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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쇄를 찍자 2
마츠다 나오코 지음, 주원일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책 즐겨읽기 686
책숲과 책나무
― 중쇄를 찍자! 2
마츠다 나오코 글·그림
주원일 옮김
애니북스 펴냄, 2015.8.19. 8500원
흔히 하는 말 가운데 ‘숲을 못 보고 나무만 본다’라든지 ‘나무를 못 보고 숲만 본다’라는 말이 있어요. 큰 틀을 못 보고 작은 구석만 본다거나, 작은 구석을 업신여긴 채 큰 틀만 보는 몸짓은 둘 모두 안 좋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숲은 나무가 모여서 이루어요. 나무는 하나둘 모여서 숲을 이루지요. 숲하고 나무는 동떨어지지 않아요. 나무하고 숲은 언제나 하나예요. 이 대목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일 적에 비로소 ‘큰 것도 작은 것도 없이 하나’인 삶을 맞이할 만해요.
“잡지 색깔이 고정되어 신규 독자를 끌어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한테는 신인 작가의 신작이 적습니다. 빨리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엠퍼러》 혼자 독식하게 되는…….” “그건 안 돼! 새 연재! 새 연재! 이 자식들아, 골든위크까지 신인의 새 연재작 만들어 와!” (11∼12쪽)
“쿠로사와, 넌 누구한테 월급 받고 있다고 생각하냐?” “예, 그야 회사 아닌가요?” “틀렸어! 독자야!” (21쪽)
큰 만화책·만화잡지 출판사에 새내기 영업사원으로 들어간 아가씨가 나오는 만화책 《중쇄를 찍자!》(애니북스,2015) 둘째 권을 읽으며 이래저래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이 만화책은 숲이나 나무 둘 가운데 어느 하나도 제대로 붙안지 못한다고 느낍니다. 팔림새를 따지는 대목에서는 너무 팔림새에 치우치지 싶습니다. 작가하고 독자를 바라볼 적에는 작가하고 독자란 누구인가 하는 대목에서 겉돌지 싶습니다.
“미움 받아도 원망하셔도 할 말은 해야겠어요! 작품을 지키는 게 선생님을 지키는 거니까요. 제가 담당인 만큼, 선생님의 신뢰에 절대로 흠이 가게 놔두진 않겠어요!” (27쪽)
“말릴 수 없는 일이라고 와다 편집장님은 말씀하셨지만, 전 슬퍼요. 선생님께서 그려 주시지 않으면, 저희는 이제 두 번 다시 츠노히메랑 만날 수 없으니까요.” (59∼60쪽)
《중쇄를 찍자!》 둘째 권을 읽으면서 군데군데 ‘고개를 끄덕일’ 만한 대목을 엿보기는 하지만, 나머지 아주 긴 흐름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일이 넘친다고 느낍니다.
작가란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요? 작가는 성공만 할까요 실패만 거듭할까요? 작가한테 성공이나 실패가 따로 있을까요? 출판사로서는 작가 한 사람이 늘 ‘대작’을 내놓아서 장사가 잘되면 좋을 수 있습니다. 이는 팔림새만 바라보는 큰 출판사 ‘매출 실적 따지기’ 틀에서는 맞는 대목입니다.
그렇다고 작가 한 사람이 스스로 새롭게 발돋움하지 않고서 ‘한 캐릭터’에만 매달려도 좋을까요? 어쩐지 《중쇄를 찍자!》는 언뜻 숲을 보고 나무를 보는 듯한 몸짓을 보이려 하지만, 막상 숲도 나무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얼렁뚱땅 슬그머니 간보기를 하듯이 건드리는 데에서만 그치지 싶어요.
“얘야, 아버님을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된다. 우시로다 바쿠는 엄청나게 재미있는 만화를 그리던 사람이었다고.” “예전에 어쨌든, 지금은 쓰레기예요.” (161쪽)
“아유, 아버님 만화 읽어 본 적 있어?” “집에는 아마 단행본 없을 거예요. 어린 시절에는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구나. 가능하면 가져다주고 싶었지만, 단행본은 사외 반출 금지거든. 아유도 읽고 나면 아버님을 존경하게 될 거라고 믿어. 다음에 헌책방에서 찾아서 가지고 올게!” (182∼183쪽)
책숲이란 책으로 이룬 숲이고, 책나무란 책으로 이룬 나무입니다. 나무 한 그루만으로도 마당이나 집이나 마을은 숲이 될 수 있습니다. 숲에는 나무뿐 아니라 풀벌레랑 새랑 숲짐승에다가 사람까지 고루 어우러질 뿐 아니라 냇물이 흐르고 바다로 이어지면서 온누리를 잇는 숨결이 깃듭니다.
‘큰 매출을 바라는 대형출판사 눈높이와 눈길’로 그려내는 만화로 다룰 만한 이야기는 어느 벽을 넘지 못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러한 벽을 미처 살피지 않거나 제대로 파고들지 않는다면 이도저도 아닌 꼴이 되어요. ‘대형출판사 논리’로 가려 한다면 아예 대형출판사 논리로 제대로 가든지, 작은출판사 이야기로 가려 한다면 이 이야기를 제대로 짚든지 할 노릇입니다. 2017.5.22.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