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리개를 쓰다



  도쿄 진보초에 ‘아카시아서점(アカシャ書店)’이 있습니다. 바둑 책만 다루는 곳인데 가게 앞에 ‘100엔 책’을 두었고, 이 가운데 《奈良の石佛》(西村貞, 全國書房, 1942)도 있어요. 일본 나라현 돌부처를 굳이 알아야 할 까닭이 없을 수 있습니다만, 사진을 가만히 보니 마치 백제 돌부처를 보는 듯했어요. 더욱이 1942년 책이라면, 일본에서 나온 책이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백제·일본 발자취를 이 책에서 넌지시 다루었을는지 모릅니다. 제가 이 책을 쓰는 일이 없더라도 우리 책숲집에 건사하면서 이웃님한테 도움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책이 물에 옴팡 젖어서 축축합니다. 이를 어쩌나 망설이는데, 길손집으로 가져와서 촛불을 켜 보기도 하고 창가에 두기도 하는데 안 마릅니다. 이러다 이튿날 아침에 문득 머리말리개가 떠오르네요. 예전에 갓난쟁이 아이들이랑 길손집에 묵을 때면 천기저귀를 으레 머리말리개로 말렸어요. 그때처럼 책을 머리말리개로 말려 보는데 아주 빠르게 눅눅함이 가십니다. 훌륭하네요. 그러고 보니 헌책집에는 뜬금없어 보이는 머리말리개가 꼭 있었구나 싶어요. 오래된 책은 섣불리 볕에 말리면 안 되니, 머리말리개를 써서 눅눅함이나 축축함을 가셔 주었군요. 2018.4.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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