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옛 농사 이야기 - 사람 땅 작물 모두 돌보는 전통 농사살림 ㅣ 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 58
전희식 지음 / 들녘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책읽기 삶읽기 327
‘비료·농약·새마을운동’은 독재정권 감시 정책?
― 옛 농사 이야기
전희식 글
들녘 펴냄, 7.28. 12000원
시골에서 자랐던 사람들이 요즘 고향으로 돌아와 보면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리거나 곱씹고 추억할 만한 풍경이 다 사라지고 없다. 왜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농사의 목적이 자급자족에서 돈벌이 수단으로 바뀐 데 있다. (6쪽)
시골에서 흙살림을 짓는 전희식 님이 마음먹고 《옛 농사 이야기》(들녘, 2017)라는 책을 썼다고 합니다. 이 책은 오늘날 거의 모든 시골에서 자취를 감추는 ‘옛 흙살림’을 다루면서, 오늘날 시골은 흙살림 아닌 ‘농업’만 있다고 하는 대목을 짚습니다. 한 마디로 하자면, 옛날에는 흙을 살리면서 먹고살았으며, 오늘날은 흙을 죽이면서 돈을 벌려고 하는 얼거리라고 해요.
요즘 누가 분무기나 드론으로 제초제를 뿌리면서 ‘논매기노래’를 부르겠는가. 논일하면서 부르던 농요는 농기계가 등장하면서 사라져버렸다. (22쪽)
슬레이트 지붕 개량은 볏짚 길이가 짧은 통일벼 등 개량 벼가 등장하던 시기와도 맞물린다. 동네마다 있던 삼밭도 사라졌다. (34쪽)
이때(1974∼1975)부터 화학비료와 농약이 농지를 점령하기 시작했는데 최근 학계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 농촌의 급격한 변화를 주도한 새마을운동은 미국의 동남아시아 개발 전략과 한반도 안보 전략에 따른 기획이었다고 한다. 1960년대 말 안보 취약지구에 건설된 ‘전략촌’이 그 효시다. 종적인 관의 주도성과 마을 단위의 감시 체제를 강화하는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77∼78쪽)
전희식 님이 《옛 농사 이야기》에서 밝히는 이야기를 이제는 함께 곰곰이 따져 보아야지 싶습니다. 오늘날 시골에는 사람들이 애틋하거나 그립게 떠올릴 만한 모습이 참말로 거의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미꾸라지나 가재를 잡을 만한 흙도랑이 빠르게 사라지지요. 어쩌다 시멘트 아닌 흙으로 도랑이 남았어도 농약 때문에 섣불리 못 들어갑니다. 농약 때문에 논둑이나 밭둑에 섣불리 앉기 어려우며, 맨발로 들을 달리기 어렵지요. 연을 날릴 곳이 없고, 시골길에서도 자동차를 걱정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별이 쏟아지는 밤이었다지만, 요새는 그리 별이 안 쏟아집니다. 옛날에는 여름 밤을 반딧불이가 반짝거리며 날았으나, 요새는 반딧불이를 볼 만한 시골이 적고, 그나마 숫자도 매우 크게 줄었어요.
더구나 요즈음 시골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트로트나 대중가요는 부르지만, 시골노래가 없어요. 논매기노래뿐 아니라 방아를 찧거나 콩바심을 하며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기계로 심고 기계로 거두니 심거나 거둘 적에 노래를 부를 일조차 없어요.
옛날에는 해충이 없었고 농장에 해로운 균이 번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든 촌로들이 똑같이 얘기한다. 비료를 주면 토양의 물리적 성질이 급격히 악화된다. 통기성과 배수성, 물리적 구조 등이 심각하게 훼손된다. 흙이 죽어버린다는 얘긴데, 흙 속에 사는 미생물을 포함한 다양한 생명체들이 사라지게 되니 결국엔 특정 개체의 벌레가 농장을 독점하게 된다. (110쪽)
새마을운동은 안보 때문에 생겼다고 합니다. 독재정권이 시골을 감시하는 얼거리였다고 하지요. 이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느껴요. 북녘은 북녘대로 주민을 감시하는 얼거리가 있었는데, 남녘은 시골에서는 새마을운동으로, 도시에서는 반상회로 주민이 서로 감시하도록 했습니다. “살기 좋은 새마을”이 아닌 “독재하기 좋은 새마을”이었다고 할까요.
이러다 보니 서로 돕는 두레나 품앗이가 줄어들밖에 없어요. 게다가 기계로 심고 거둘 적에는 두레나 품앗이가 부질없어요. 기계가 널리 번지면서 농약하고 비닐도 널리 번졌고, 이러는 동안 시골에서는 장구를 치거나 꽹과리를 울리는 일이 사라지고 노래가 함께 사라졌어요.
스스로 일하고 스스로 노는 마을이 아닌, 집집마다 텔레비전을 들여놓고서 ‘위(서울)에서 내려보내는 방송에 목을 매는’ 얼거리가 됩니다. 시골 이야기는 가물에 콩 나는 만큼도 안 나오는 방송을 시골마을 사람들이 지켜보면서 ‘도시로 떠나기’를 꿈꾸고, 시골을 떠난 젊은 일꾼은 도시에서 값싼 공장노동자가 되었어요. 이는 1970∼80년대를 거쳐 1990년대까지 우리 시골 모습입니다.
아이들은 배추 뿌리를 얻어먹기 위해 김장하는 어머니 곁을 얼쩡댔다. 오래전 기억으로나마 남아 있는 추억이다. (161쪽)
고구마잎은 나물도 해 먹지만 소여물로도 최고였다. 볏짚만 끓여 주다가 말린 고구마 넝쿨을 작두로 썰어 한 줌 넣어 주면 누워 자던 소가 벌떡 일어나 여물통으로 달려오곤 했다. (221쪽)
요즈음 시골은 도시로 떠날 젊은 일꾼이 없습니다. 시골에까지 이주노동자가 들어와서 밭일을 하거나 김 공장에서 일을 합니다. 그러나 시골에는 아직 어린이가 있어요. 시골 어린이는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얼른 도시로 떠날 생각을 합니다.
이 흐름이 꺾이지 않는다면 참말로 시골은 한국에서 모조리 사라질 수 있습니다. 옛 흙살림 이야기만 사라지는 시골이 아니라, 사람 사는 마을이 사라질 수 있어요. 더욱이 사람이 크게 준 오늘날 시골에서 이 숫자마저 더 줄어들면 기계하고 농약하고 비료를 더 많이 쓰는 기업농만 불거지겠지요.
옛날에는 벼농사를 전년도 10월에 시작했다. 타작할 때를 1주쯤 앞두고 완숙 단계에 들어가는 벼를 베어내서 씬나락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아직 몇몇 겉잎사귀가 푸릇한 청장년쯤 되는 벼를 조심스레 베어서 천천히 말렸다. 그리고는 일일이 홀태를 이용해서 손으로 낟알을 훑어냈다. 탈곡기에 넣으면 요즘말로 스트레스 받을까 봐서다. (93쪽)
씨로 삼는 나락 한 톨(씨나락)이 기계(탈곡기)를 거칠 적에 힘들까 봐 걱정했다는 지난날입니다. 오늘날에는 이 대목을 걱정하는 눈길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경운기가 지나갈 적에 소리가 대단히 크고, 헬리콥터나 드론으로 농약을 뿌리고 나면 마을 어디에서도 새나 풀벌레나 개구리가 노래하지 않아요. 모두 죽기 때문이지요.
올봄에 저희 보금자리에 깃들던 제비는 유월 끝자락까지 튼튼히 잘 살았으나, 바로 이 유월 끝자락에 마을 곳곳에서 드론으로 농약을 뿌려대니 얼마 안 가서 모두 죽어서 사라졌습니다.
제비 같은 작은 새 한 마리는 이 땅에서 한살이를 거치는 동안 한 마리마다 날벌레나 풀벌레를 1만 마리쯤 잡아먹는다고 합니다. 참새도 가을에 낟알을 얻어먹으려고 하기 앞서까지 한 해 동안 1만 마리가 훌쩍 넘는 날벌레하고 풀벌레를 먹고요.
우리는 흙살림을 잊거나 잃으면서 무엇을 얻었을까요? 흙을 살리지 않는 농업이 춤추는 오늘날 우리한테 돈이나 기계나 비닐이나 농약이나 드론은 남는다지만, 돈·기계·비닐·농약·드론만 남은 시골에서 어느 어린이가 어떤 애틋한 이야기를 가슴에 품을 수 있을까요? 이런 것만 남는 시골에 나이든 분들이 시골을 떠올리거나 그리워할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흙이 살고 숲이 살며 마을이 살아나는 자리에서는, 어른하고 아이가 함께 살아갈 수 있지 싶습니다. 흙이 죽고 숲이 죽으며 마을이 스러지는 자리에서는, 기계와 농약을 뺀, 그리고 이 기계와 농약을 시골에 끌어들인 새마을운동 깃발을 빼고는 남아나지 않으리라 느낍니다. 가을이 저물려고 합니다. 2017.11.4.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