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는 건 좋은 거라고 펄북스 시선 4
문바우 지음 / 펄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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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18


눈칫밥 하루였지만, 삶이란 좋구나
― 그래도 사는 건 좋은 거라고
 문바우
 펄북스, 2017.12.14.


나는 우리 집에서
암만 배가 곱파도
내 손으로 밥 찾아 먹으면
왜 도둑놈 새끼가 되나요 (배곱픈 아이/15쪽)

아버지
낮에도 집에 있어 주면 안 되나요
아버지가 없으면
집엔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식구들만 있어 (기다립니다/17쪽)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날, 아이들은 해맑게 웃으면서 눈밭을 달리고 미끄러지고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볼이랑 귀랑 코랑 손이 발갛게 되도록 쉬지 않고 놉니다. 온누리 모든 아이가 눈놀이를 즐기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때로는 눈송이를 반기지 못하는 아이가 있습니다. 아이로 뛰놀지 못하고, 아이답게 웃지 못하며, 하루하루 배곯는 아픔을 견디어야 하기도 합니다.

  어른이 일으킨 싸움 불구덩이에서 헤매는 아이들이 많아요.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고서 계급으로 가르는 곳에서 짓눌리는 아이들이 많아요. 그리고 이 땅에서도 들볶이거나 시달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밤하늘 별들 쳐다보고
나는 왜
우리 엄마가 없나 하고
눈물 글성이면
울지 않고 착하게 살아가면
나중에 천국에서 만난다고 
반짝 반짝 해줍니다 (별하고 나하고/19쪽)

그래도
아버지는 나의 아버지
해가 지면
먼 삼 리 외로운 고갯길에서
이 자식이 생각나
가슴속 주머니에 국화빵 몇 개
싸 감추어서 오시고선
식구들 몰래
숨어서 꺼내주었어요
나중엔 너하고만 살으마, 하고
자식의 목을 끌어안아도 주었어요 (국화빵/20쪽)


  시집 《그래도 사는 건 좋은 거라고》(펄북스, 2017)는 한겨울 흰눈처럼 다가오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이 시집을 낸 문바우라는 분은 시를 배워서 시를 쓰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어린 날 겪은 숱한 생채기를 고스란히 드러내려고 삶을 글로 옮기다 보니 저절로 시가 되었구나 싶어요.

  낳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서 눈칫밥만 먹으면서 어린 날을 보내야 했다는데요, 사는 동안 아버지한테도 ‘아버지’라는 말을 다섯손가락으로 꼽기 어려울 만큼 겨우 말했다고 합니다. 늘 눈칫밥을 먹으니 아버지한테도 아버지라고 못했다고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어머니가 나에게 준 밥은
어제저녁에 어머니가 먹고 남은
찬밥 찐 것이었어요
그리고 김치꽁대기 한 개마저도
오늘 아침엔
어머니가 아깝다며 맛있겠다며
손으로 쥐고 가서
듣어먹고 남은 것을
나의 밥그릇에 찔러넣어 주었어요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이 나고
먹을 수가 없어
밖으로 달려나가서
소리내어 울고 싶었어요
그러나 나는
어머니가 무섭고 겁이 나서
일어나지 못하고
고개 숙여 뚝뚝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한입에 깨물어 삼켜버리고 말았어요 (찬밥/23쪽)


  시집 《그래도 사는 건 좋은 거라고》를 읽으면 어린 문바우 님을 괴롭히거나 놀리거나 닦달하는 여러 사람 이야기가 자꾸자꾸 흐릅니다. 한겨울에 오줌그릇을 들고 냇가에 가서 맨손으로 박박 닦아서 가져다주는 이야기가 흐르고, 밥 한 그릇조차 반찬 한 점마저 제대로 먹을 수 없던 이야기가 흐릅니다.

  그렇다고 울지 못하고, 그렇다고 따지지 못하며, 그렇다고 집을 뛰쳐나가지 못합니다.

  속으로 삭이면서 기다렸을 테지요. 날마다 갖은 지청구에 따돌림에 놀림에 잔소리를 들으면서 앞날을 바라보았을 테지요.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날을 기다리고, 혼잣힘으로 살림을 지을 날을 손꼽았을 테지요.

  여기에 한 가지를 더 꿈으로 품었으리라 생각해요. 앞으로 어른이 되어 곁님을 만나고 아이를 낳는다면, 어린 문바우 님은 어버이 문바우로서 아이들을 너른 사랑하고 따스한 마음으로 고이 안아 주겠다고 하는.


제 나이 여섯 살 때부터
큰어머니께서 저에게 바라신 것은
건강하게 자라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착하게 자라달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날마다 큰어머니 눈앞에서
사라져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여섯 살 때부터/58쪽)


  겨울에 눈이 옵니다. 겨우내 뭇짐승하고 뭇나무는 조용히 겨울잠을 잡니다. 겨울잠을 자면서 새봄을 기다립니다. 이 눈이 모두 녹고 따사로운 봄이 되면 활짝 피어나고 기지개를 켤 꿈을 꿉니다.

  착하거나 튼튼하게 자라 달라는 말을 한 마디도 못 들은 어린 문바우 님이지만, 큰어머니 눈앞에서 얼른 사라져 달라는 말을 들은 어린 문바우 님이지만, 남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려는 넋이 아닌, 새로운(새로 낳을, 또는 새로 만날) 아이들을 사랑해 주고 싶으며 어루만져 주고 싶으며 보살펴 주고 싶은 씨앗을 차곡차곡 심습니다.

  아마 미움을 키웠다면, 나중에 어른이 되어 아이를 낳을 적에 이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기 어려웠으리라 생각해요. 내가 오늘 아무리 미움이며 설움이 쌓인다 하더라도 미움하고 설움만 생각하다 보면, 참말로 그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서 스스로 선 뒤에 곱거나 착하거나 상냥하게 마음을 쓰기는 어려우리라 봅니다.

  먼 앞날을 꿈꾸면서, 겨울이 끝나고 찾아올 봄을 그리면서, 하루하루 눈물밥을 꿀꺽 삼키면서, 더욱 단단히 여민 사랑씨앗이 시나브로 이야기 하나로 남고 시집 하나로 흘러서 우리 곁에 살포시 찾아오는구나 싶습니다.


너는 날 아빠라 하네
나는 너를 내 아들이라 하네
부디 안 좋은 것
지난 것은 다 잊고 잊고
마음 놓고 먹고 자고 놀며
또 떼도 쓰며
무럭무럭 자라다오
아기야 나의 사랑아 (내 아기야/78쪽)

아기가 과자 한개 손에 받아 쥐고
좋다고 좋다고 춤춘다고
귀저기 찬 궁둥이 엉거주춤 들었다 놓았다 하면 (손자 재롱/98쪽)


  시집 《그래도 사는 건 좋은 거라고》를 읽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어쩜, 어쩜’ 하는 말이 절로 나올 만한 이야기가 흐르거든요. 그러나 어린 문바우 님이 어른 문바우가 될 적에 어떻게 살아가고 싶노라 하는 꿈을 그린 이야기를 읽으면서, 또 ‘할아버지 문바우’가 되어 아이 궁둥짓에 아이처럼 까르르 함께 웃음을 터뜨리면서 기뻐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비로소 새삼스레 생각합니다.

  그래요, 그래도 삶이란 좋지요. 어제 그토록 배고프고 괴로웠어도 오늘 주먹밥 한 덩이를 먹으면서도 “삶이란 좋구나” 하고 말할 수 있지요. 오늘도 쫄쫄 굶더라도 이튿날에는, 먼 뒷날에는, 잔칫밥이 아니어도 따뜻한 밥 한 그릇 먹으면서 웃을 수 있다는 작은 꿈씨를 심을 수 있지요.

  삶이란 좋다고, 삶이란 곱다고, 삶이란 사랑이라고, 삶이란 언제나 꿈이라고, 조용조용 되뇝니다. 모든 아픔과 괴로움과 슬픔을 사랑으로 녹여내는, 꽁꽁 얼어붙는 추위를 따사로운 손길로 품는, 해님 같은 이야기를 시로 만납니다. 2018.1.10.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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