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라는 책읽기



  내가 군대에 끌려가던 무렵에 나한테 군대에서 어떻게 지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둘레에서 들려준 이야기가 아예 없지는 않았어요. 내가 군대에 끌려가던 1995년 무렵을 돌이키니, 다음 같은 몇 가지가 떠오릅니다.


ㄱ. 누가 널 때리면, 넌 그놈을 죽지 않을 만큼 때려라.

ㄴ. 웃사람(고참)한테는 개기지 말아라, 비록 웃사람이 너보다 어려도.

ㄷ. 뭐든 주면 고맙게 먹어라, 안 그러면 굶고 갈굼 받는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면 그무렵에서는 군대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웠으리라 느낍니다. 나는 군대에서 여러 가지 죽음도 보았고 총질도 겪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는 참말로 해 줄 만할 수 있었다고 느낍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날 젊은 사내한테 이와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줄 마음이 조금도 없습니다. 나는 내가 받거나 듣지 못한 이야기를 되새기면서, 내가 오늘날 젊은 사내한테 새롭게 들려주거나 물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다음처럼 생각해 봅니다.

각해요.


ㄱ. 누가 널 때려도, 너는 아무도 때리지 말아 주렴.

ㄴ. 누가 널 욕해도, 너는 아무한테도 욕을 하지 말아 주렴.

ㄷ. 누가 널 괴롭혀도, 너는 아무도 괴롭히지 말아 주렴.


  내가 맞았대서 남을 때리거나, 내가 욕을 들었대서 남을 욕하거나, 내가 괴롭힘 받았대서 남을 괴롭히면, 참으로 언제나 고스란히 이 굴레에서 되풀이되더군요. 한 번 이 굴레에 빠져들면 빠져나오기가 몹시 힘들어요. 게다가 이 굴레는 군대에서만 그치지 않아요. 사회에서도 똑같고, 집에서도 똑같지요. 남한테서 맞은 일은 곧 풀리지만, 내가 누군가를 때린 일은 기나긴 나날이 흘러도 지워지거나 풀리지 않아요. 2016.6.2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삶과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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