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까



  잠자리에 들기 앞서 아이들을 이끌고 마당에 섭니다. 오늘은 별이 안 보이네요. 구름인가, 안개인가, 아니면 먼지인가 알 길이 없습니다. 마당을 휘휘 돌다가, 여러 놀이를 하다가, 마을 한 바퀴를 돌려 하는데, 우리가 딛는 자리가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일 뿐이라고 깨닫습니다. 아이들이 먼저 달음박질로 마을 한 바퀴를 돌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집 뒤꼍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우리 집 뒤꼍에서 흙을 밟고서 잠자리에 들기를 바라는 뜻입니다. 흙을 밟지 못하고서, 겨울을 앞두고 시들어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스러지는 풀노래를 듣지 못하고서, 추위를 맞이하며 노랗게 익는 유자가 밤에도 나누어 주는 냄새를 맡지 못하고서, 그냥 잠들 수 없다고 생각해 봅니다. 노느라 땀을 쏟은 아이들이 11월 13일 이 깊은 가을에 부채를 하나씩 챙겨서 부치면서 잠들겠노라 합니다. 너희는 참 대단하네. 2017.11.13.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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