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을 쓰다
내가 다른 사람들 글을 읽다가 ‘글손질’을 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쓴 글을 그이더러 이렇게 고쳐 보시오’ 하고 알려주는 뜻이 아니다. 언제나 내가 나 스스로 배우려고 그렇게 ‘글쓰기 갈고닦기’를 할 뿐이다. 나는 내가 쓰는 말씨만 쓸 뿐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을 읽다가 ‘그러한 마음을 나타내는 그러한 말씨를 내가 써야만 한다면, 나로서는 어떠한 말씨로 내 마음을 풀어내야 할까’ 하고 스스로 묻고 스스로 실마리를 찾아본다. 다시 말하자면, 내가 다른 사람들 글이나 책에 나온 글월을 뽑아서 이리 손질해 보거나 저리 고쳐 보는 일은 오직 ‘내가 그 같은 글월을 써야 하는 자리에 설 적에 내 나름대로 내 말씨를 새롭게 세우려고 하는 뜻’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른바 ‘문장 훈련’인 셈이지만, 달리 보면 ‘생각 훈련’이고, ‘생각을 더 슬기롭게 가다듬어 말 한 마디에 사랑을 담고 싶은 뜻’이다. 오늘 새벽에는 ‘쪽’이라는 낱말을 놓고 한참 생각을 기울인다. 한 시간 즈음 생각을 기울인 끝에 ‘쪽’을 놓고서 숨겨진 이야기를 내 나름대로 오늘로서는 모두 풀어낸다. 다음에 또 여러 수수께끼가 나올 수 있을 텐데, 오늘 내딛는 이 한 걸음이 즐겁다. 쪽을 못 쓰며 살고 싶지 않아, 쪽을 쓰면서 산다. 2017.4.9.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