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감정 문학과지성 시인선 318
최정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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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303



믿을 수 없는 말

― 레바논 감정

 최정례 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06.5.4.



수박은 가게에 쌓여서도 익지요

익다 못해 늙지요

검은 줄무늬에 갇혀

수박은

속은 타서 붉고 씨는 검고

말은 안 하지요 결국 못하지요

그걸

레바논 감정이라 할까 봐요 (레바논 감정)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수퍼마켓엔 겨울딸기가 있어요

그것도 두 팩에 7천 원 소리치면서

전에 딸기는 수원 딸기 밭에 있었는데

연인들은 5월이면 딸기 밭으로 가

처음으로 눈을 맞추고 몸을 만졌는데 (겨울딸기)


어릴 때 사촌은 기차는 바퀴가 없는 것이라고 우겼다. 겨울방학 책에 뱀 꼬리처럼 사라지는 기차 그림엔 정말 바퀴가 보이지 않았다. 기차를 타본 내가 기차를 타보지 않은 사촌의 말을 이길 수가 없었다. (내부순환도로)



  믿을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럼없이 말하고 거리낌없이 말할 적에는 믿습니다. 허물없이 말하고 참다이 말하면 믿어요. 스스럼없거나 거리낌없을 적에는 때때로 투박하거나 거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말씨는 참답기에 좀 날카롭더라도 얼마든지 믿을 만합니다.


  믿을 수 없는 말이 있습니다. 뭔가 감추거나 숨기며 말할 적에는 안 믿습니다. 아무리 달콤하거나 부드럽거나 듣기 좋도록 말하더라도, 거짓으로 하는 말은 믿을 수 없어요.


  값싸게 파는 것이기에 좋을까요? 값비싸게 팔기에 안 좋을까요? 제대로 지어서 제값을 붙여서 판다면 좋겠지요. 값은 때로는 쌀 수 있고 비쌀 수 있어요. 값이 대수롭지 않아요. 제구실을 하는 제대로 된 것인가 하는 대목이 대수롭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장만하며 꾸리는 살림일까요? 우리는 어떤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삶일까요? 우리는 어떤 말을 나누면서 사귀거나 만나는 사이일까요? 참을 드러내려고 스스럼없거나 거리낌없는 하루를 짓는가요? 겉보기로만 좋도록, 그저 그럴싸해 보이도록, 껍데기만 가꾸는 말마디로 살아가지는 않나요? 아니면, 투박하거나 거칠더라도 참다운 살림을 지으면서 차근차근 하루를 누리나요? 2017.8.27.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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