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11.8.
순천으로 마실을 가려고 시집 한 권을 챙겼다. 군내버스에서 《적당히 쓸쓸하게 바람 부는》을 읽는다. 순천에 있는 책방에서 27만 원어치 책을 사면서, 내가 책값에 돈을 너무 많이 쓰는가 하고 생각하다가, 나 스스로 새롭게 배우려고 책을 살 뿐이야 하고 생각하다가, 배우려면 호미 쥐고 흙이랑 배우면 되지 않니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책방에 놓인 오늘치 신문 머릿글을 읽는다. 책방에 놓인 오늘치 신문에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미국 무기를 한국이 수십억 달러 어치를 사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는 이야기가 흐른다. 수십억 달러라. 재미있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한국 정부가 먼저 밝히지 않았다. 트럼프라는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와서 얼결에 내뱉은 말이다. 트럼프라는 사람도 처음부터 미리 생각하거나 셈하고서 한 말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촛불힘으로 독재 권력자라는 이를 끌어내렸으나, 정작 새로 대통령이 된 사람은 우리가 모르게 ‘수십억 달러라는 미국 무기’를 우리 몰래 사기로 했단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는 미국 무기 몇 가지를 이만 한 돈을 들여서 사기로 했다뿐이다. 이밖에 우리가 알 수 없는 데에 어떤 돈을 얼마나 썼는지는 하나도 알 길이 없다. 더 생각해 본다면, 이제껏 어느 한국 대통령도 미국 무기를 사거나 주한미군 유지비로 얼마나 쓰는가를 밝힌 적 없고, 미국 대통령도 이를 안 밝혔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이 대목을 궁금해 하지 않을 뿐더러 묻거나 따지지도 않았다. 순천을 돌고서 고흥으로 돌아와서 읍내에서 엉덩쉼을 했다. 큰아이가 한 마디. “아버지, 우리 버스를 너무 많이 타서 힘들어. 좀 쉬었다 가자.” 집에서 고흥읍 거쳐 순천으로 한 시간 반. 순천에서 고흥으로 시외버스 삼십 분. 큰아이는 오늘 두 시간 탄 버스로도 힘들어서 괴롭단다. 미안하네. 네 마음이랑 몸을 너무 몰라 주었네. 알맞게, 쓸쓸하게, 바람이, 살몃 분다. 시집에 흐르는 바람도, 시골에 부는 바람도, 이 나라에 부는 바람도, 그리고 이 지구라는 별에서 살아가는 모든 목숨한테 부는 바람도, 따사롭기를.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