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전우익 지음 / 현암사 / 199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 책이름 :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 글쓴이 : 전우익
- 펴낸곳 : 현암사(1993.5.15)


 1993년에 나온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를 1999년에 사서 읽었습니다. 그다지 길지 않은 책인데, 그때 끝까지 다 읽지는 못하고 3/4쯤 읽고 덮어 놓았습니다. 그러다가 책꽂이 어디엔가 꽂아 놓고는 잊고 지냈는데, 지난주쯤 책꽂이를 크게 한 번 추스르면서 이 책을 다시 만납니다.


.. 농민이 제대로 농민 구실을 하자면 땅과 스스로와 세상을 함께 갈고 가꾸어야겠다고 느낍니다. 곡식이 제대로 자라는 데 질소, 인산, 칼리의 세 요소가 필요하듯 농민이 제대로 된 온전한 농민이 되자면 땅도 갈고 자기 스스로도 갈고 세상도 갈아야지, 줄기 자라는 질소만 듬뿍 주고 뿌리 튼튼히 뻗는 인산과 열매 충실히 맺는 칼리를 주지 않으면 짚농사만 짜드러 짓지 벼는 쭉정이만 달리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농사 풍년이 값 폭락을 가져온 일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  〈45쪽〉


 일곱 해 만에 다시 읽습니다. ‘그때 읽다가 덮어둔 일이 차라리 잘되었나’ 하는 생각도 얼핏 들지만, ‘그때 끝까지 마저 읽은 뒤, 이번에 새롭게 다시 읽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다 읽고 한 번 더 읽는다면, 두 번 읽는 느낌을 추스르고, 미처 못 읽고 다시 읽는다면, 이런 느낌을 다독이면 되겠지요.


.. 자연과 어울려 자연스럽게 살아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연을 원수처럼 정복의 대상으로 여겨 자연의 리듬에 거슬리게 사는 게 잘사는 것인 양 우쭐대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연의 리듬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역사의 흐름도 막으려 들고 민심도 깔아뭉개려 들어요 ..  〈52쪽〉


 요즘 감자 캐는 철입니다. 벌써 다 거두어들인 곳도 있고, 이제 거두어들이는 곳도 있습니다. 지난날과 견주면 무척 빨리 거두는 셈이라고 하더군요. 아마 모두들 시장에 내다 팔 생각을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빨리 거두려고 애쓰는구나 싶습니다. 모내기도 그렇고 가을걷이도 그렇습니다. 해가 갈수록 심는 날이 앞당겨지고 거두는 날도 앞당겨집니다. 날씨가 해마다 더워지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일찍 거두어 파는 쪽’이 더 돈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쌀값이 빚이나 갚을 수 있게 해야지 거기 무슨 딴 수작이 있겠어요? 구도하시는 스님들도 공양을 들여야 염불도 참선도 하시는데, 밥 먹고 사는 사람이 쌀을 업신여기는 건 백성을 얕잡아보는 데서 나옵니다. 농민들의 추상 같은 벼락만이 빚을 떨쳐 버릴 수 있고, 민족의 추상 같은 뇌성벽력 없이는 분단의 장벽은 허물어지지 못할 것 같아요 ..  〈22쪽〉


 빚을 갚기는커녕 빚이 늘어나는 농사입니다. 그러면 도시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지요. ‘빚만 지는 농사, 그냥 집어치우고 땅 팔아 도시로 와서 장사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제 땅을 가진 농사꾼이 얼마나 된다고 그럴까요. 더욱이 평생 농사만 짓던 어리숙한 사람이 장사를 해서 ‘밑천 안 날리면 그나마 잘한’ 셈임을 헤아려야 합니다. 차라리 조금 빚을 지더라도 내 집이 있는 시골이 낫고, 먹을거리는 제 손으로 키울 수 있는 농사가 낫지요.

 

 농사도 안 짓는 사람들은 배불리 먹고살 뿐 아니라 돈도 조금씩 모으는 요즘 세상입니다. 그러면서 유기농이니 뭐니를 찾습니다. 한미FTA니 지난날 우루과이라운드니 뭐니를 떠나 우리 시골이 무너지는 동안 한 번도 제대로 거들떠보지 않아 온 우리들입니다. 시골사람도 시골을 떠나 무턱대고 도시로만 몰리려 했지만, 도시사람도 도시 삶이든 시골 삶이든 있는 그대로 헤아리려 하지 않고 값싸고 가벼운 놀음놀이에 빠지고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습니다.

 

 책이름 그대로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입니다. 농사꾼만 잘살아도 안 되는 세상이지만(그러나 이런 세상이 언제 한 번이라도 있었을까요?), 농사꾼 아닌 사람만 잘살아도 안 되는 세상입니다. 평생 고생한 사람이 마지막 삶이나마 보람을 얻어야 하나, 누구나 다 보람을 나누어 얻고 즐겁게 어우러질 수 있어야 좋은 세상이라고 믿습니다.

 

 전우익 님은 땅을 부치고, 나무를 심고, 씨앗을 갈무리하고, 자리를 치면서 자기 삶을 가꾸었고 세상을 읽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을 어떻게 가꾸고 있나요? 우리 세상은 어떻게 읽고 있나요? (4339.7.4.불.ㅎㄲㅅ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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