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BAR) 레몬하트 30
후루야 미쓰토시 지음, 이기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화책 즐겨읽기 649



맛난 술보다 맛깔스러운 삶을 좋아해

― 바 레몬하트 30

 후루야 미츠토시 글·그림

 이기선 옮김

 AK 코믹스 펴냄, 2016.9.25. 5000원



  만화책 《바 레몬하트》(AK 코믹스)는 ‘레몬하트’라는 술집(bar)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레몬하트’는 영어로 ‘Lemon Hart’로 적으며, 1804년에 처음 태어난 술이라고 해요. 이 술은 ‘비피터 진(Beefeater gin)’이라고 합니다. 술집 ‘레몬하트’는 1804년에 태어난 어느 술을 기리거나 좋아하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겠지요.



“그건 비싸죠?” “그렇죠.” “싸고 엄청 맛있는 건 없어요?” “그건 또 무슨 염치없는 주문이래요?” “없어요? 있어요?” “와인이라 해도 기호품이니까요. 모두의 입맛에 맞추기는 어려워요.” (7쪽)



  어느덧 서른째 권까지 나온 《바 레몬하트》를 보면, 술집 한 곳을 단골로 두는 사람들을 비롯해서 이 술집으로 찾아와서 마음앓이를 풀어내거나 슬픔을 털어놓거나 기쁨을 나누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대단하거나 잘난 사람이 아닐는지 모르나 술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음을 열며 이야기를 나누려는 사람들이 나와요.


  서른째 권에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 어릴 적 동창이 나오고, 아들한테 분재를 남기고 숨을 거둔 아버지가 나오며, 회사에서 일을 너무 못한다고 여겨 스스로 사표를 내고 떠나려는 젊은이가 나옵니다. 왈가닥이지만 마음이 여린 아주머니가 나오고, 사람들한테 거의 잊혀진 옛 영화감독이 나오며, 오랜 스승과 제자 사이를 이루는 세 사람이 나옵니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 모두 일찍 여의고 라면집을 씩씩하게 이끄는 언니 동생 두 사람이 나오고, 길고양이 한 마리를 아끼는 여러 사람들이 나옵니다.



“예쁘다.”“그래.” “둘이 차분히 얘길 나눠 보는 건 어때? 그럼 그 반지처럼 다시 반짝반짝 빛날 것 같은데.” (16쪽)


“오히려 미치코가 골라 줘서 얼마나 기쁜데요! 이렇게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콤한 술을 골라 줬잖아요!” (66쪽)



  술과 술집 이야기가 넌지시 흐르는 만화책 《바 레몬하트》입니다만, 술하고 얽힌 이야기를 살짝 곁들이면서 ‘수수한 사람들이 수수하고 엮고 맺으며 푸는 이야기’를 도드라지게 들려준다고 할 만해요. ‘맛 좋은 술’ 이야기보다는 ‘맛깔스러운 삶’ 이야기를 들려주려는 만화라고 할까요. 맛난 술도 좋지만, 맛난 술이 좋은 까닭은 맛깔스러운 살림을 짓는 애틋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대목을 차분히 다루는 만화라고 할 수 있고요.


  그러고 보면 술이나 밥이나 여행이나 책도 모두 매한가지로구나 싶어요. 더 좋은 술이나 밥이나 여행이나 책보다는, 서로서로 즐겁게 어우러지면서 좋게 느끼는 술이나 밥이나 여행이나 책이 되지 싶어요. 혼자 즐겨도 둘이나 여럿이 즐겨도, 서로 아끼고 보듬는 따사로운 사랑이 흐를 적에 맛나면서 좋은 술이 되겠지요.



“잘도 기억하는군. 첫 장면에서 겨우 1초, 그것도 화면 한 구석에 비쳤을 뿐인데.” “잊을 수 없는 1초입니다.” (119쪽)



  《바 레몬하트》 서른째 권 이야기 가운데 스승하고 제자가 나오는 대목을 보면, 꽤 오랜 옛날 젊은 교사는 어린 학생한테 ‘학교와 공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너무 일찍 그만두기’보다는 ‘차츰 무르익으면서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맛’이 있다면서 달래는 말을 들려줍니다. 이 말을 듣고서 곰곰이 생각한 끝에 다시 기운을 내어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기로 다짐한 학생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 교사 일을 해요.


  그리고 이녁은 교사가 된 뒤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를 따스히 다잡아 주는 일을 합니다. 마치 예전에 이녁이 학생이던 무렵 이녁을 붙잡아 주고 따스히 안아 준 스승처럼 말이지요. 이렇게 스승과 제자 사이로 얽힌 세 사람이 ‘바 레몬하트’에 함께 찾아와서 가장 어린 제자가 스무 살을 맞이한 날에 기쁨을 나누는 술 한 잔을 나누어요.



“어떠니? 맛있어?” “맛있을 리가 있겠어요? 엄청 맛없어요!” “그렇겠지. 그런데 어른이 되면 이게 뭐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어진단 말씀. 그러니까 조금만 더 같이 공부해 보자.” (140∼141쪽)



  어른이 되면 뭐라 할 수 없을 만큼 맛나게 즐긴다는 술 한 잔을 생각해 봅니다. ‘바 레몬하트’ 가게지기가 손님한테 들려준 “모두의 입맛에 맞추기는 어려워요”라고 하는 말도 되새겨 봅니다. 누군가한테는 ‘값싸며 맛난 술’이 있을 테고, 누군가한테는 ‘비싸며 맛없는 술’이 있을는지 몰라요. 나한테 맛난 술이 너한테는 맛이 없는 술일 수 있어요. 어제는 맛난 술이었으나 오늘은 도무지 맛이 없는 술이 될 수 있어요.


  때에 따라서 맛이 달라져요. 자리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지요. 또 함께 있는 사람에 따라서 맛이 달라져요. 기쁜 날 더 기쁘게 즐기고, 슬픈 날 더 슬프게 누려요. 값지기에 좋은 술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이 좋은 술로 바꾸어 주어요. 값비싸기에 맛난 술이 아니라, 웃음짓는 마음이 맛난 술로 바꾸어 주고요. 마음에 따라 달라지는 맛이고, 마음에 따라 새롭게 바뀌는 삶이에요. 2016.9.30.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만화읽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