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에 받친 길
두 아이하고 순천마실을 다녀오는 길에 악에 받친 사람을 매우 많이 스칩니다. 삶이 너무 고달픈 탓일까요. 먹고살기 힘든 탓일까요. 어떤 슬프거나 아픈 일 때문일까요. 벌교 시외버스역에서는 시외버스가 오가는 어귀 한복판에 자가용을 대놓고 비킬 줄 모르는 분을 스칩니다. 이 시외버스를 모는 분은 스스로 듣지도 않으면서 사건·사고 이야기만 끝없이 흐르는 라디오를 틀어 놓습니다. 순천에서 시내버스를 타는데, 젊은이도 늙은이도 멀쩡히 한쪽에 선 사람을 치고 지나가지만 아무도 미안하다는 말이 없는데, 치고 지나갈 만한 자리에 있지 않아도 그냥 치고 지나갑니다. 순천 아랫장에서는 짐 많은 아지매나 할매한테 ‘왜 화물차 안 타고 버스를 타느냐’고 타박하는 버스 기사랑 ‘세상에 이렇게 인심이 없느냐’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손님이 삿대질을 합니다.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사람들이 겉으로는 상냥한 말씨를 쓰는 듯해도 속으로는 지치거나 고단한 몸짓으로 소리를 높입니다. 때로는 지치거나 고단한 낯빛 그대로 멱살잡이를 할 듯한 모습이기까지 합니다. 아이들이 바깥마실을 멀리 다니고 싶지 않다고 으레 말하는데, 참말로 아이들 말이 맞습니다. 상냥한 이웃이나 어른이나 동무가 아닌, 악에 받친 사람들이 사회에 이렇게 가득하다면 굳이 사회살림을 해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2018.2.7.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