 되어 대단한 사진을 찍어야 할 까닭은 없으나, 아이들을 사랑하는 손길과 꿈길과 사랑길을 사진 한 장에 살그마니 옮겨,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낼 기나긴 나날 좋은 ‘놀이 넋’을 어버이로서 선물로 남길 수 있어요.


  내 아이한테 어마어마하다 싶은 돈을 물려주지 않아도 돼요. 내 아이한테 아파트나 자가용을 물려주지 않아도 돼요. 내 아이한테 부동산을 물려주지 않아도 돼요. 내 아이한테 ‘네가 아이였을 적 예쁜 삶과 놀이와 몸짓이 이와 같았단다’ 하고 기쁘게 보여주는 사진 한 장 차곡차곡 찍어서 푼푼이 그러모은 사진첩 하나 물려주면 돼요.


  사진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사진은 어버이와 함께 살아갑니다. 사진은 사진쟁이하고 함께 살아가지 않습니다. 사진은 삶을 사랑하는 아이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사진은 삶을 꿈꾸는 어버이와 함께 살아갑니다. (4345.3.27.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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