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크트헨과 안톤 시공주니어 문고 3단계 29
에리히 캐스트너 글, 발터 트리어 그림, 이희재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린이책 읽는 삶 157



어른들은 참말로 뭘 아는지요?

― 핑크트헨과 안톤

 에리히 캐스트너 글

 발터 트리어 그림

 이희재 옮김

 시공주니어 펴냄, 1995.5.13. 6000원



  《핑크트헨과 안톤》(시공주니어,1995)은 독일에서 1930년에 처음 나온 어린이문학이라고 합니다. 1930년이라니, 어느 모로 본다면 퍽 까마득한 때입니다. 독일은 이무렵 전쟁 불구덩이 한복판에 있었다고 할 만하고, 한국은 일제강점기라는 수렁 한복판에 있었다고 할 만해요. 그무렵 독일에서는 전쟁에 넋이 나간 채 히틀러를 우러르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물결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착하며 고운 넋’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핑크트헨과 안톤》은 전쟁이라는 불구덩이에서도 ‘착하며 고운 넋’을 잊거나 잃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모여서 태어난 어린이문학이라고 느낍니다. 아무리 팍팍하거나 메마른 ‘어른 사회’라 하더라도, 이 팍팍하고 메마른 ‘어른 사회’를 따끔하게 나무라고 꼬집으면서 ‘아이들이 새롭게 일굴 기쁜 누리’를 꿈꾸는 마음을 들려주는 어린이문학이지 싶습니다.



핑크트헨은 쌍둥이가 되었을 때를 그려 보는 것이 기쁜지 가볍게 숨을 내쉬었다. “아무도 내가 누구고 걔가 누군지 못 알아볼 거야. 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걔고, 걘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고. 아유, 모두 장님이 되는 거지.” (21쪽)


“어른들은 저렇다니까. 우린 다 할 수 있지. 셈도 할 수 있고, 노래도 부를 수 있고, 일찍 잠자리에 들 수도 있고, 공중제비도 할 수 있어. 그런데 어른들은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 그런데 나 이빨 하나가 흔들린다. 자, 봐.” (55쪽)



  1930년대를 지나 1940년대로 접어들 즈음 독일이라는 곳에서 끔찍한 전쟁을 일으키거나 퍼뜨린 이들은 바로 어른입니다. 무시무시한 전쟁무기를 어마어마하게 만든 이들도 바로 어른입니다. 군인이 되어 이웃나라 사람들을 죽인 이들도 바로 어른입니다. 나치를 우러른 이들도 바로 어른이요, 아이들이 ‘나치 선전대’ 구실을 하도록 닦달하거나 내몬 이들도 바로 어른이에요.


  여기에서 하나 더 헤아려 본다면, 어른들은 전쟁무기를 만들고 이웃나라로 쳐들어가려고 하는 데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부었지요. 이러면서 정작 제 나라 사람들이 민주와 평화와 복지를 누리도록 하는 데에는 돈을 제대로 못 써요.


  《핑크트헨과 안톤》에는 두 아이가 나오는데, 한 아이(핑크트헨 또는 루이제)는 부잣집에서 삽니다. 다른 한 아이(안톤)는 어머니 혼자 계신데 어머니가 몸져눕는 바람에 아이가 집안일을 도맡을 뿐 아니라 바깥에서 돈벌이까지 해요. 이러면서 학교를 다니는데, 학교에서는 너무 졸립고 고단한 나머지 수업을 받는 동안 으레 꾸벅꾸벅 졸거나 아예 엎드려 잡니다.



“또 안톤네 엄마는 벌써 몇 주째 돈을 전혀 벌지 못하세요. 그래도 누군가는 돈을 벌어야 하잖아요. 돈을 누가 버는 줄 아세요? 바로 안톤이 벌어요. 그것도 물론 모르셨겠지만요.” 핑크트헨은 화가 났다. “도대체 아시는 게 뭐죠?” 다른 선생님들이 웃자, 브렘저 선생님의 얼굴은 대머리 꼭대기까지 전부 벌개졌다. (106∼107쪽)



  어른들이 사회를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사랑스레 가꾸는 데에 힘을 쓰고 돈을 쓰며 마음을 쓰고 생각을 쓴다면, 안톤처럼 집 안팎에서 고단하게 일해야 하는 아이는 없을 만하리라 생각합니다. 이웃한테 총을 내미는 어른 사회가 아니라, 이웃한테 따스한 손길을 내미는 어른 사회라 한다면, 안톤처럼 고단한 살림을 지켜야 하는 아이는 없으리라 느껴요.


  《핑크트헨과 안톤》에 나오는 핑크트헨은 이런 안톤을 알아봅니다. 핑크트헨은 야무지고 똘똘하며 착한 안톤이 더없이 마음에 듭니다. 핑크트헨 눈에는 ‘가난하거나 꾀죄죄한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핑크트헨 눈에는 ‘야무지고 똘똘하며 착한 모습’이 보여요. 이와 함께 안톤 눈에도 핑크트헨이라는 아이 마음이 보입니다. 안톤은 핑크트헨네 집안이 ‘부잣집’이라는 대목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안톤은 핑크트헨이 달걀 요리 하나도 못한다고 해서 나무라지 않습니다. 안톤은 핑크트헨이 집안일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른대서 핀잔하지 않습니다. 둘은 서로 아끼고 보살필 줄 아는 따사로운 마음으로 동무가 됩니다.



(포게 부인이) 소리를 질렀다. “이리 와! 왜 거지 아이와 함께 서 있는 거니?” 안톤이 말했다. “더 이상 못 참겠네. 저도 아주머니처럼 어엿한 사람이에요. 그것만은 알아 주셨으면 좋겠어요. 친구의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전 아주머니 같은 분하곤 상대도 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아시겠어요?” (168쪽)



  우리 어른들은 어떤 눈으로 두 아이를 바라볼까요? 핑크트헨을 놓고는 ‘부잣집 아가씨’이니 부러워하는 눈으로 볼까요? 안톤을 놓고는 ‘거지와 똑같다 싶도록 가난한 녀석’이니 혀를 끌끌 차는 눈으로 볼까요?



“아빠가 돈을 버느라 시간이 없다는 건 나도 잘 알아요. 하지만 엄마는 돈을 벌지 않아도 되는데 나랑 놀아 줄 시간이 없나 봐요. 그러니 엄마와 아빠 모두 나와 놀아 줄 시간이 없는 거죠. 이제 다른 보모가 오겠지만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미리 알 수 없죠.” (181쪽)



  어린이문학 《핑크트헨과 안톤》은 겉모습과 속마음 두 가지를 나란히 보여줍니다. 겉모습에 얽매여 정작 속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어른들을 먼저 보여줍니다. 이다음으로는 속마음을 늘 따사로이 들여다보면서 겉모습은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을 함께 보여주어요.


  핑크트헨은 어느 날 안톤네 담임 교사한테 찾아갔다고 해요. 안톤이 늘 교실에서 졸거나 자기 때문에 안톤네 ‘부모님(어머니가 아닌)’을 학교로 오라고 해야겠다며 꾸중을 했다고 해요. 이 말을 들은 핑크트헨은 몹시 성이 났답니다. 안톤네 담임 교사한테 하나하나 따지며 물었대요. 안톤이 어떤 아이인지 아느냐고, 안톤네 집살림을 아느냐고, 안톤에 어머니가 앓아누워서 안톤이 늘 보살피는 줄 아느냐고, 안톤이 집살림을 건사하려고 밤마다 장사를 하며 돈벌이를 하는 줄 아느냐고 묻지요.


  그런데 말이지요, 핑크트헨과 안톤은 고작 열 살 안팎인 나이입니다. 이 아이들은 부잣집이건 가난한 살림집이건 둘레 어른들한테서 좀처럼 제대로 사랑받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1930년대 독일 사회를 넌지시 비추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010년대 한국 사회는 어떻다고 할 만할까 궁금합니다. 2010년대 한국 사회에서 우리 어른들은 무엇을 안다고 할 만할는지요. 핑크트헨이 안톤네 담임 교사한테 따지면서 외친 “도대체 아시는 게 뭐죠?” 하는 말마따나 우리 어른들은 참말로 뭘 알면서 이 사회를 가꾸는 사람인가 하고 되돌아봅니다. 2016.10.17.달.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어린이문학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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