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삯
이제껏 책을 사며 에누리를 해 본 일이 없습니다. 아마 십만 권이 훌쩍 넘는 책을 샀을 텐데 참말 한 차례도 에누리를 한 적이 없는 줄 요즈음 새삼스레 깨닫는데요, 왜 에누리를 안 하면서 책값을 치르나 하고 요 몇 해 동안 헤아려 봤어요. 어느 날 곁님이 문득 짚어 주어서 뒤늦게 무릎을 쳤습니다만, ‘책값 = 배움삯’이라고 여겼기에 책값을 에누리할 마음이 없던 셈이더군요. 한 줄을 읽으면서 배우든 통째로 다 읽으면서 배우든 늘 배울 수 있어 고마운 책이기에, 기꺼이 온돈을 다 치르면서 책을 사려고 했구나 싶어요. 삶을 배우고 살림을 배우며 사랑을 배울 수 있는데 값을 깎자거나 외상으로 달아 놓을 수야 없지요. 고마이 배우고 기쁘게 배우며 아름답게 배우는데 바로바로 온돈을 치를 뿐 아니라 우수리나 덤을 챙겨 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2017.12.21.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