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10.25.

어제 저자마실을 하면서 고기를 두 점 장만했다. 곁님 어머니가 고추장에 재운 더덕을 한 통 보내 주셨기에, 아이들한테 먹이려고 고기랑 버섯이랑 배추랑 당근을 함께 구우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막상 굽고 보니 구이가 아니라 조림 비슷하게 된다. 고기를 굽는 구멍 있는 판이 아닌 스텐부침판을 쓰니 물기나 기름기가 빠져나갈 틈이 없기에 조림처럼 된다. 뻔히 알면서도 새삼스레 스스로 속는다. 더덕고기구이 아닌 더덕고기볶음마저 아닌 더덕고기조림이라니. 아이고. 이를 어쩌나. 얼른 머리를 돌린다. 아주 부드러운 배춧국을 끓이기로 한다. 잰 손놀림으로 배추를 썰어서 물을 끓여서 넣는다. 배춧국에는 달걀을 풀기로 한다. 곤약을 배춧국에 푹 익힌다. 잘 익은 뜨끈뜨끈한 곤약을 가지런히 썰어 접시에 담고, 두부도 배춧국에 담가서 익혀 놓는다. 이동안 더덕고기구이 아닌 더덕고기조림을 끝내고 저녁상을 차린다. 작은아이하고 곁님은 노느라 바쁘다며 안 오고 큰아이하고 둘이서 먹는다. 더덕고기조림은 생각보다 하나도 안 맵고, 큰아이가 맛있다며 아주 잘 먹는다. 놀이를 마친 곁님하고 작은아이는 한참 뒤에야 먹어 보는데 다들 맛있게 잘 먹어 준다. 뭐, 구이 아닌 조림도 때로는 좋은 일이지. 어쩌면 고추장더덕하고 고기버섯하고 잘 어울린다고 할 만하다. 한시름을 덜고서 등허리를 펴려고 자리에 누워서 이마 이치코 님 만화책 《그림자의 섬》을 읽는다. 《백귀야행》 못지않은 재미난 이야기가 흐르는 만화책이다. 《여행자의 나무》하고 《악몽성의 주인》이랑 줄줄이 이어지는 만화로, 이 세 권을 나란히 읽다 보면 우리가 발을 디딘 이곳은 어쩌면 꿈나라일 수 있고, 우리가 꿈으로 마주하는 곳이 외려 참삶일 수 있다고 느낀다. 예전에 《샤먼 시스터즈》나 《게게게의 기타로》라는 만화책을 읽으면서 웬만한 다른 만화책이 시들해진 적이 있는데, 이마 이치코 님이나 타카하시 루미코 님 만화책을 읽다 보면, 그리고 여기에 테즈카 오사무 님 만화책을 새로 펼쳐서 읽다 보면, 만화라는 갈래는 대단히 높으며 아름다울 뿐 아니라, 웃음하고 노래까지 곁들여서 꿈을 사랑스레 북돋우는 엄청난 예술놀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나저나 《유리가면》 마지막 권은 언제 나오려나.

(숲노래/최종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