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빨래터에서 읽은 책 2017.12.16.


11월 끝자락부터 주마다 두세 곳씩 찾아가서 이야기꽃을 펼치다 보니 고흥집에서 느긋하게 쉴 겨를이 없기도 하지만, 마을 빨래터하고 샘터를 치울 틈을 내기도 만만하지 않다. 새로운 주에도 서울하고 순천으로 이야기꽃 나들이를 다녀오기로 했다. 날씨가 살짝 풀렸다 싶은 오늘 빨래터를 치우기로 한다. 맨발로 빨래터에 들어가서 이끼를 걷어야 하기에 반바지를 챙겨서 입는다. 이달 첫무렵만 해도 빨래터를 치우며 그리 춥거나 발이 시리다고 못 느꼈으나, 오늘은 발이 많이 시리고 손까지 언다. 몸살이 아직 안 나았나? 마무리까지 하고서 담벼락에 걸터앉는다. 언손을 녹이려고 한참 겨드랑이에 낀다. 손이 좀 녹았구나 싶어서 《겨울정원》을 편다. 겨울을 겨울답도록, 또 겨울에 새롭도록, 그리고 겨울에 아름답도록 뜨락을 가꾸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다. 가만히 생각하면 도시에서는 겨울에도 여름에도 봄에도 가을에도 다른 빛깔이나 빛결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더욱이 요새는 시골에서마저 겨울빛을 보기가 쉽지 않다. 모조리 갈아엎고 자꾸 시멘트를 씌우며 나무를 베려고 하는 분들이 많다. 우리가 고흥에 깃든 지 몇 해 안 될 무렵, 네 식구가 겨울들마실을 하는데 곁님이 싯누렇게 마른 억새잎을 보더니 이렇게 멋진 ‘시든 풀빛’을 본 적이 없다며 놀란 적이 있다. 어떤 물감으로도 이 ‘시든 풀빛’을 그리지 못하겠다고 덧붙였다. 겨울뜨락이란, 겨울마당이란, 겨울뜰이란, 겨울꽃밭이란, 바로 겨울다운 겨울빛을 나누는 아름다운 쉼터이리라.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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