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노래, 군내버스에서 읽은 책 2017.2.21.


우체국 마실을 간다. 지난주에 서울마실을 하며 만난 분한테 책을 부치기로 한다. 예전에는 가방에 ‘선물할 책’을 짊어지고 다녔다. 만난 자리에서 선물로 책을 건네면 우표값이 안 들기에 낑낑거리면서 책을 짊어지고 다녔다. 이제는 굳이 책을 안 짊어지고 다닌다. 바깥마실을 하면서 이름쪽을 받고는 시골집으로 돌아와서 우표값을 치르면서 책을 부친다. 읍내로 나가는 길에 만화책 《아르슬란 전기》 여섯째 권을 읽는다. 여섯째 권에 이른 《아르슬란 전기》는 싸우는 이야기가 좀 줄고, 서로 말을 섞는 이야기가 는다. 어느덧 여섯째 권에 이르며 좀 차분해졌다고 할 만하다. 나는 원작소설을 안 읽었기에 소설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흐르는지 모르겠는데, 만화에서는 알맞게 간추려서 생각날개를 한껏 펼치는구나 싶다. 여섯째 권에서는 ‘핏줄 이어받기’를 놓고서 실랑이가 벌어진다. ‘정통’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셈인데, 정통 핏줄이라서 훌륭하지 않고, 정통 아닌 핏줄이라서 안 훌륭할 까닭이 없다. 이 대목을 꿰뚫는다면 ‘노예 제도’를 가뿐히 털어낼 만하겠지. 아이들하고 놀이터에 들러서 그네를 탄 뒤에 집으로 돌아오며 《하이디》를 조금 훑는다. 잠자리맡에서 작은아이한테 읽어 주기도 하고, 낮에도 살짝 읽어 주기도 한다. 만화영화로 먼저 보았기에 《하이디》를 읽으며 자꾸 만화영화를 떠올린다. 만화영화는 원작소설을 꽤 잘 살렸구나 하고 느낀다. 만화영화를 보았다면 이 원작소설 《하이디》를 함께 읽으면서, 요한나 슈피리라는 분이 알프스 멧자락 살림을 바탕으로 하면서 들려주려는 너른 숨결을 한결 깊이 헤아릴 만하리라 본다. 오직 글로만 읽어도 《하이디》는 드넓은 하늘과 들과 구름과 바람과 웃음을 마음에 담도록 북돋운다.


(숲노래/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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