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책순이
고흥집을 떠나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하고 이모 이모부 집에서 지낸 지 이틀째 되는 날, 우리 집 책순이는 “내가 읽을 그림책이 없어.” 하면서 힘들어 합니다. 다른 놀이를 실컷 했으니 책도 실컷 읽고 싶은데 마땅히 읽거나 볼 만한 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도 큰아이가 읽을 책이 없지만, 이모 이모부 집에서도 큰아이가 읽을 책이 없다 할 만한데, 이제 이모 이모부 집에는 아기가 있어요. 이리하여 이모 이모부 집에는 책순이가 그리워하는 책이 있어, 이모 이모부 집에서 이것저것 놀이를 한 뒤에는 책꽂이에 있는 모든 책을 하나씩 꺼내어 그야말로 몽땅 읽어냅니다. 그러게, 네가 읽을 책을 네 가방에 한 권쯤 챙겨 오면 되었을 텐데. 곰곰이 돌아보면 이제껏 바깥마실을 할 적에 아버지가 으레 책방마실을 했기에 책방마실을 하며 ‘어디에서나 새로운 책을 쉽게 얻어’ 보았으니 아쉽다고 여길 일이 없었을 테지요. 오늘까지 사흘 동안 몸으로 실컷 뛰놀며 기운을 옴팡 쓴 아이들이 시외버스에서 달게 곯아떨어지고서 우리 고흥집에서 다시 책순이가 될 모습을 그립니다. 2016.9.13.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