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아눕는 책읽기
앓아누우니 아무 말을 할 수 없습니다. 앓아누우니 종이책은 손에 쥘 수 없습니다. 앓아누우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습니다. 앓아누우니 걸을 수도 없을 뿐더러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일 적에마저 까슬까슬합니다. 그런데 앓아누우니 기운을 못 쓰는 터라, 삶을 한결 부드러이 마주할 수 있스비다. 앓아눕는 터라 말 한 마디 내뱉을 적에 엄청나게 힘이 들어, 참말로 가장 빛나면서 고운 말마디를 추려서 나긋나긋 읊을 수 있습니다. 한 해 내내 앓아눕는다면 참 괴롭겠지요. 한 해에 하루나 이틀쯤 앓아누워서 내 묵은 때를 벗고서 새로 일어나는 일은 고마운 배움짓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2017.11.29.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