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2.11.


녹동에 다녀오기로 한다. 곁님이 물고기살을 먹고 싶다 한다. 아이들은 아직 물고기살을 날것으로는 안 먹는다. 그렇지만 버스를 갈아타고 녹동 바닷가에 다녀오려고 생각한다. 바람이 드세게 부는 아침에 고흥읍으로 간다. 마침 바로 녹동 가는 버스가 들어온다. 도양우체국에 들러서 책을 부치고 녹동 바닷가에서 고기잡이배를 구경한 뒤에 횟집 한 곳을 골라서 들어간다. 아이들은 배가 고팠기에 이것저것 집어서 먹기는 하되 물고기살은 씹기가 힘들다며 안 먹는다. 새우도 해삼도 멍게도 소라도 굴도 조개도 낙지도 …… 다 안 먹다가, 마지막에 말갛게 끓인 국은 흰밥을 말아서 먹는다. 한 그릇 반씩. 다시 바닷바람을 쐬고 고기잡이배를 구경한 다음, 아까하고 거꾸로 버스를 갈아타서 집으로 돌아온다. 아침 열한 시에 길을 나서서, 저녁 네 시에 집으로 돌아왔다. 같은 고흥군에서 움직였는데 다섯 시간을 길에서 보냈네. 시골에서 횟집 다녀오기란 이렇게 품이 드네. 그래도 이동안 《만족을 알다》를 찬찬히 읽을 수 있었다. 오늘은 군내버스만 네 차례 탔으니. 《만족을 알다》는 옛날 일본이 얼마나 흙을 알고 사랑하면서 가꾸었나 하는 이야기를 글하고 그림으로 꼼꼼히 짚어서 보여준다. 더욱이 이런 이야기를 일본사람 아닌 미국사람이 적었다. 한국에서는 한국 옛살림을 이렇게 꼼꼼히 밝혀서 글하고 그림으로 살려낸 책이 있던가? 대단히 부끄러우면서 여러모로 배울 대목이 많은 알찬 책이다. 스스로 삶을 짓는 사람들 이야기가 고이 흐르는 이런 책을 여밀 줄 아는 일본은 훌륭하다. 생각해 보라, 조선왕조실록 같은 책에 ‘자급자족을 하는 삶이나 살림’이 한 줄이라도 나오는가? 우리가 쓸 책이나 읽을 책이란 무엇인가?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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