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길 (도서관학교 일기 2016.11.1.)

 ― 전남 고흥군 도화면 동백마을, ‘도서관학교 숲노래 = 사진책도서관 + 한국말사전 배움터 + 숲놀이터’



  도서관학교 앞뒤에 자란 풀은 꽤 베었습니다. 지난 구월하고 시월 두 달에 걸쳐 거의 날마다 두 시간씩 낫을 쥐어 벤 끝에 이만 한 보람을 누립니다. 아이들은 어디로든 실컷 달릴 수 있고, 꽃삽을 쥐어 마음껏 파헤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나다니는 길은 파지 말라고 얘기했어요. 길까지 파면 비가 온 뒤 다니기에 나쁘거든요.


  지난 두 달 동안 풀을 베어 거님길로 바꾸어 놓은 자리를 따라 두 아이하고 천천히 거닐어 봅니다. 베어서 눕힌 풀이 잘 마르니, 우리가 밟을 적마다 토토톡 소리를 내는데, 풀벌레도 이때에 둘레에서 껑충껑충 뜁니다. 밤에는 꽤 쌀쌀한데 아직 풀벌레는 이 도서관학교 곳곳에서 살아갑니다.


  이제 도서관학교 앞문 자리부터 건물 앞쪽으로 들어서는 자리에 새길을 내 보려 합니다. 얼마든지 새길을 낼 만하다고 여기며 낫을 쥡니다. 새길을 내다가 쉬면서 건물 앞 이순신 동상 둘레 풀을 벱니다. 쉬려면 그냥 앉아서 쉴 노릇이지만, 나는 ‘쉬엄쉬엄 낫을 놀리는 몸짓’이 쉬는 셈이라고 여깁니다.


  건물 앞 운동장 자리에 한 줄로 풀을 베고서는 논둑에서 억새를 끊어서 눕혀 봅니다. 오늘 하루에 다 마칠 수 있겠네 싶으면서 오늘 다 마치지는 않습니다. 집으로 돌아가서 저녁을 지어야 하거든요. 기운을 풀베기에 다 쓰다가는 아이들을 굶깁니다. 낫을 갈아서 말리고, 다리도 쉬면서 주전부리를 아이들한테 줍니다. 용인에 계신 도서관 지킴이웃님이 멋진 호두과자랑 양갱을 보내 주셨어요. 아이들은 주전부리를 먹으면서 그림책을 들춥니다. 작은아이는 호두과자를 한 점씩 집어서 아버지 입에 넣어 줍니다. 나한테는 너희가 예쁜데, 너희한테는 아버지가 예쁘구나.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도서관일기)


(‘도서관학교 지킴이’ 되기 안내글 : http://blog.naver.com/hbooklove/220188525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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