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기공주 웅진 세계그림책 36
파트리스 파발로 지음, 윤정임 옮김, 프랑수와 말라발 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775


촛불로 독재 우두머리를 끌어내리듯이
― 칠기 공주
 파트리스 파발로 글·프랑수와 말라발 그림/윤정임 옮김
 웅진주니어, 2006.6.26.


‘칠기 공주.’ 먼 옛날 미얀마의 어느 나라에 칠기 공주라 불리는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우탱이라는 소박한 칠기장이의 딸로, 칠기를 장식하는 솜씨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이 뛰어나 그런 이름이 붙은 거예요. 아버지가 접시며 항아리, 사발과 함을 빚으면, 칠기 공주는 그 위에 그림을 새겨 칠기를 장식했어요. 칠기 공주의 손길이 닿으면 그림이 살아나는 듯했지요. (2쪽)


  미얀마 옛이야기를 다룬 그림책 《칠기 공주》(웅진주니어, 2006)가 있습니다. 이 그림책은 2006년에 처음 한국말로 나왔습니다만, 아쉽게도 어느새 판이 끊어져서 더는 새책방에서 만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도서관이나 헌책방에서 만날 수 있겠지요? 이제는 쉽게 만나기 만만하지 않은 그림책일 텐데, 이 그림책을 이 나라 푸른 벗님한테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그림책 한 권은 어린이한테뿐 아니라 푸름이한테도, 또 할머니하고 할아버지한테도 뜻깊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함께 들려주고 싶기도 합니다.


그 나라는 아주 거만한 왕이 지배하고 있었어요. 왕은 스스로를 ‘태양보다 더 빛나는 왕’이라고 불렀지요.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도 빠짐없이 왕의 귀로 들어갔고, 칠기 공주에 대한 소문도 왕에게 알려졌어요. 왕은 대신을 불러들여 명령했어요. “그 칠기 공주라는 아이가 소문처럼 그렇게 솜씨가 뛰어난지 알아보거라. 만일 소문대로라면 돈은 충분히 줄 테니 앞으로는 오직 나만을 위해 칠기를 만들도록 하라.” (5쪽)


  그림책 《칠기 공주》는 미얀바 또는 버마라고 하는 나라를 둘러싸고 어제와 오늘을 나란히 다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날 미얀마 또는 버마에 아주 건방지다 싶은 임금님이 있었다고 해요. 사람들을 윽박지르기만 하면서 콧대가 높은 임금님인데, 이이는 나라를 아름답게 다스리는 길이 아니라, 나라를 억누르는 길을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미얀마도 세계에 손꼽히는 안타까운 독재 정치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왜 임금이라는 자리에 서면 그만 사람들을 억누르거나 짓밟히는 길을 가고야 말까요? 아름다운 임금 노릇을 하기란 어려울까요? 나는 새를 떨어뜨리는 드센 힘을 뽐내면서 우쭐거려야 할까요? 그 드센 힘을 여리거나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에 알뜰살뜰 쓰기가 싫을까요?

  옛이야기 《칠기 공주》에 나오는 임금님은 미얀마 또는 버마에 손꼽히는 ‘칠기를 훌륭히 빚는 사람’더러 ‘오직 임금님만 쓸 칠기’를 빚으라고 시켰다고 해요. 칠기 공주는 이제껏 숱한 이웃들한테 즐겁게 제 훌륭한 솜씨를 나누며 살았는데, 앞으로는 이 훌륭한 솜씨를 ‘꽁꽁 가두라’고 시키는 셈입니다. 돈하고 힘을 내세워서 말이지요.


“제 딸은 그렇게 위대한 왕의 고귀한 취향을 맞춰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저희가 만드는 칠기들은 소박한 사람들, 농부나 어부 같은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것들입니다.” (7쪽)


  칠기 공주나 칠기 공주 아버지는 임금님 뜻을 따를 마음이 없대요. 돈으로 힘으로 군대로 억눌러도 칠기 공주나 칠기 공주 아버지는 이에 굽히지 않습니다. 칠기란 ‘농부나 어부처럼 수수한 사람들한테 어울리는 그릇’이라고 떳떳이 밝힙니다.

  이러면서도 임금님한테 바칠 칠기를 칠기 공주가 빚는데요, 임금님은 칠기 공주가 바친 칠기를 보더니 부들부들 떨면서 성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대요. 왜 성이 났을까요?

  칠기 공주는 칠기에 ‘임금님이 하는 일’을 고스란히 그렸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억누르거나 괴롭히는 모든 짓을 칠기로 담아냈다고 합니다. 거짓이 아닌 참을 담은 칠기 그림인 셈입니다. 무시무시한 군대 앞에서도 당차게 제 할 말을 하는 몸짓입니다. 거짓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는 다부진 모습이에요.


군사들이 우탱의 칠기장으로 쳐들어갔어요. 그리고 우탱과 칠기 공주를 밖으로 끌어내 왕의 발치에 내던졌어요. 태양보다 더 빛나는 왕은 칠기 공주를 향해 몸을 숙이더니 얼굴에 대고 쏘아붙였어요. “네 그림들은 거짓말투성이야!” “전하, 저는 제 눈으로 본 것들만 칠기에 그렸습니다.” “그렇다면 네 눈을 뽑아버리겠다!” (18쪽)


  우리는 촛불 한 자루를 조용히 들면서 우두머리 한 사람을 꼭대기에서 끌어내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총칼이 아닌 촛불 한 자루로 총칼을 무너뜨린 적이 있습니다. 총칼뿐 아니라 어마어마한 돈도 촛불 한 자루로 녹여냈다고 할 만합니다.

  그림책 《칠기 공주》에 나오는 작은 사람인 칠기 공주는 칠기 그릇 하나를 마치 촛불처럼 다루면서 어둠을 불살라 녹이려는 몸짓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삶을 바라는 몸짓이요, 거짓스러운 권력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몸짓입니다. 임금이라는 자리에 있는 사람도 농부나 어부처럼 수수한 이웃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몸짓이기도 해요.

  칠기란 무엇일까요? 밥 한 그릇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먹고 입고 자는 모든 살림은 어디에서 비롯할까요? 밥이며 옷이며 집은 누가 짓고, 누가 가꾸며, 누가 나눌까요?


이제 칠기 공주에게는 밤낮이 따로 없었어요. 감옥 안의 칠기 공주는 시간의 흐름도 잊었어요. 그저 자기가 보았던 것을 쉬지 않고 이야기했어요. 배고픈 줄도, 목마른 줄도 몰랐어요. 한 마디 한 마디 이야기를 할 때마다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어요. 칠기 공주는 숨결처럼, 바람처럼 가벼워졌고, 이제 그 어떤 벽도 자기를 가두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마침내 칠기 공주는 자유로워졌습니다. (23쪽)


  칠기 공주는 감옥에 갇힙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못하는 깜깜한 감옥에 갇힌 칠기 공주는 그 깜깜한 곳에서 두려움을 떨쳐내고 조용히 이야기꽃을 피웠다고 합니다. 밥 한 술도 물 한 모금도 먹지 않으면서 오직 이야기꽃을 피웠대요.

  칠기 공주를 가둔 임금님은 아주 작은 칠기 공주뿐 아니라 ‘온 나라 사람들’이 무서워서 군대를 늘렸다고 합니다. 성벽을 더 높였다고 합니다. 성 바깥으로는 나가지도 못하면서 군대하고 성벽에만 마음을 쏟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임금님은 군대하고 성벽에 둘러싸인 채 제 몸 하나를 건사할 수 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농부나 어부 같은 사람들은 총칼도 군대도 없습니다. 맨몸으로 흙을 만지며 일합니다. 맨몸으로 아이를 돌보며 살림을 꾸립니다. 맨몸으로 서로 얼크러지면서 마을을 가꾸지요.

  평화는 어디에 있을까요? 누가 평화로울까요? 군대와 성벽으로 둘러친 임금님이 평화를 누릴까요? 군대와 성벽에 돈만 있으면 하늘을 찌르는 권력으로 아늑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촛불 한 자루로 나라를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맑고 밝은 꿈 하나를 마음에 심으면서 삶을 바꿀 수 있습니다. 푸른 벗님은 대학교가 아니어도 스스로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 새로운 배움길에 나설 수 있고, 대학교가 아니어도 사회 한켠을 밝히는 아름다운 길을 닦을 수 있어요.

  우리 함께 찬찬히 손을 내밀어 어깨동무를 해 봐요. 우리 함께 마음을 나누면서 사랑을 지펴 봐요. 거짓은 밀어내고 참을 받아들여 스스로 아름답게 일어서 봐요. 서로 돕고 아끼면서 함께 웃음지을 수 있는 터전을 새로 일구어 봐요.

  틀림없이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참말로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 꿈은 총칼로 억누르지 못합니다. 우리 사랑은 권력으로 내리누르지 못합니다. 착한 민주, 아름다운 평화, 즐거운 평등을 우리 두 손으로 이루는 길을 생각해 봅니다. 미얀마 또는 버마에도, 이 땅에도, 지구별 골골샅샅에도, 착하고 아름다우며 즐거운 이야기가 넉넉히 흐르기를 바라 마지 않습니다. 2017.12.7.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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