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커먼 손



  아침에 세 시간 즈음 풀을 뽑았습니다. 이 풀로 풀물을 짤 수도 있지만 밭에 도로 돌아가서 새로운 흙이 되기를 바라면서 신나게 뽑았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마당에서 무화과나무를 오른쪽에 끼고 뒷밭으로 올라서 모과나무를 왼쪽으로 끼면서 고개를 숙여 돌다가 오른쪽에서 석류나무를 만나서 방긋 웃음을 짓고는 새삼스레 왼쪽으로 가서 뽕나무 줄기를 어루만지고는 커다란 감나무 앞에 이르러 얌전히 절을 한 뒤에 마음껏 나무타기를 할 수 있습니다. 낫이나 호미를 안 쓰고 맨손으로 풀을 뽑으면 등허리가 살짝 결릴 만하지만, 맨손으로 풀포기를 잡아당겨서 뿌리까지 송두리째 뽑는 일은 생각보다 재미납니다. 풀포기 사이에 숨은 거미를 보고, 내 앞에서 날아오르는 무당벌레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꽃가루를 먹다가 깜짝 놀란 나머지 내 허벅지를 톡 쏘는 벌을 마주하거든요. 직박구리하고 딱새가 저 아저씨 뭐 하나 하고 기웃거립니다. 해가 머리 위로 오르기 앞서 일을 마칩니다. 이 일을 마치고서 아이들을 불러 함께 뒷밭을 거닐어 봅니다. 내 두 손은 풀물이 짙게 배어 시커멓게 되고, 손바닥이랑 손가락은 환삼덩굴하고 사광이아재비 가시에 긁혀서 군데군데 찢어졌습니다. 손톱에 낀 흙은 씻어도 빠지지 않습니다. 2016.7.9.흙.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아버지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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