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민들레로 꽃밭을 이룰 꿈
[삶을 읽는 눈] 재미난 살림짓기를 바라는 길
우리 식구가 전남 고흥에 깃들던 2011년을 떠올려 봅니다. 그즈음 마을 어디에서나 흰민들레를 보았습니다. 고샅에서도 논둑에서도 길가에서도 흰민들레는 매우 흔했습니다. 이무렵에는 제비가 매우 많이 찾아왔어요. 우리 집 대문 바로 앞에도 흰민들레가 씩씩하게 뿌리를 내려서 하얀 꽃을 피우고 동그랗게 고운 씨앗을 맺었습니다.
마을 어디에나 흔하던 흰민들레는 차츰 줄어듭니다. 마을 어느 집이나 농약을 많이 쓰기도 하고, 논둑이나 길가를 차츰 시멘트로 덮으면서 이제는 웬만해서는 흰민들레를 구경하지 못합니다. 이러면서 제비까지 해마다 매우 크게 줄어들어요. 제비가 흰민들레를 보려고 이 나라를 찾아오지는 않을 테지만(그러나 우리가 모를 뿐, 제비가 꽃을 보려고 찾아올 수도 있겠지요), 이 땅을 오래도록 지켜 온 작은 숨결이 사라지는 흐름하고 제비가 줄어드는 흐름하고 맞물린다고 느껴요.
수많은 들풀이나 들꽃이 사라지듯이 흰민들레도 삶터를 지키기는 만만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수수하게 흔하던 목숨은 아주 조그마한 삽질에도 쉬 힘을 잃거든요. 찻길을 낸다며, 아파트를 세운다며, 공장이나 골프장을 지어야 한다며, 큰 발전소하고 송전탑이 들어서야 한다며, 여기에 관광지를 꾸려야 한다며, 작고 수수한 목숨은 하루아침에 밀려서 사라지기 일쑤입니다.
우리 식구가 건사할 수 있는 땅은 아직 넓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식구가 건사하는 보금자리와 뒤꼍하고 도서관학교에서 피고 지는 흰민들레는 우리 손으로 돌볼 수 있습니다. 해마다 씨앗을 받아 우리 집 마당하고 뒤꼍에 새로 심거나 씨앗을 날립니다. 우리 도서관학교에서도 곳곳에 흰민들레씨를 심습니다.
이 흰민들레는 꽃받침이 꽃을 감싸는 노란민들레와 함께 무척 오래된 이 나라 들풀·들꽃 가운데 하나라고 합니다. 우리 집 뒤꼍에는 오랜 노란민들레가 한 포기 함께 있습니다. 이 오랜 노란민들레를 퍼뜨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아직 여러 포기로 퍼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해마다 어김없이 피어나 노란 꽃송이를 베풀어요. 해마다 봄에 물끄러미 바라보고, 봄이 저물 무렵 고맙다고 절을 합니다. 가을볕에 따사로울 적에 다시금 꽃을 피우는 이 민들레를 마주하면서, 이 따순 고장에서는 한 해에 두 차례씩 찾아오니 참으로 좋아라 하고 노래를 합니다.
오랜 들풀·들꽃이기에 흰민들레하고 노란민들레를 가꿀 마음이지 않습니다. ‘므은들레’라는 옛이름처럼 온 들에 흐드러지던 민들레가 우리 보금자리에 흐드러질 수 있기를 비는 마음입니다. 이른바 보릿고개라 할 만한 봄철에 맛난 잎을 내어주면서 고운 꽃을 피우는 민들레가 새롭게 가득한 민들레밭을 한켠에 일구고 싶은 마음입니다.
곰곰이 보면 민들레는 다른 어느 풀꽃보다 ‘아이 손을 타면서 씨앗을 퍼뜨립’니다. 어느 풀꽃도 민들레처럼 아이들이 곳곳에 흩뿌려 주지 않습니다. 민들레뿐 아니라 박주가리도 솜털을 매단 씨앗이라 바람을 타고 잘 날아가요. 그런데 민들레씨는 아이들이 냉큼 알아보고 냉큼 꺾어서 냉큼 후후 불어서 날려 주지요. 이곳에도 날려 주고 저곳에도 날려 주어요. 개미가 제비꽃씨를 물어서 곳곳에 심어 주듯이, 아이들은 민들레씨를 후후 날려서 온 들이며 숲에 푸른 숨결이 깃들도록 북돋웁니다.
잎이 오를 적에는 나물로 삼고, 꽃이 돋을 적에는 꽃으로 반가우면서 향긋하다가는, 씨앗을 맺을 적에는 더없이 즐거운 놀잇감이 되어 주는 풀꽃이 민들레이지 싶어요. 흰민들레 꽃밭이 한쪽에 퍼지면, 다른 한쪽은 노란민들레 꽃밭이 퍼지기를 빌면서 밭자락을 돌봅니다. 민들레가 자라는 집, 이른바 ‘민들레집’이 되는 일도 재미난 살림짓기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2017.4.1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