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어요 최측의농간 시집선 1
박서원 지음 / 최측의농간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를 노래하는 말 297


아파서 시를 쓰고, 슬퍼서 시를 읽는
― 아무도 없어요
 박서원 글
 최측의농간 펴냄, 2017.5.31. 8000원


  아이를 낳아 돌보면서 알았는데, 아이들이 처음 걸음을 떼다가 넘어질 적에 어버이가 안 놀라면 아이도 안 놀랍니다. 이뿐 아니라, 어버이가 아무렇지 않게 아이를 바라보면서 “넘어졌구나. 그래, 일어나면 돼. 무릎에 묻은 먼지 털고.” 하고 부드러이 말하면 아이는 아픈 줄 몰라요. 더욱이, 아이 무릎에 피가 흐르더라도 어버이가 차분하고 따스하게 “피가 나네. 피를 닦아야겠구나. 자, 이제 다 됐어.” 하고 말하면 아이 무릎에 흐르던 피는 어느새 멎습니다.

  넘어지기에 다치지 않아요. 넘어진 뒤에 둘레에서 걱정하거나 놀라거나 슬퍼하거나 안쓰러워하는 눈치를 느끼면 이때부터 갑자기 아프고 힘들구나 싶어요. 이러다가 다치더군요. 아이들은 늘 이와 같고, 어른도 때때로 이와 같아요.


비로소 완벽해진 나의 사회
이곳에선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없지
이젠 긴장을 풀어도 좋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무색해지는
여긴? 어디? (나의 호텔)

아픈 꽃을 보시겠어요?
선인장의 살 껍질을 말아 올리고
붉게 붉게 서려올라
어머니가 기워주시던 옛날
뚫어진 양말처럼
하루하루를 홈질하여
황혼 녘에 높다란 집 하나 짓는
수고로운 꽃을 (아픈 꽃을 보시겠어요?)


  1960년에 태어나서 2012년에 숨을 거둔 시인 박서원 님이 있습니다. 이녁이 남긴 시집하고 산문집이 여러 권 있으나 모두 판이 끊어졌습니다. 이러던 터에 시집 《아무도 없어요》(최측의농간,2017)가 새롭게 옷을 입고 태어납니다.

  시집 《아무도 없어요》를 읽으면 아픔하고 아픔이 흐릅니다. 이다음으로는 슬픔하고 슬픔이 흘러요. 아픔이 가득한 이야기가 끝나면 슬픔이 넘치는 이야기가 흐르고, 슬픔이 넘실거리는 이야기가 그치면 아픔이 춤추는 이야기가 흘러요.


곪을 데가 필요하십니까
물론 만발한 꽃은 없지만
에나폰
트리민
디아제팜 따위는 있습니다
한번 입원하면
그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여긴
물론 당신의 꿈이나 여행을
팔지는 않지만
신선한 병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병원·1)


  무엇이 이토록 시인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요. 폐결핵으로 일찍 숨을 거둔 아버지 삶자락이 시인 마음에 생채기로 남았을까요. 어릴 적부터 온갖 일을 하는 맏이로서 동생들을 돌보는 살림을 꾸리느라 시인 마음에 생채기가 생겼을까요. 젊은 나이에 사랑이 아닌 거친 손길을 받은 일이 시인 마음에 생채기로 아로새겨졌을까요.

  크고작은 일이 모두 아픔이 될 수 있어요. 아픔을 달래는 동안 슬픔이 깊어질 수 있어요. 아픔하고 슬픔을 다독이는 동안 응어리가 깊어질 수 있어요. 아픔하고 슬픔을 다스리려고 병원을 드나들다가 외려 아픔도 슬픔도 안 가라앉고 더욱 깊어질 수 있어요.


있는 그대로 오너라
있는 그대로 와서
너의 벗은 몸을 보여다오
몸은 언젠가 사라지지만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닿았다 가면
커다란 태양의 눈이 되어
온누리를 밝히게 되지 (5월)

아무도 없어요
원고지도 비어 있고
화병도 비어 있어요
하루 종일 노닐다 간
햇살도
벌써 가고 없어요 (아무도 없어요)


  곁에 아무도 없다고 느끼는 하루를 헤아려 봅니다. 곁에 늘 누가 있는 채 지낸다면 이런 하루를 헤아리기 어려울 수 있어요. 하루 내내 아파 보지 않고서야, 한 해 내내 아파 보지 않고서야, 열 해 스무 해 내내 아파 보지 않고서야, 우리 이웃이 얼마나 어떻게 아픈가를 헤아리기란 참으로 어려울 수 있습니다.

  시집 한 권으로 이웃 아픔과 슬픔을 모두 읽어낼 수는 없으리라 생각해요. 그러나 우리 곁에 있는 이웃이 어떻게 아프거나 슬프면서 이 생채기를 달래려 하는가 하는 몸짓이나 몸부림을 살며시 들여다볼 수 있다고 느낍니다.

  거꾸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우리가 마음 가득 기쁨을 느끼거나 누려 본 적이 없다면, 우리 곁에서 한껏 기뻐하는 이웃하고 함께 활짝 웃으면서 기뻐할 수 있을까요? 뜻하던 일이 잘 풀리거나 잘 되는 이웃 곁에서 스스럼없이 기뻐하거나 북돋우면서 함께 활짝 웃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삶에서 기쁨을 누려 보지 못했다면, 기쁨이 가득한 이웃을 바라보면서 자칫 시샘하거나 미워할 수 있어요. 우리가 삶에서 아픔을 느껴 보지 못했다면, 아픔이 가득한 이웃을 마주하면서 자칫 지나치거나 모르쇠로 지나갈 수 있어요.


산은 물구나무 선
하느님
내가 가까이 가면 갈수록
멀어지고
멀어지면 가까워지는
하느님 (산)

나비는 죽어서도
이 땅에 남는다
푸른 날개 노랑 날개
팔랑거리던 시절이
흐린 밤 하늘,
하필이면 두통에
시달리던 날
내 꽃밭의 꽃들을 (나의 나비)


  아픔을 아픔대로 풀어낸 시집 《아무도 없어요》라고 생각합니다. 슬픔을 슬픔대로 녹여낸 시집 《아무도 없어요》라고 생각해요. 아픔하고 슬픔으로 일렁이는 시집을 읽는 뜻이라면,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면서 우리 이웃을 다시 바라보면서 앞으로는 웃음지으며 어깨동무하는 길을 찾고 싶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마치 할머니나 어머니 손처럼 아픔을 씻어 주는 손이 되면서 시집을 읽는다고 느껴요. 오늘 우리 두 손이 이웃 두 손을 맞잡으면서 아픔을 씻고 슬픔을 달래는 따사로운 숨결로 거듭나도록 북돋우는 시집 한 권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7.23.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