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 2017.8.21.)
― ‘사전 짓는 책숲집,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어제 여덟 시간쯤 들여서 부엌을 치우고 나니 등허리가 몹시 결려서 서거나 앉거나 누워도 끙끙 소리가 납니다. 아이들은 바다에 가자느니 골짜기에 가자느니 하고 노래를 합니다. 하하, 어디로든 다 가고 싶구나, 그렇지만 너희 아버지 살짝 쉬고서 생각해 보아도 될까, 하고 이야기합니다. 등허리를 쉬며 밥을 짓고 빨래를 한 뒤에, 9월에 낼 두 가지 사전을 놓고서 글손질을 한창 하는데 마을 이장님 전화가 옵니다. 바로 옆마을 체력단련실로 오라고 하십니다. 그 일이로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가방을 챙기니 두 아이가 “아버지 어디 가?” 하면서 같이 가겠노라 합니다. 아이들은 책숲집으로 보내고, 혼자 옆마을 체력단련실로 갑니다. 다섯 마을 이장님이 둥그렇게 앉으셨습니다. 종이 한 장을 바닥에 펼쳐 놓고 도장을 찍으라 하십니다. 닷새 앞서 고흥교육지원청에서 왔을 적에 내밀던 그 종이입니다. 닷새 앞서는 다섯 마을 이장님이 도장을 안 찍어 주셨는데, 오늘 갑작스레 도장을 다 찍어 주셨습니다. 이 도장은 저희 ‘사전 짓는 책숲집’이 폐교 흥양초등학교에서 한 해 더 임대를 할 수 있다는 확인서 도장입니다. 다만 한 해 동안 임대는 더 해 주되, 한 해가 지나면 매각을 하겠다는 확인서예요. 도장을 찍고서 자리를 물러납니다. 아이들이 있는 책숲집으로 돌아옵니다. 풀을 좀 베고 책꽂이를 갈무리하며 생각합니다. 이제 한 해 임대연장은 곧 됩니다. 읍내 고흥교육지원청에 가서 서류를 쓰고 임대료를 내면 되지요. 그러나 이곳은 이제 한 해만 더 지낼 수 있는 터이니, 앞으로 새롭게 살아갈 터전을 찾아야 해요. 저희 집 옆으로 붙은 밭자락을 사들여서 새 건물을 지을 수도 있을 테고, 다른 고장 폐교를 알아보아서 ‘사들이는’ 길로 갈 수도 있을 테지요. 오늘로서는 저희가 이곳에서 낼 새로운 사전 글손질에 마음을 기울이기로 하고, 다가오는 9월에 새로운 사전 두 권이 나오면, 이 사전을 들고 전국 여러 마을과 마을책방을 찾아다니려고 해요. 이런저런 생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니, 작은아이가 살짝 낯을 찡그립니다. “아이스크림 사러 읍내에 버스 타고 가면 안 돼? 읍내 아니면 면소재지에는?” 얘야, 오늘은 아버지가 버스도 타기 힘들단다, 적어도 하루 있다가 가자꾸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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