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 이름 해설
공상호 지음 / 자연과생태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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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책 읽기 120



‘각시꽃게거미’를 본 적 있니?

― 거미 이름 해설

 공상호 글·사진

 자연과생태 펴냄, 2016.12.26. 18000원



  2016년이 저물고 2017년이 피어날 즈음 《거미 이름 해설》(자연과생태 펴냄)이라는 도톰한 책이 한 권 나왔습니다. 이 책이 나왔다는 얘기는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가 없었기에 알 수 없습니다. 이쁘장한 《거미 이름 해설》이라는 도감을 선보인 자연과생태 출판사는 어떤 언론사에도 보도자료를 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출판사에서는 홍보하는 책을 아무 곳에도 안 보내고, 보도자료조차 안 쓴다고 해요. 자연과생태 출판사에서 내는 책을 기다리는 분들은 으레 인터넷서점에서 출판사 이름을 찾기창에 넣어 틈틈이 살펴본다고 합니다.



[1. 복풀거미] 조복성 선생에게 헌정한 것에서 유래했다.

[2. 동국풀거미] 논문 저자(김주필)가 근무했던 학교명(동국대학교)에서 유래했다.

[58. 부석왕거미] 1972년 지리산 거미상 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종이다. 국명은 지리산과 가까운 부석마을(전북 남원시 송동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 거미 799종을 놓고서 이 거미한테 붙은 이름을 하나하나 살피고 따져서 묶은 《거미 이름 해설》은 한국에서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도감이라고 느낍니다. 이른바 “거미 도감”은 제법 있을 테지요. 그런데 “거미 이름 도감”은 얼마나 있을까요? 이름을 놓고서 따로 도감을 엮을 생각을 하는 나라나 출판사는 몇이나 있을까요?


  조복성 님을 기리는 뜻으로 붙었다는 ‘복풀거미’ 이름을 앞에 두고 한참 생각에 젖어 봅니다. 조복성 님은 일제강점기이며 해방 뒤이며 한국에서 수많은 풀벌레랑 딱정벌레랑 나비랑 …… 알뜰히 살피고 살뜰히 헤아리는 길을 걷고 닦고 보듬은 분입니다. 한국 거미 칠백아흔아흡 가지 가운데 처음 자리에 놓인 거미한테 ‘복풀거미’라는 이름을 붙인 일은 참 아름답구나 하고 느낍니다. ‘복풀거미’란, 파브르를 기려 ‘파브르거미(이러한 거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습니다)’라는 이름을 붙인 일이라고 할 만해요.



[67. 방울왕거미] (학명) 양쪽 배어깨와 그 사이에 흰색 반점이 3개인 데서 유래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무늬나 색상 변이각 많아 모든 개체에서 흰색 무늬가 3개인 것은 아니다 (국명) 흰색 무늬를 ‘물방울무늬’로 해석했거나 크기가 작은 거미의 이름에 붙는 ‘방울’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거미를 살피는 한국 학자는 한국 거미한테 어떤 이름을 붙였을까요? 먼 옛날부터 붙인 이름이 있는 거미도 있으나, 딱히 이름이 안 붙은 거미가 훨씬 많습니다. 게다가 새로 알아보는 거미도 많아요.


  거미 한살이라든지, 거미 짝짓기라든지, 거미 먹이라든지, 이모저모 살피는 일은 곤충생태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거미 이름 짓기”는? 거미를 살피는 곤충생태학자는 생태학만 잘 살펴서는 안 될 노릇이지 싶어요. 한국말도 잘 알아야 하는구나 싶어요. 아니, 잘 아는 테두리를 넘어서 한국말을 사랑하고 한국말을 슬기롭게 다룰 줄 알아야지 싶어요. 이러지 않고서야 칠백아흔아홉 가지에 이르는 온갖 거미한테 다 다른 이름을 붙여 줄 수 없을 테니까요.



[104. 어리호랑거미] 학명과 마찬가지로 호랑거미를 닮은 데서 유래했다. ‘어리’는 비슷하다는 의미의 접두사이다.

[219. 고려참매거미] 최초 채집지인 한국에서 유래했다.

[223. 포도참매거미] 채집 당시 서식처였던 포도밭에서 유래했다.



  가만히 보면 “거미 이름”만 제대로 잘 붙여야 하지 않습니다. 노린재 이름도 제대로 붙여야 합니다. 딱정벌레나 나비 이름도 제대로 붙여야 해요. 풀하고 나무한테도 이름을 제대로 붙여야지요. 물고기나 바닷말이나 버섯 이름도 제대로 붙여야 합니다.


  수학자나 과학자도 이와 매한가지예요. 서양에서 쓰는 영어나 라틴어를 고스란히 가져다 쓸 수 없기 마련입니다. 일본에서 일본 한자말로 옮긴 이름을 함부로 들여올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거미 학자를 비롯한 숱한 생태학자나 생물학자뿐 아니라 수학자나 과학자도 한국말을 찬찬히 잘 배워야 하는구나 하고 새삼스레 돌아봅니다. 어느 학문에서든 이 땅에서는 한국말부터 슬기롭게 살피고 알맞게 가다듬어 사랑스레 쓸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지 싶어요.



[362. 긴코뿔애접시거미] 수컷의 머리끝이 기둥 모양으로 길게 돌출해 코뿔소처럼 보이는 데서 유래했다.

[535. 번개닷거미] 톱니무늬와 번개무늬는 용어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뜻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국명 ‘번개닷거미’의 어원은 동면(dorsalview) 전체에 길이 방향으로 뻗은 폭넓은 줄무늬의 염통무늬 뒤 양쪽 가장자리에 나타난 번개무늬에서 나왔다.



  《거미 이름 해설》이라는 책을 천천히 읽습니다. 두 달에 걸쳐서 조금씩 읽습니다. 아무래도 혀나 귀나 눈에 낯선 이름이 많습니다. 이름을 읽어 보아도 두 눈으로 만날 수 있는 거미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습니다. 돋보기로 들여다보아야 비로소 알아볼 만한 거미라면 이 거미마다 어떻게 이름을 가릴 만한지 퍽 힘들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해요.



[593. 까치깡충거미] 일본명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한다. 일본명에는 까마귀가 포함되어 있고, 일본에서는 까마귀를 길조로 여긴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까치를 길조로 여기므로 까치깡충거미로 명명한 것으로 추측한다.

[619. 이슬거미] 역시 이슬거미라는 뜻의 일본명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학명과 마찬가지로 싱그러운 초록빛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시골에 있는 우리 집에는 거미가 여러모로 많습니다. 집 안에서 함께 사는 거미도 여러 가지 있습니다. 집 밖에서 함께 지내는 거미는 수없이 많습니다. 저는 우리 집 거미를 보면서 이름을 몇 가지 몰라 아이들한테 그저 “거미야.”라든지 “거미 있구나.”라고밖에 말을 못 해요. 그렇다고 《거미 이름 해설》을 읽었기 때문에 우리 집 거미를 더 잘 알아차리지는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는 있어요. 수많은 거미 이름을 하나하나 읽으면서 이 거미가 “그냥 거미”는 아닌 줄 느낍니다. 우리 집을 둘러싸고 자라는 풀이 “그냥 풀”이 아니라 봄까지꽃, 코딱지나물, 봄맞이꽃, 꽃다지, 소리쟁이, 주홍서나물, 냉이, 노랑괴불주머니, 제비꽃, 고들빼기, 살갈퀴, 갈퀴덩굴, 환삼덩굴, 하늘타리, 억새, 흰줄갈풀, 곰밤부리, 솔, 민들레, 지칭개, 방동사니, 질경이 …… 같은 이름이 하나하나 있듯이, 거미한테도 다 다른 이름이 있는 줄 이제서야 되새깁니다.



[746. 각시꽃게거미] ‘꽃’에 몸을 숨겨 사냥하는 ‘작은 거미’인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각시’는 크기가 작은 거미의 이름에 종종 붙는다.

[765. 살받이게거미] 살받이는 과녁 한 가운데 화살이 꽂히는 곳을 말한다. 국명은 활짝 핀 꽃 가운데 앉아 먹이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명은 배의 생김새가 삼각형인 데서, 일본명은 노란색 팥꽃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한다.



  풀마다 다른 이름을 놓고 하나하나 새로 익히기까지 여러 해 걸렸어요. 거미마다 다른 이름인 줄 이제 겨우 눈을 떴으니, 《거미 이름 해설》 한 권을 읽었더라도 모든 거미를 제대로 알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이제부터 거미를 마주할 적에 더 찬찬히 들여다보고 더 오래오래 살피면서 거미한테 말을 건네려 해요. 작은 거미를 반기는 마음이 되고, 작은 숨결을 아끼는 마음이 되려고 합니다. 비록 오늘은 아직 이름을 잘 모르더라도, 앞으로는 우리 집 거미한테 이쁘장한 이름을 하나하나 챙겨서 부를 수 있도록 아이들하고 새롭게 배우려고 해요.


  우리 둘레를 따스히 돌아보도록 북돋우는 작은 도감 하나가 반갑습니다. 우리 보금자리를 새롭게 되새기도록 이끄는 작은 생태도감 하나가 사랑스럽습니다. 우리 삶터를 아이들하고 기쁘게 짓는 길에 길동무가 되어 주는 숲책 하나가 고맙습니다. 2017.3.15.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숲책 읽기)


* 이 글에 붙인 사진은 자연과생태 출판사에 연락을 해서 허락을 받고 얻은 사진입니다.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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