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시간 기다리기



  고등학교를 다니던 때인데, 동무가 나오기를 네 시간 기다린 적이 있다. 그때에는 집전화만 있었기에 동무네 집에 전화하니 “곧 나온다”고 해서 가만히 서서, 때로는 책을 읽으며, 때로는 기다리는 곳에 있던 책집에 들어가서 이런 책 저런 책 읽으며 네 시간을 가볍게 기다렸다. 네 시간이 지난 뒤 동무네 집에 전화하니 집에 있네. 어라, 너 왜 집에 있니, 물으니 이 녀석이 그냥 집에 있겠다네. 그러면 아까 전화했을 적에 못 나온다고 말하든지. 뭐니? 그러나 나는 네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기다리는 하루를 보냈는데, 이 일을 겪은 뒤 안산 사는 동무를 만나려고 한겨울에 온몸이 얼며 네 시간 넘게 기다린 적이 있었고, 바로 오늘, 그 뒤로 서른 해가 훌쩍 지나고서도, 세 시간 반을 일본 하치오지에서 멀뚱멀뚱 기다렸다. 더 기다리기 힘들겠다고 느낄 무렵 기다린 사람이 왔다. 아, 아, 이 놀라운 기쁨이란. 나는 이제껏 네 시간 넘게 동무를 기다릴 적에 동무가 안 왔는데, 거의 네 시간을 기다린 오늘은 기다리던 사람이 왔네. 다리가 풀리면서 기뻤다. 2018.33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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