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밥하면서 읽는 책 2017.9.22.
밥을 짓는다. 아침저녁으로 밥을 짓는다. 하루 두 끼니 짓기에 밥 한 끼니를 짓고 나서 쉴 겨를이 있다. 하루에 세 끼니 밥을 짓는다면 쉴 겨를이 있을까? 아마 조금도 없으리라. 밥을 지어 밥상을 차리면 밥상맡에 앉기 힘들다. 되도록 빨리 그릇을 비운 뒤에 자리에 눕고 싶다. 밥을 다 짓고서 아이들하고 밥상맡에 둘러앉아서 도란도란 차분하게 수저를 들며 말꽃을 피울 줄 아는 어버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하고 돌아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아직 너무 많은 사내가 밥살림을 모른다. 만화책 《엄마 냄새 참 좋다》에도 이런 이야기가 여러모로 흐른다. 곁에 있는 살가운 한집 사람 권리나 인권이나 평등이나 평화를 헤아리지 못하는 사내 모습이 언뜻선뜻 비친다. 허울뿐인 아버지뿐 아니라 철거용역 깡패 노릇을 하는 사내도, 미혼모한테 아기를 떠넘기고 사라진 미혼부도, 가시내를 깔보는 숱한 사내도, 손수 밥을 지어서 먹는 살림을 꾸린다면 무언가 좀 달라질 수 있을까. 어쩌면 사내들은 밥상맡에 앉아서 수저질은 할 줄 알아도, 정작 부엌에서 밥살림을 지을 줄 모르기에, 아직 이 땅에 참다운 평등이나 평화나 인권은 너무나 먼 나라 이야기일 수 있다.
(숲노래/최종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