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쓰기 새기기



  모든 책은 읽을 때가 있습니다. 어느 책이 갓 나올 무렵이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때가 되지 않습니다. 어느 책이 나온 지 여러 해나 스무 해쯤 흐르고서야 비로소 알아볼 수 있어요. 누구한테나 어느 책 하나를 알아볼 때는 다르기 마련이고, 꼭 알맞을 만하구나 싶은 때에 이 책을 손에 쥡니다.


  책을 읽은 느낌은 저절로 스며나와 글이 될 때가 있습니다. 책을 읽고서 곧장 느낌글을 쓸 수 있으나, 책을 다 읽고 나서 여러 해가 지난 뒤에야 글이 술술 풀릴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열 차례나 스무 차례쯤 읽고 난 때라야 글이 흘러나올 수 있어요. 마음으로 감도는 느낌과 이야기가 태어나기까지 짧게 걸릴 수 있고 오래 걸릴 수 있어요.


  책을 읽거나 느낌글을 쓴 뒤에, 이 모든 살림과 이야기가 온넋으로 스며들어 마음에 새길 수 있자면, 그러니까 책으로 얻은 슬기가 우리 살림에서 시나브로 드러나서 꽃피우기까지는 얼마쯤 걸릴까요? 곧장 꽃피울 수 있을 테고, 차근차근 되새기면서 어느 날 문득 꽃피울 수 있어요. 어쩌면 쉰 해쯤 지나고서야 꽃피울 수 있겠지요.


  읽기도 쓰기도 제철(제때)이 있습니다. 제철은 이르지도 늦지도 않습니다. 제때는 빠르지도 더디지도 않습니다. 즐겁게 삭혀서 즐겁게 쓰면 되리라 생각해요. 무엇보다도 우리 곁에 이쁜 책이 하나 있어서, 이 책을 고운 길동무나 삶동무로 삼을 수 있으면 넉넉하리라 봅니다. 길동무는 우리를 채근하지 않아요. 삶동무는 우리를 다그치지 않아요. 책은 우리더러 빨리 읽거나 배우거나 삭이라고 나무라지 않습니다. 2017.8.25.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책 언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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