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 세계 거장들의 그림책 5
로버트 프로스트 글, 수잔 제퍼스 그림, 이상희 옮김 / 살림어린이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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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눈을 그리고, 겨울에 비를 그리는 숲

―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

 로버트 프로스트 글

 수잔 제퍼스 그림

 이상희 옮김

 살림어린이 펴냄, 2013.1.25. 1만 원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면서 비가 세차게 쏟아졌습니다. 지붕을 때리고 마당을 때리는 세찬 빗소리를 아침까지 들었습니다. 낮이 되니 빗줄기는 멈추었는데, 하늘을 뒤덮은 구름이 살짝 걷히면서 해가 나니 몹시 따뜻합니다. 햇빛은 언제나처럼 눈부시고, 햇볕은 언제나처럼 따뜻해요.


  해가 나는 마당에서 밭을 돌보는데, 해는 어느새 구름 뒤로 숨습니다. 해가 사라진 하늘을 문득 올려다봅니다. 구름이 가득하니 구름을 바라보는 날씨입니다만, 해는 늘 이 땅을 비추네 하고 깨닫습니다. 여름에는 비를 내리는 구름 저 너머에서 비추는 해요, 겨울에는 눈을 내리는 구름 저 너머에서 비추는 해로구나 싶어요.



한 해 중 가장 어두운 저녁, 숲과 꽁꽁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서서 (16쪽)



  로버트 프로스트 님이 쓴 오래된 시에 수잔 제퍼스 님이 그림을 새롭게 붙인 그림책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살림어린이,2013)를 읽습니다. 눈으로 새하얀 숲을 노래하는 그림책이니 아무래도 겨울에 읽어야 더욱 제맛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 여름에 겨울숲을 노래하는 그림책을 새로운 맛으로 읽어 봅니다. 무더위에는 무더위를 마음으로 식히면서 이 그림책을 읽습니다. 온통 짙푸른 여름숲을 떠올리면서 참말 얼마 앞서까지 하얀 숲이었고 앞으로 여섯 달이 지나면 다시금 이 하얀 숲이 되겠네 하고 그려 봅니다.


  어제 아이들하고 골짜기로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길 옆으로 골짜기 사이로는 온통 풀밭이었어요. 겨울에는 풀이 모두 시들어서 스스럼없이 드나들었고, 봄에도 풀은 그리 높지 않았는데, 이 여름에는 며칠 사이에도 풀이 우거집니다. 아이들하고 천천히 풀밭을 헤집으면서 골짜기로 들어섰지요.


  깊은 숲에 깃들면 그야말로 숲소리만 듣습니다. 숲에 사는 새와 짐승과 벌레가 내는 소리만 들어요. 바람 따라 나뭇잎하고 풀잎이 사각거리는 소리만 들어요. 골짜기에 있는 돌이나 자갈을 건드리면서 흐르는 물이 노래처럼 들려주는 소리만 들어요.


  그림책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를 보면, 수잔 제퍼스 님은 로버트 프로스트 님이 쓴 시를 새롭게 읽어내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빚었습니다. 이 그림책은 시에 맞추어 이야기를 엮을 뿐 아니라, 그림 작가 나름대로 ‘깊은 겨울숲에 고요히 깃든 할아버지’ 한 분이 마음껏 숲바람을 누리는 이야기를 짓거든요. 이를테면, 할아버지 한 분은 말 한 마리가 끄는 눈수레를 타고서 숲에 들어와요. 이 숲에서 할아버지는 눈밭에 벌렁 드러누워요. 이러면서 눈밭에서 눈헤엄을 칩니다. 할아버지가 마치 아이처럼 눈놀이를 해요.


  한참 눈놀이를 즐기던 할아버지는 깊은 숲 한복판에 곡식이랑 짚을 잔뜩 내려놓습니다. 눈이 소복히 내려서 먹이를 찾기 어려울 숲짐승하고 텃새를 헤아리는 마음입니다. 숲짐승하고 텃새는 할아버지가 노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다가는 할아버지가 다시 눈수레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니 다 같이 모여서 곡식을 쪼고 짚을 먹어요.



말방울 소리 말고는 스쳐가는 바람 소리뿐. 폴폴 날리는 눈송이 소리뿐. (20∼23쪽)



  여름에 눈을 가만히 그려 봅니다. 지난겨울에 아이들은 날마다 물었어요. “아버지, 봄은 언제 와?”라든지 “아버지, 여름은 언제 와?” 하고요. 아이들은 여름에는 “아, 눈을 뭉치며 놀고 싶다!” 하고 노래합니다. 이런 아이들은 겨울에는 “아, 골짜기에 가서 물놀이 하고 싶다!” 하고 노래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어른도 이와 비슷하지요. 더운 여름에는 추운 겨울바람을 그려요.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여름볕을 그려요. 봄이 흘러 여름이 되기에 새로운 기쁨이 되고, 여름을 지나 가을이 무르익은 뒤 겨울이 찾아오면 새삼스러운 즐거움이 됩니다. 그림책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는 한겨울에 느긋하면서 넉넉하고 너그러이 누리는 사랑스럽고 포근한 꿈을 고요히 보여주는구나 하고 느낍니다.


  비구름이 조금씩 수그러들면서 볕이 날 듯 말 듯합니다. 비는 더 안 오리라 느껴 빨래를 마당에 내놓습니다. 장마철에는 해가 조금이라도 나면 빨래가 햇볕을 보도록 합니다. 해님이여 따사로운 볕을 조금 더 베풀어 주소서 하고 하늘을 보면서 노래합니다. 2016.6.24.쇠.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 아버지 그림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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