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안 가고 책만 읽어도 됩니다
― 대학 졸업장과 책읽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학 안 가고’ 책읽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학 안 가고’ 그림그리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학 안 가고’ 춤추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학 안 가고’ 노래하기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대학교 ‘졸업장’을 따야 하지 않아요. 졸업장을 거머쥐고는 이 종잇조각으로 돈을 더 잘 버는 자리를 찾아야 하지 않아요. 돈을 잘 버는 자리를 찾으려고 하면, 그만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를 놓치고 말아요.

  흔히들 ‘대학교도 경험’이요, 대학교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대학교에서 맺은 만남으로 오래도록 좋은 길을 열 수 있다고도 합니다. 틀리지 않은 말이에요. 그러나 이는 ‘졸업장을 거머쥐어 돈을 잘 버는 일자리를 얻자’고 하는 마음하고 이어져요.

  생각해 봐요. 좋은 경험은 대학교에만 있을까요? 대학교 바깥에는 좋은 경험이 없을까요? 사람은 대학교에서만 만날 수 있을까요? 대학교에서 맺은 만남, 이른바 ‘학연’이라고 하는 줄을 붙잡아야 ‘성공’을 할까요?

  대학 교육에 들이는 돈하고 시간하고 품을 헤아려 보면 좋겠어요. 그 돈하고 시간학고 품을 ‘남들하고 똑같이’ 학과수업에 과제에 선후배 어울리기에 영어 점수에 들이지 말고, 네 해 동안 세계여행을 누려 봐요. ‘졸업장 아닌 세계여행 경험’을 쌓아 봐요. 굳이 대학교 틀에 얽매여 ‘시험점수(토익·토플)를 따려는 영어 공부’는 내려놓고서, ‘온몸으로 세계 곳곳에서 부딪히며 영어를 배워서 써’ 봐요.

  대학교에 들어가서, 이른바 ‘미대(미술 대학)’에서 그림을 배워도 나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다르게 해 볼 수 있어요. 대학등록금이나 교수 지도에 이끌리지 말고, 스스소 붓 하나 쥐고서 네 해 동안 온누리를 골골샅샅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천천히 그림을 그려 봐요. 구태여 세계여행을 하며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골골샅샅 누벼 봐요. 자전거를 타든 두 다리로 걷든, 네 해 동안 붓하고 종이하고 물감만 챙겨서 온 나라 구석구석 다니며 그림을 그려 봐요.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을 적에도 이와 같아요. 꼭 대학교 문예창작학과나 사진학과에 들어가야 하지 않아요. 이름난 교수나 스승을 찾지 말고, 스스로 모두 온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워 봐요. 네 해라는 시간을 들여서 이 땅을 교수로 삼고, 여러 마을을 스승으로 삼아 봐요. 숲과 들과 바다와 골짜기를 교수로 삼고, 바람과 구름과 나무와 꽃을 스승으로 삼아 봐요.

  대학교 다닐 네 해뿐 아니라 고등학교를 다니는 세 해, 여기에 중학교를 다니는 세 해도 생각해 봐요. 모두 열 해라는 나날인데요, 이 나라 중·고등학교 여섯 해는 ‘대학바라기 입시지옥’이에요. 아이들을 여섯 해 동안 입시지옥에 몰아넣지 말고, 또 푸름이 스스로 입시지옥에 뛰어들지 말고, 저마다 씩씩하고 당차게 ‘학교 밖’으로 나와 봐요. 3 + 3 + 4, 이렇게 열 해 동안 시골에서 흙을 만지면서 아침에는 땅을 일구고, 낮에는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고, 저녁에는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해 봐요. 열네 살 푸름이가 열 해 동안 아침 낮 저녁을 모두 손수 짓고 배우며 부대끼는 살림으로 보낼 수 있다면, 이때에 우리는 얼마나 새로우면서 아름다울 만한가 하고 생각해 봐요.

  대학 교육 네 해에 들일 돈으로 책을 사서 읽는다면, 거의 사오천만 원에 이르는 책을 사서 읽을 수 있어요. 엄청나답니다. 사오천만 원에 이르는 돈을 스스로 책방에 가서 책을 골라서 읽고, 이렇게 읽어서 모은 책으로는 저마다 마을도서관을 열 수 있지요. 네 해에 걸쳐 사오천만 원에 이르는 돈으로 책을 읽어서 모아 두었으면, 앞으로 이 책으로 헌책방이나 마을책방을 열 수 있기도 해요. 마을도서관도 열 수 있지만, 스물네 살 젊은이 나름대로 새롭고 재미나게 멋진 책방을 열 만해요.

  어느 모로 본다면 아직 이 나라에 마땅한 ‘교육개혁 정책’이 없으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고달프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굳이 정치꾼이나 공무원이 엄청나거나 대단하거나 놀라운 정책을 내놓아 주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될 만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스스로 다 함께 ‘대학바라기를 그만둔다’면 하루아침에 대학입시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얼거리도 달라질 만하지 싶어요. 우리 스스로 ‘굳이 대학교에 안 가도 되지 않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면, 나아가 씩씩하게 ‘대학입시를 안 치른다’면, 또 대학입시를 안 치를 생각이 단단할 적에는 아예 중·고등학교조차 굳이 안 다닐 만하다고 깨달을 수 있다면, 바보스러운 교과서나 학교폭력 같은 말썽거리도 하루아침에 풀릴 만하지 싶어요.

  너무 빠듯하고 메마르게 치고박으면서 밟고 일어서서 1등이 되려는 다툼판이 되다 보니 대학교도 중·고등학교도, 게다가 초등학교마저도 뒤틀리지 싶어요. 이제는 우리 스스로 생각을 바꾸어서 하나씩 새롭게 해 보면 좋겠어요. 이래저래 여러 가지 길을 우리 나름대로 내 볼 수 있어요.

ㄱ. 대학 교육에 드는 돈으로 책을 사서 읽는다. 이렇게 네 해 동안 책을 사서 읽어서 모인 책으로 마을책방이나 마을도서관을 열 수 있다. 저절로 일자리를 스스로 지을 뿐 아니라, 마을살림을 북돋우는 멋진 길이 됩니다.

ㄴ. 대학 교육에 들일 돈이나 시간이나 품으로 시골에서 흙을 짓고 살림을 배우며 산다. 저절로 자급자족을 이루고, 밥이며 옷을 손수 지으니 대량생산하고 맞물리는 소비를 안 할 수 있다. 생태나 유기농 같은 이름이 없이도 아름답게 잘 살 수 있다.

ㄷ. 대학 교육에 바칠 돈이나 시간으로 세계여행을 한다. 네 해 동안 맨몸으로 세계 여러 나라를 두루 돌면서 새로운 말을 익힐 뿐 아니라, 새로운 살림(문화)을 겪어내면서 눈이 트이고 말과 마음 모두 활짝 여는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난다. 당찬 마음과 몸이 되어 우리 앞길을 스스로 뚫을 수 있어요.

ㄹ. 대학교에서 배우지 않고, 스스로 나라 구석구석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으면서 스스로 깊고 너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러는 동안 저절로 작품이 예술로 태어날 테니, 교수 연줄이나 학벌이 없어도 얼마든지 세계에 기쁨을 나누어 주는 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남들이 다 한다고 우리까지 해야 하지 않아요. 남들이 하건 말건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하면 즐거울까를 생각해야지 싶어요. 남들 하는 대로 좇는다면, 입시지옥에서 아이들이 살아남도록 내몬다면, 또 우리 스스로 입시지옥이나 취업지옥에서 ‘혼자 살아남기’를 하려고 악을 쓴다면, 사회는 앞으로도 늘 그대로이리라 느껴요.

  졸업장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껍데기를 안 쓸 수 있다면, 삶을 스스로 짓고 살림을 손수 가꾸는 길로 갈 수 있다면, 우리는 다 함께 슬기로이 어깨동무할 만하다고 생각해요. 2017.4.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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