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23


 으름질 갑질


  서로 돕기보다는 위아래로 가르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함께 손을 나누어 즐겁게 어우러지기보다는 위아래로 자르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이 어깨동무를 하며 웃기보다는 위아래로 쪼개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른바 ‘갑질(甲-)’을 한다고 말합니다. ‘갑·을·병·정’처럼 쓰는 외마디 한자는 지난날 사회나 정치를 거머쥐던 이들이 쓰던 말씨입니다. 이제 사회나 정치가 위아래 아닌 고른 어깨동무나 손잡기라고 한다면, 낡은 말씨를 털어내면 좋으련만, 아직 계약서 같은 데에 ‘갑·을’을 그냥 씁니다.


  우리는 앞으로 이 얼거리를 바꿀 수 있을까요? 계약서에 굳이 ‘갑·을’을 써야 할까요? ‘가·나’를 쓰거나 ‘ㄱ·ㄴ’을 써 보면 어떨까요? 높낮이도 위아래도 없는 ‘가·나’요 ‘ㄱ·ㄴ’이니 수수한 닿소리를 즐겁게 쓸 줄 아는 마음이라면, 서로 따스하거나 넉넉한 몸짓으로 거듭날 만할까요?


  이름은 ‘가·나’나 ‘ㄱ·ㄴ’을 쓰더라도 ‘가질·ㄱ질’을 일삼을 분이 있을는지 몰라요. 그렇지만 이름부터 작고 수수하게 쓰면서 마음을 가다듬고 삶을 추스르는 길을 살핀다면 조금씩 찬찬히 바뀌는 길을 열는지 모르기도 합니다.


  으름질 아닌 으뜸짓을 하면 좋겠어요. 막질 아닌 꽃짓을 하면 곱지요. 웃질 아닌 어깨짓으로 춤사위를 펴면 신나요. 이제 ‘갑질·막질·웃질’을 끝장내거나 치울 수 있기를 빕니다. 이제 ‘으뜸짓·꽃짓·어깨짓’으로 손을 맞잡는 넉넉한 숨결로 거듭나기를 바라요.


  가만히 보면 이 나라에서 정치나 사회를 거머쥔 이들이 오랫동안 한문으로 으름질을 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일본말에 일본 말씨로 막질을 했고요. 해방 뒤에는 영어가 웃질을 합니다.


  쉽고 맑은 말마디로 으뜸짓을 펴기를 꿈꿉니다. 곱고 넉넉한 말결로 꽃짓을 나누기를 비손합니다. 덩실덩실 신바람 일으키는 말빛으로 어깨짓을 함께하면 좋겠어요. 2018.3.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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