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311



따뜻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거품벗기를

― 언어의 온도

 이기주 글

 말글터 펴냄, 2016.8.11. 13800원



“내가 환자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으시던데요?”라고 묻자 그는 “그게 궁금하셨어요?” 하고 되물었다. 의사는 별걸 다 물어본다는 투로 심드렁하게 대답했지만 난 그의 설명을 몇 번이고 되씹어 음미했다. “환자에서 환이 아플 ‘환’이잖아요. 자꾸 환자라고 하면 더 아파요.” (22쪽)


칭찬과 지적이 적절히 혼재된 면담이 끝날 무렵, 선생님은 “너처럼 가능성이 있는 녀석이 그러면 안 된다” 하셨다. 난 가능성이란 낱말이 참 듣기 좋았다. (283쪽)


하릴없이 되뇐다. 살면서 내가 용서해야 하는 대상은 ‘남’이 아니라 ‘나’인지 모른다고. (302쪽)


곰곰이 따져 봤다. 아차, 꽃 축제에 아름다운 꽃이 없었을 리 없다. 그런 꽃을 알아채고 음미하려는 내 여유와 의지가 없었던 건지 모른다. (306쪽)



  어제 감자국을 끓이는데 국에서 보글보글 거품이 솟으니 곁에서 지켜보는 큰아이가 묻습니다. “그 거품 걷어내야 해?” “안 걷어도 돼. 다만 거품을 안 걷으면 흘러넘칠 수 있어. 그뿐이야.”


  국을 끓이면서 거품을 안 걷을 수 있고, 거품을 살뜰히 걷을 수 있습니다. 거품까지 먹는들 대수롭지 않지만, 거품을 걷지 않으면,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솟는 거품이 뚜껑을 밀치면서 그만 국물이 꽤 넘치고 맙니다. 이때에는 국물도 버리고 냄비에도 검댕이 생기며 불덕을 닦아내자면 꽤 품이 들어요.


  《언어의 온도》(말글터, 2016)라는 책을 마을책방을 다녀오면서 장만했는데, 이 책은 책방에 앉아서 몇 분 안 걸려서 다 읽고 말았습니다. 글쓴이 스스로 삶으로 겪은 이야기보다는 둘레에서 지켜본 모습을 옮긴 글이 가득한 터라, 마음으로 스밀 만한 대목이 드물었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글쓴이는 글치레를 너무 자주 합니다.


  “고언苦言을 들려주었다”, “모자母子의 모습”, “정서적 화상火傷을 입을 수 있습니다”, “내 언어의 총량總量에 관해”, “다언多言이 실언失言으로 가는”, “공백空白이란 게 필요하다”, “부재不在의 존재存在가”, “염치廉恥를 잃어버린 것 같다” 같은 대목이 끝없이 나옵니다. 글에 한자를 덧달 수도 있다지만, 쉽게 쓸 말을 버리니 이렇게 글치레만 하는구나 싶어요.


  “유머는 그렇지 않다. 익살과 해학과 삶의 희로애락이 적절히 뒤범벅된 익살스러운 농담을 의미한다”는 무슨 말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되씹어 음미했다”나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나 “얼큰하게 취하고 나서는”이나 “일부 조류는 … 내가 목격한 새도”나 “부친을 … 아버지와 말을 섞지”는 겹말입니다. 따스한 말에서 따스한 마음을 찾으려 한다면, 말마다 서린 다른 결을 찬찬히 짚어야지 싶습니다.


  글에서 거품을 걷어내면 좋겠습니다. 거품을 굳이 끌어안아야 하지 않습니다. 거품맛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더구나 거품맛으로는 배부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맛있는 국을 먹어야 배부릅니다. 즐겁게 국을 끓이고 먹고 치우고 삶을 누릴 노릇이라고 생각해요.


  책이 한때 잘 팔리는 책이 될 수 있겠지요. 잘 팔리는 책이라는 이름을 얻어도 나쁘지 않을 테고요. 그러나 한때 잘 팔린다는 거품에 매인다면 삶을 가로지르는 기쁨이나 보람이나 노래나 놀이하고는 동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사랑받는 책’에는 거품맛이 없다는 대목을 글쓴이가 헤아려 보기를 바랍니다. 2017.12.28.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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