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념을 잊는 책읽기
나는 언제부터인가 푸념을 거의 안 합니다. 곰곰이 돌아보면 어느 때까지 으레 푸념을 하며 살았구나 싶습니다. 이 일도 푸념 저 일도 푸념인 사람이 바로 내 모습이었다고 느낍니다. 이제 푸념을 거의 안 하며 살다 보니, 내 둘레에서 푸념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푸념이 잘 뜨입니다. 그리고 눈에 잘 뜨일 뿐 아니라 어쩐지 살짝 거슬리다가는 빙그레 웃음이 납니다. 그분 모습에서 내 예전 모습을 읽기 때문입니다.
푸념이란 말 그대로 푸념입니다. 푸념은 ‘새로짓기’가 아닙니다. 푸념은 제자리걸음이거나 뒷걸음이기 일쑤입니다. 이래서야 삶이 재미없습니다. 푸념을 일삼는다면 삶이 따분하고야 맙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대목이 아쉽다고 푸념하면 이 책은 이 대목 때문에 재미없습니다. 저 책을 읽으면서 저 대목이 서운하다고 푸념하면 저 책은 저 대목 때문에 따분합니다.
모든 책은 저마다 아쉽거나 서운한 대목이 있을 만합니다. 그러나 모든 책은 저마다 재미있거나 아름다운 대목도 함께 있을 만합니다. 책 한 권을 놓고 어느 대목을 읽겠느냐 하는 생각은 바로 우리가 가름합니다. 내가 고르지요. 나 스스로 푸념을 하는 책읽기를 하겠는지, 아니면 나 스스로 푸념을 잊는 책읽기, 다시 말해서 기쁨을 짓고 살림을 짓는 사랑을 노래하는 책읽기를 하겠는지, 참말로 나 스스로 생각해야지 싶습니다. 그래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기쁘게 삶을 노래하는 책읽기를 즐기는 몸짓으로 시나브로 바뀝니다. 2016.6.28.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