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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고양이 쿠로 9 - 완결
스기사쿠 지음 / 시공사(만화)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만화책 즐겨읽기 676
마을고양이 조용히 숨을 거두다
― 묘한 고양이 쿠로 9
스기사쿠 글·그림
최윤희 옮김
시공사 펴냄, 2006.5.30. 5000원
스기사쿠 님 만화책 《묘한 고양이 쿠로》(시공사,2006)는 아홉째 권으로 마무리를 짓습니다. 길고양이라고 할 수 있고 마을고양이라고 할 수 있는 까망 고양이 ‘쿠로’가 이야기를 이끄는데, 아홉째 권에서 쿠로가 숨을 거두어요. 이러면서 저절로 이 만화책은 이야기를 끝맺지요.
할아버지는 내가 없는 동안 차가워져 있었고, 할아버지가 수염을 보낸 암컷들이 몰려들어 왔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이 가까운 걸 알아차리고 마지막 이별의 인사로서 수염을 배달시킨 건지도 모르겠다. (14쪽)
난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필사적으로 기척을 감췄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배운 사냥법을 처음으로 다른 고양이에게 가르쳐 줬다. 드디어 죽음의 슬픔에서 빠져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20쪽)
아홉째 권 첫머리를 보면 쿠로가 아닌 다른 마을고양이 한 마리가 숨을 거두는 이야기가 흐릅니다. 어쩌면 이 대목에서 ‘할아버지 고양이’뿐 아니라 ‘까망 고양이 쿠로’로 숨을 거둔다는 빛을 넌지시 보여주는구나 싶기도 해요. 때로는 나이가 들어서 죽고, 때로는 자동차에 치여서 죽어요. 때로는 쥐약을 먹고서 죽는 고양이가 있고, 시골에서는 농약이나 농약에 물든 것을 먹고서 죽는 고양이가 있어요. 때로는 어떤 병에 걸려서 죽는 고양이가 있고요.
아무래도 그 인간은 구멍을 막고 있는 모양이었다. 짝퉁 개는 거처 안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나올 수 없다는 걸 알자 짝퉁 개는 우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적이라고 해도 우리들은 못 본 척할 수가 없었다. (36쪽)
하이이로와 츠루마루의 보금자리엔 쇠그물이 쳐져서 새로 보금자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뒷산에서는 나무나 풀이 차례차례로 뒤집히고 있어서, 아까의 짝퉁 개도 자기 둥지에서 쫓겨난 걸지도 모른다. 그 불똥이 하이이로 일행에게 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38쪽)
마을고양이 한 마리한테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차분히 보여주는 《묘한 고양이 쿠로》라고 느낍니다. 고양이 한 마리이기에 남다른 삶이나 죽음이 아니요, 사람도 누구나 엇비슷하게 삶과 죽음을 맞아들인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도 할 만해요.
끝없는 개발로 숲짐승이 숲에서 삶터를 잃듯이, 끝없는 개발로 도시에서도 삶터를 빼앗기거나 쫓겨나는 일이 있어요. 사랑스럽거나 살갑게 곁에 있던 이가 죽음길로 떠나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처럼 고양이 사이에서도 동무 고양이 죽음을 지켜보면서 눈물에 젖을 수 있어요. 그리고 이웃이 죽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이웃 고양이가 죽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 고양이도 있어요.
칭코의 상처는 꽤나 심해서 마사루 형님도 걱정이 되는 듯 따라왔다. 마사루 형님이 집에 들어오는 건 오랜만이었고, 칭코는 기분이 나쁜 모양인지 마사루 형님을 무시했지만 꼬리는 기쁜 것 같았다. (65∼66쪽)
자신의 살을 희생하여 상대의 뼈를 부러뜨렸다. 마사루 형님은 나에게 싸우는 법을 가르쳐 준 것 같았다. 난 더 이상 마사루 형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으로 이 동네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4쪽)
살림을 짓는 숨결이 어버이 손을 거쳐 아이한테 이어집니다. 삶을 일구는 손길이 어른 손을 타고 아이한테 흐릅니다. 우리는 아이한테 아름다운 사회나 삶이나 보금자리를 물려줄 수 있어요. 이와 달리 아이한테 바보스러운 사회나 삶이나 보금자리를 건넬 수 있어요.
우리가 사람으로서 갈 길은 어디일까요? 우리가 사람으로서 바라볼 곳은 어디일까요? 까만 고양이는 새로운 곳으로 떠납니다. 몸은 이곳에 내려놓고 마음은 저 먼 곳으로 조용히 날아갑니다. 2017.2.8.물.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