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걸음



  아이들하고 다닐 적에는 아이들을 보느라 손에 책도 연필도 쥐지 않는다. 혼자서 마실길에 나서면 어디에서나 책을 편다. 버스에서도 길에서도 밥집에서도 길손집에서도. 길을 거닐면서 책을 손에 쥐니 내 책읽기는 요즈음 ‘손전화에 고개 박는 사람’하고 비슷한 매무새이면서 다른 몸짓이다. 한 손에는 책이요 다른 한 손에는 연필이니까. 걸으면서 책을 읽는 버릇은 고등학교 1학년 때 들였지 싶다. 국민학교 다닐 적에도 집하고 학교 사이를 걸으며 가끔 만화책을 읽었지만, 이때에는 고작 십 분 남짓이다. 고등학교에 들어선 뒤에는 집하고 학교 사이가 꽤 멀었기에, 두 시간 남짓 걸으면서 책을 읽었다. 날마다 여러 시간을 걸으며 책을 읽자니 발걸음에 맞추어 책을 쥐는 매무새를 익힐 수 있었고, 걸으면서 책 귀퉁이에 글을 쓰는 아귀힘도 생겼다. 가만히 보면 내 걸음걸이는 ‘읽는걸음 + 쓰는걸음’이다. 2018.2.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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