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 담그고 우유 한 잔



  무는 어제 썰어 놓았고, 아침 열 시 반부터 풀을 쑵니다. 찹쌀가루로만 풀을 쑬까 하다가 집에 쌀겨가 많아서 쌀겨를 같이 넣어서 풀을 쑵니다. 이동안 밥이랑 국을 해서 밥상을 차리고, 바지런히 주걱을 저으면서 틈틈이 마늘과 생강을 다듬고 양파랑 큰파를 썰고 능금도 두 알 씻어서 썹니다. 두 아이가 마늘빻기를 거든다고 하지만 잘 빻지 못해서 마저 콩콩콩 빻습니다. 쌀겨찹쌀풀이 어느 만큼 식었구나 싶을 무렵, 드디어 여러 양념을 한데 넣고서 천천히 섞습니다. 하루 동안 재운 소금물은 안 버리고 그대로 씁니다. 고춧가루는 빛깔만 내도록 넣습니다. 슬금슬금 섞고 나서 빛깔이 잘 도는구나 싶을 무렵 한 조각을 종지에 담습니다. 큰아이더러 먹어 보라 합니다. “안 매워. 맛있어.” 합니다. “너희가 먹을 수 있도록 안 맵게 했지.” 나도 한 조각을 먹어 봅니다. 잘 되었네요. 오늘 저녁부터 바로 먹을 수도 있으리라 느껴요. 더 삭이면 한결 맛있을 테고요. 이제 국자로 떠서 스텐통에 넷으로 나누어 담고, 작은 반찬통 두 군데에도 옮겨 담습니다. 이러고 나서 잔뜩 쌓인 설거지를 하고, 행주를 둘 복복 비벼 빨아서 마당에 넙니다. 오늘 하루만 네 식간 반 즈음 걸려서 깍두기를 마무리합니다. 어릴 적에 우리 어머니가 김치를 다 담그고 설거지까지 마치고서 “아! 이제 커피 한 잔 마셔야지!” 하시던 마음을 아주 살짝 알 듯합니다. 그렇지만 나는 커피를 안 마시니 우유를 한 잔 마십니다. 2016.12.31.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살림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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