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지를 파는 아침



  아이들 귀지를 팝니다. 두 아이 모두 “귀 파 주셔요” 하고 며칠 앞서부터 이야기했으나 그때에는 한창 부엌일이라든지 다른 일을 하던 때에 이야기한 터라, “그래, 이 일 끝내고.” 하고 대꾸했는데, 막상 그때에 다른 일을 끝내고서 저도 아이들도 잊었어요. 이러다가 사흘 동안 바깥마실을 다녀왔지요. 바깥마실을 다녀온 이튿날 아침에 큰아이가 “아버지, 귀 파 주셔요.” 하고 다시 말합니다. “그래, 귀 파야지.” 하고 대꾸합니다. 큰아이를 마루에 누이고 왼귀부터 팝니다. 작은아이는 큰아이가 귀지를 파낼 적에 곁에서 놀지만, 막상 작은아이더러 “우리 귀 파 볼까?” 하고 물으니 “아니.” 하고 대꾸합니다. 겨우 작은아이 오른귀는 팠으나 왼귀는 안 주겠답니다. 작은아이 오른귀에서 귀지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가를 아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도 왼귀를 안 내줍니다. “보라야, 네 말이 아닌 귀지 말을 하지 말자. 귀지가 귀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혀도 네가 귀지 말을 따라야 할 까닭이 없어. 우리가 밥을 먹고 이를 안 닦니?” “아니.” “우리가 신나게 놀고 몸을 안 씻니?” “아니.” “손낯도, 팔다리도, 몸도, 이도, 귀도, 늘 깨끗하게 가꿀 적에 즐겁고 몸이 가벼워. 네가 귀지를 안 파겠다면 네 뜻대로 해. 네 몸은 네 몸이지 아버지 몸이 아니야.” 오늘 낮이나 저녁 즈음에 작은아이가 오른귀도 마저 아버지한테 맡겨 줄까요? 기다려 보기로 합니다. 2017.9.1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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