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2017.7.6.) 광주 '동네책방 숨'에 찾아오는 분들하고

함께 나눌 이야기에서 몇 가지 줄거리를 뽑아서 적어 봅니다.

사전과 사진과 시골과 삶과 글이 서로 어떻게 맞물리는가 하는

작은 실마리를 보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 + +


숲에서 짓는 글살림

. 글을 어떻게 쓰는가 - 베껴쓰기 말고 투박한 우리 삶을 글로 써요



  저는 꽤 오랫동안 선풍기를 안 썼어요. 마흔 해 남짓 선풍기 없이 살다가 비로소 선풍기를 집안에 들였습니다. 다만 이 선풍기조차 며칠 안 씁니다.


  저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기도 한데, 선풍기도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무더운 한여름에 에어컨 없이 못 살겠노라 하는 이웃님이 무척 많은데, 저희 집에서는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없이 이제껏 부채로 여름나기를 한 셈입니다.


  선풍기는 곁님 어머님이 여러 해 앞서 선물해 주셨습니다. 곰곰이 따지면 선풍기가 아예 없는 살림은 아니었으나, 늘 광에 두고 안 꺼냈으니, 아예 없는 셈이었다고 할까요. 선풍기를 선물받았으나 선풍기를 쓸 일이 없다고 느꼈어요. 선풍기가 있어도 있는 줄 잊고 살았어요.


  큰아이가 아홉 살을 누리던 무렵에 선풍기를 처음 꺼냈으나 저는 선풍기 바람을 안 쐽니다. 아이들이 쐬도록 내주고 제 손에는 부채를 쥡니다. 이러면서 저는 ‘하늘바람을 사랑하자’는 마음이 되어 ‘바람 이야기’를 글로 써 봅니다. 아마 제가 에어컨이나 선풍기 바람으로 살았거나 도시에서 살았으면, 이처럼 ‘하늘바람’ 이야기는 못 썼겠다고 느껴요.


내가 바라보지 않아도

나를 바라보는

나무가


한 그루 두 그루

어깨동무하면서

짙게 그늘길 내어준다.


눈을 감고 걷는다

뒤로 돌아 걷는다

내 곁을 감싸며

늘 흐르는

새파란 바람을

실컷 마신다.


  글을 어떻게 쓸까요? 다른 분들이 글을 어떻게 쓰는지는 저한테 대수롭지 않습니다. 저는 제가 글을 어떻게 쓰는가를 밝혀 보겠습니다. 맨 먼저 삶으로 쓴다고 느낍니다. ‘삶으로 쓰는 글’이라는 말은 ‘우리가 저마다 살아가는 대로 글이 흘러나온다’는 뜻이에요. 도시사람은 도시사람대로 살며 글을 쓰고, 시골사람은 시골사람대로 살며 글을 써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책으로 배우고 얻은 대로 글을 쓰고, 흙을 만지며 살림을 가꾸는 사람은 흙과 집살림이 바탕이 되는 글을 써요. 저는 시골집에서 늘 나무랑 어깨동무하면서 하늘바람을 쐬는 하루를 누리기에 이러한 삶을 고스란히 글로 써요.


  엊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앞서 부엌을 치우려고 불을 켰더니 갑자기 웅웅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군요. 부엌 창문에 친 모기그물에 달라붙는 시커멓고 커다란 녀석이 궁금해서 들여다보니 매우 큰 풍뎅이예요. 어쩌면 장수풍뎅이일는지 모르지요. 여섯 살 아이 주먹만큼 커다란 풍뎅이예요. 난데없는 웬 풍뎅이인가 싶었는데 부엌 불을 끄니 이 풍뎅이는 어디론지 사라져요.


  고흥에서는 한 달 남짓 비가 안 와요. 이렇게 비가 안 오니 밭에서 여느 풀이 거의 안 돋아요. 땡볕이 한 달 넘게 내리쬐기만 하니까 그토록 질기거나 대단한 목숨을 뽐내던 풀조차 한두 번 손으로 뽑으니 더 기운을 못 내고 말라비틀어지기만 하네요.


  그런데 있지요, 풀을 뽑지 않은 땅은 사뭇 다릅니다. 뿌리가 땅속에 있도록 한 채 풀포기만 낫으로 베어 눕혀 놓으면, 이때에는 아무리 땡볕이 오래 가더라도 흙이 마르지 않습니다. 풀포기를 베어서 덮은 흙은 오랜 가뭄에도 가물지 않는다고 할까요. 사람 손을 타지 않는 숲은 사람이 몇 달이든 몇 해이든 물을 안 주어도 풀이나 나무가 안 말라요. 풀과 나무가 서로 어우러지는 자리, 이른바 숲에는 가뭄이 없습니다.


  사람마다 삶터가 다릅니다. 삶터가 다른 만큼 겪는 삶이 다릅니다. 겪는 삶도 마음씨마다 다르기 마련이기에, 누구는 풀을 잡초로 보면서 모두 뽑아내고, 누구는 농약을 써서 풀을 모조리 죽이며, 누구는 불을 질러서 활활 태우지요. 이때에 겪는 삶은 다 다르기 마련이요, 다 다른 삶에 맞추어 다 다른 이야기가 피어나서, 다 다른 글이 샘솟아요.


  자, 저는 이렇게 제가 지켜보는 대로 제 삶을 찬찬히 글로 옮겨요. 우리가 글을 쓴다고 할 적에는 누구나 이렇게 늘 지켜보거나 바라보거나 겪거나 느끼는 대로 쓸 수 있어요. 가장 쉬운 글이고 가장 수수한 글이에요. 우리가 서로 만날 적에 인사하며 주고받는 말처럼 쓸 수 있는 글이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대로 글을 쓸 수 있어요.


  여기에 살을 하나 붙인다면, ‘살아가는 대로 쓰되, 살면서 즐거움이나 기쁨을 느낀 대목을 골라서 쓸’ 수 있어요.


아주 천천히

발자국 소리조차 안 내고

살금살금 다가서며

더 천천히

손을 뻗어

드디어 바로 앞에

나비를 잡는구나 싶더니

내 손끝을 톡

치고

펄렁펄렁 날아가는

멧범나비


  사는 대로 쓰는 글이지만, 사는 대로만 글을 쓰면 때로는 밋밋할 수 있어요. 그래서 ‘살며 활짝 웃던 일’이나 ‘살다가 눈물이 흐른 일’이나 ‘사는 동안 노래가 샘솟은 일’을 골라서 쓸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늘 비슷하게 겪거나 거의 똑같이 하는 일’을 날마다 엇비슷하게 글로 쓴다면 재미없거나 질릴 수 있어요. 비슷하거나 같은 말을 동무나 이웃한테 들려준다면 동무나 이웃도 우리 이야기가 이제는 따분할 수 있고요.


  이 다음으로 또 한 가지 글을 생각할 수 있어요. 첫째는 ‘사는 대로’ 쓰고, 둘째는 ‘살며 기쁜 일’을 쓴다면, 셋째는 ‘살고 싶은 꿈’을 써요.


꽃이 피어나는

곳이 됩니다


이곳저곳 골골샅샅

그곳에도 골고루


곱게 꿈꾸는

곳이 되어요


곧게 서고

고이 웃고

고슬고슬 고소한

고마운 살림꽃씨를

곳곳에 심지요.


  꿈을 그리면서 쓸 적에는 그야말로 우리 꿈을 스스로 사랑스레 생각하면서 쓰면 돼요. 다른 사람 꿈을 들여다보거나 옆사람 눈치를 볼 까닭이 없어요. 앞으로 스스로 이루고 싶은 꿈을 기쁜 웃음으로 그리면 돼요.


  아무리 훌륭하거나 멋져 보이는 글이 있어도 구태여 다른 사람 글을 따라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한 마디를 보태어 본다면, 베껴쓰기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베껴쓰기를 한자말로 필사라고도 합니다만, 베껴쓰기나 필사 모두 글쓰기하고 동떨어져요. 베껴쓰기나 필사를 하면 할수록 내 삶에서 멀어져요.


  그러면 글이나 책은 안 읽으면 좋을까요? 네, 맞습니다. 글이나 책은 안 읽어도 좋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스스로 지을 노릇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스스로 짓는 새로운 살림으로 나아갈 노릇입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스스로 짓는 새로운 살림을 사랑으로 보듬으며 슬기롭게 가꿀 노릇입니다.


  그렇다면 글이나 책은 왜 있을까요? 이는 우리가 저마다 스스로 제살림을 지을 적에 이웃하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기 때문이에요.


  우리한테 우리 이야기가 없다면 우리는 이웃을 못 만나요. 우리 이야기가 없는 삶이라면 이웃을 만나는 자리에서 정치나 연예인이나 사회나 스포츠 이야기만 줄줄이 늘어놓고 말아요. 이때에는 아무 새로움이 없어요. 이때에는 아무 새로짓기가 없지요. 남들 이야기에 눈길을 두면 둘수록 우리 이야기하고 멀어져요.


  한국사람은 새로운 만화영화를 거의 못 지어내요. 그러나 한국사람은 일본이나 미국이 새로 지어내는 만화영화 밑그림을 아주 뛰어나게 그리지요. 손재주는 있는 한국사람이지만, 머리가 없는 한국사람이라고까지 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람으로서 참 부끄러운 말이 될 텐데, 우리는 남이 일구어 놓은 보기 좋거나 그럴듯하구나 싶은 글이나 책에 휘둘리면서 그만 우리 이야기를 얕보거나 낮보는 삶을 보냈어요.


  우리한테 우리 이야기가 없는 채 다른 사람들 글이나 책을 읽으면 꽁무니 좇기에서 그쳐요. 우리한테 우리 이야기가 있는 채 다른 사람들 글이나 책을 읽어야 서로 어깨동무를 합니다.


  배움이란 어깨동무입니다. 글쓰기나 책읽기는 모두 어깨동무예요. 뛰어난 스승한테서 뭔가 배울 수는 없습니다. 훌륭한 작가한테서 뭔가 얻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 스스로 가르치고 배웁니다. 내가 나를 가르치고, 내가 나한테서 배우지요.


  스스로 곧게 설 적에 스스로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요. 스스로 고요히 설 적에 이웃을 고요히 바라볼 수 있어요.


  말이란 무엇일까요? 말이란, 사람이 사랑으로 살아가는 새로운 숨결을 생각이라는 씨앗으로 살뜰히 속삭이면서 살림을 싱그러이 세우는 숨결이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글은 우리 마음으로 씁니다. 살면서 쓰고, 즐겁게 쓰며, 꿈꾸며 씁니다. ‘삶·웃음·사랑’으로 글을 쓴다고 할 만해요. 살면서 쓰기에 ‘삶’이지요. 즐겁게 쓰기에 ‘웃음’이에요. 꿈꾸며 쓰기에 ‘사랑’입니다. 글을 쓰는 걸음을 살피면서 삶이랑 웃음이랑 사랑을 노래합니다.


종이에 얹은 글씨는

우리가 지은 꿈을

아로새긴 이야기


종이에 실은 그림은

우리가 나눈 사랑을

포근히 쓰다듬은 이야기


종이에 놓은 사진은

우리가 나아갈 길을

살며시 적바림한 이야기


종이를 묶은 실은

너랑 나랑 잇는

즐거운 이야기 꾸러미


여기에 책 한 권


  저마다 바람이 되어 바람 같은 이야기를 노래하듯이 글을 쓰고 말을 한다면 매우 아름다우리라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저마다 해님이 되어 햇살처럼 눈부시고 햇볕처럼 따뜻하며 햇빛처럼 맑게 이야기를 꿈꾸듯이 글을 쓰고 말을 한다면 더없이 사랑스러우리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하려고 들면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나를 보면 모두 됩니다. 내가 나를 보지 않기 때문에 어느 것도 안 되기 마련이에요. 2017.7.6.나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우리말 살려쓰기/말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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