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일터·쉼터·모임터가 되는 이곳
[시골 살림 도감] 마당
저희는 도시에서 사는 동안 늘 ‘숲’을 그렸어요. 시골 아닌 도시에 살 적에 숲을 그렸다니 참 바보스러울 수 있어요. 그렇지만 숲은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도 짙푸르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시골사람도 도시사람도 숲내음을 마시면서 싱그럽고 즐거웁고 튼튼하게 살림을 꾸릴 수 있어야 아름다운 나라가 되리라 여겼어요.
시골에 뿌리를 내리려 하면서 ‘그냥 시골’이 아닌 ‘숲을 이루는 보금자리로 즐거운 시골’을 꿈꾸었는데요, 이다음으로 그린 한 가지는 ‘마당’이에요. 우리 집이 숲이 되고, 우리 집에 너른 마당이 있으면 참으로 즐겁고 아름다우리라 생각했어요.
눈을 감고 가만히 그려요. 누구나 제 보금자리가 숲이 되어 숲바람이 불고, 너른 마당에서 어른은 일하고 아이는 놀면서 살림을 짓는 모습을 그려요. 우리가 어디에서나 이처럼 삶을 지을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멋진 하루가 되겠지요.
우리 집 나무는 고이 자랍니다. 고이 자라며 우거지는 나무는 여름에 그늘을 시원하게 베풀고, 겨울에 찬바람을 막아 주어요. 마당에서 나무를 누리면서 햇빛이 움직이는 결을 살피면, 여름해와 겨울해가 어떻게 다른가를 새삼스레 느낄 수 있어요. 달력에 적힌 날짜나 절기가 아닌, 몸으로 익히는 하루가 돼요.
해가 뜨고 지는 자리를 헤아리면서 마당살림을 가꿉니다. 그늘하고 볕을 알맞게 다스리면서 늘 새로운 살림을 북돋아요. 저희 집 마당은 마을에서 그리 안 넓지만 우리 깜냥껏 이 마당을 여러모로 씁니다. 아이한테는 놀이터요, 어른한테는 일터이고, 다 같이 쉼터이면서, 손님이 들면 모임터예요. 밤에는 봄가을 여름겨울 언제나 별을 보는 ‘별터’가 되고, 철마다 향긋한 ‘꽃터’를 이루며, 맛깔스러운 ‘나물터’로 거듭나요.
놀이터인 앞마당을 아이들은 맨몸으로 빙글빙글 달립니다. 아버지더러 손을 달라 하면서 저희를 꽉 잡고 뱅글놀이를 하자고 부릅니다. 목말을 태워 달라 하면서 아이 손에 안 닿는 높은 나뭇가지를 만지고 싶습니다. 동백꽃이 피면 높다란 곳에 핀 동백꽃을 목말을 타고 보려 해요.
아이들이 마당에 자리를 깔고 소꿉놀이를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돕니다. 작대기를 들고 휘휘 하늘을 젓습니다. 공을 차거나 던집니다. 뒤꼍에서 흙을 퍼서 마당으로 옮긴 뒤 흙놀이를 합니다.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바람개비랑 달려요. 이불을 널어 해바라기를 시키면 이불 사이로 살며시 숨는 이불놀이를 해요.
마당이란 그야말로 마음껏 뛰거나 달리거나 춤추거나 노래할 수 있는 자리입니다.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에서는 아이나 어른 모두 마음껏 못 걸어요.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다녀야지요. 길에서는 자동차나 오토바이를 살피느라 어지러워요. 아이들이 이모나 할머니나 큰아버지를 보고 싶다 해서 도시로 마실을 가면 처음에는 버스도 타고 반가운 얼굴도 봐서 좋아해요. 이러다가 뛰지 말라고, 목소리도 낮추라 하면 아이들이 몹시 힘들어 해요. “얘들아, 여기는 우리 집 마당이 아니란다. 아랫집 사람 옆집 사람이 다들 싫어해.” 하고 타이르면 “노래도 못하고, 달리기도 못하는데, 얼른 집으로 돌아가자!” 하고 말해요.
그러고 보니 학교 운동장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목청껏 떠들며 노는 까닭을 알 만해요. ‘마당이 그립기’ 때문일 테지요. 좁은 도시에 갇히듯이 사니까, 그나마 학교 운동장에서 신나게 떠들면서 달리고 싶겠지요.
시골집 마당은 아무 걱정이나 근심이 없습니다. 그저 신나게 놀 수 있어요. 그예 느긋하게 일할 수 있어요. 모깃불을 태우고, 나무를 살며시 안으며 속삭여요. 밤에는 마당에 서서 별바라기를 해요. 어디 멀리 나가지 않아도 돼요. 마당에서 모두 다 누려요. 어느 모로 보면 우리는 ‘마당겨레’인지 모르겠어요.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