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11.26.
엊저녁에 큰아이한테 읽힌 그림책 《이상해!》를 아침밥을 짓기 앞서 가만히 되읽어 보았다. 바닷물고기를 사진으로 찍는 이모 이야기를 따라서 아이한테 성평등이란 무엇인가를 매우 부드러우면서 슬기롭게 보여준다. 부드러우면서 슬기롭고, 쉬우면서도 아름답게 들려주는 이야기란 얼마나 멋진가. 어른들 인문책은 으레 딱딱하거나 날카롭다면, 아이들 그림책은 이렇게 따사로우면서 부드러이 이야기꽃을 지피니 늘 새삼스레 놀란다. 저녁을 짓는 동안 시집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를 읽는다. 저녁밥은 큰아이가 냄비에 불을 올려 주었다. 훌륭하다. 큰아이는 아직 밥물을 잘 맞추지 못하지만, 자꾸자꾸 하다 보면 냄비밥 물을 얼마쯤 맞추어야 하는가를 몸으로 배우리라. 손에 물을 거의 안 묻히면서 저녁을 짓다 보니 느긋하게 시집을 읽을 수 있다. 좋구나. 이런 날도 맞이하네. 그림책 《이상해!》를 보면 맨 끝에 ‘아기 업고 돼지고기튀김을 차려 주는 이모부’ 모습이 나오는데, 이제껏 거의 이런 모습으로 살림을 지어 오다가, 아이들 손길을 받으며 느긋하게 밥을 지으니, 잘 자라는 아이들이 참으로 고맙다. 《나는 점점 왼편으로 기울어진다》에 깃든 삶노래 가운데 ‘열무장수’ 이야기가 살갑다.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