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좀 생각합시다 19 


 엄마말 아빠말


  오늘날은 엄마말하고 아빠말 사이가 차츰 무너집니다. 한결 나아진 길로 가는 모습이지 싶습니다. 한동안 엄마말은 집안에만 머물며 아이를 돌보고 집살림까지 도맡으면서 쓰는 말이었고, 아빠말은 집밖에서 나돌며 사회에 길든 말이었습니다. 엄마말은 집이라고 하는 보금자리를 살뜰히 돌보는 말이기에 언제나 수수하고 쉬우며 포근한데다가 부드러운 말이라면, 아빠말은 서로 다투고 치고받는 말이거나 일제강점기에 억눌린 말이거나 군사독재에 짓밟힌 말이거나 정치권력으로 내리누르는 말이었다고 할 만합니다.


  발자국을 더 거슬러 보면, 제법 예전에는 엄마말하고 아빠말이 모두 집에서 일하며 쓰던 말입니다. 엄마말은 아기한테 젖을 물리면서 살내음이 물씬 풍기는 말이었고, 아빠말은 아이한테 집짓기를 보여주고 소몰이를 가르치며 쟁기질이나 나무질을 알려주는 숲내음이 잔뜩 묻어난 말이었지 싶어요. 제법 예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시골에서 흙을 만지며 살림을 지었고, 사내랑 가시내가 함께 논밭을 지었으며, 가을걷이나 씨뿌리기를 함께하고, 갈무리나 밥짓기도 함께했습니다. 제법 예전에는 엄마하고 아빠가 하는 일이 살짝 갈리기는 해도 둘은 서로서로 더 맡는 일을 함께 알면서 말을 나누는 사이였습니다.


  엄마말하고 아빠말은 함께 집살림을 돌보면서 숲살림을 아우르던 마을짓기를 하던 때에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했어요. 이때에는 고장마다 고장말이 넘치고, 서로 아끼거나 보살피는 숨결이 말씨에 가득 흘렀습니다. 이러다가 한 줌쯤 되는 정치권력자가 중국 한문을 내세워 거의 모든 사람들을 신분이나 계급으로 내리눌렀어요. 시골말은 낮추고 서울말을 높이던 때이지요.


  평등한 말을 이루자면, 정치나 사회에서만 평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집 바깥에서 돈벌이를 하더라도 언제나 집안에서 모여 함께 밥·옷·집을 손수 지으면서 어깨동무를 하기 마련입니다. 엄마말하고 아빠말이 집살림을 함께 건사하고 서로 북돋우면서 즐거이 어우러진다면, 이때에 ‘사이좋은(평등한)’ 말이 새로 자랍니다. 2018.3.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 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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